바보라는 말보다는 정에 약하다는 말을 더 싫어했다

2022-08-01     의약뉴스 이순 기자

휴의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신출귀몰처럼 그는 도망친 이후로 어떤 행적도 남기지 않았다.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그가 어디론가 떠났다는 소문도 돌지 않았다.

소규모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동휴는 독립군의 사망자 명단이나 부상자 명단을 빼놓지 않고 훑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휴의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자라고 추정할만한 성명 불상의 인물도 거론되지 않았다. 죽지 않고 어디선가 살아서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니 동휴는 터지는 울화를 참기 어려웠다.

수많은 적 가운데 하필 싸워야 할 대상이 죽마고우인 것이 운명의 장난처럼 여겨졌다. 갈 곳이 없어 헤매 도는 놈을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에 입대시키고 좋은 곳에 알선해 준 대가치고는 고약해도 너무 고약했다.

은혜는커녕 이제는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가 있지, 그는 바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를 갈았다. 조선인으로 경부까지 올랐지만 자신은 휴의라는 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속이 끓어 올랐다.

학교에서도 동휴는 휴의에게 뒤졌다.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일이등은 늘 휴의였다. 점례를 좋아했으나 점례가 좋아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휴의였다.

생일은 자신이 훨씬 빨랐다. 1월 생인 자신과 10월이 생일인 그는 불과 몇 달 차이로 친구였다. 형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달 차이가 났으나 야자하는 친구로 자랐다.

그는 늘 자신과 비교 됐으며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을 아직 역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고 동휴는 낙담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휴의가 아니라 자신인 것을 동휴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식민자 나라에서 자신은 신분이 확실한 경부이고 앞으로 더 올라갈 것이며 휴의는 도망자 신세다.

그가 점례를 다시 만나는 것보다 내가 점례를 차지하는 것이 쉬워도 너무 쉬운 일이다. 그래서 그를 체포하면 그를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네가 나를 배신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나서 죽이든 살리든 할 것이다.

그의 눈앞에 포승줄에 묶여 끌여온 휴의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상상이나 오랜 후의 일이 아니라 곧 들이닥칠 반가운 손님과도 같은 것이라고 동휴는 생각했다.

용희 생각은 잊어버렸다. 그녀가 손재주가 있고 야무지면서 성격이 쾌활한 것은 점례보다 나았으나 인물은 뒤졌다. 자기에 보기에 그랬다.

더구나 그녀도 자신보다 휴의에게 더 마음을 두고 있는 듯한 태도를 그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그녀를 차지하려고 기를 썼다. 일본으로 두 여자를 한꺼번에 보낸 것은 지금생각해도 잘 한 결정이다.

그런 식의 복수는 동휴에게 어울렸다. 여자들이 떠나기 하루 전 동휴는 휴의에게 아닌 척 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슬쩍 내비쳤다.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떠보려는 심산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뒤로 나앉는 스타일이 점례라고, 실제보다 더 생활력이 강한 것은 용희라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점례가 휴의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확신이 동휴 마음속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전제하에 하는 질문이었다.

속으로는 사랑했지만 겉으로는 미워하는 대상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 후 동휴는 용희에게 더없이 친하게 굴었고 나중에는 누가 봐도 빠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동휴는 용희를 오래전에 잊었다.

그가 순사로 면에 출근할 때부터 그는 용희를 자신 밖으로 확실히 치워버렸다. 마당의 낙엽을 쓸 듯이 깨끗이 청소한 것이다. 그러나 점례는 간혹 그의 얼굴에 미소를 주기도 하고 화난 표정을 가져오게 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점례 그 자체도 있었으나 휴의와 연관될 때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점례의 위치를 확인한다면 휴의를 체포하는데도 용의할 것이다. 어미 새를 잡기 위해 유인하는 아기새 작전 같은 것을 동휴는 생각해 냈다.

그러나 어미 새도 아기 새도 어디서 알을 품거나 먹이 사냥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한 달 안에 잡아 오라고 순사부장을 족쳤으나 허무맹랑한 지시로 끝날 것을 그는 그 말이 입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확신하고 있었다.

첩보부대에서 활동한 휴의가 경찰의 손에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잡힐 리 없었다. 만주 그 넓은 땅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 수 없어 동휴는 늘 명치께가 무언가로 누르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속은 더부룩하고 무엇에 체한 것처럼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한 달 안 지났니?'

경시정이 동휴를 보고 한 마디했다.

입가에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부하 순사부장을 참살하고 기세등등하게 한 달 내로 잡아 올리겠다고 한 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 거니?'

동휴는 경시정이 자신을 깔보면서 무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술자리에서 맺었던 형제의 정 같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원결의는 자신이 살 때나 빛을 발하는 것이지 위기에 빠지면 아무 쓸데가 없었다. 건달의 세계보다 나을 게 없었다.

'형님에게 힘이 되고 싶은 동생입니다.'

'알아, 안다고. 그런데 말로만 힘이 되니? 휴의라는 놈은 어떻게 됐냐고.'

'곧 대령하겠습니다.'

'날 놀리니, 너 지금?'

동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는 변장하고 경성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안의 휴의와 그 조무래기 일당 서너 명이 눈에 잡혔다. 무슨 수로 그를 잡을 것인가. 저도 모르게 휴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순간 그의 눈에 경성역을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가고 있는 휴의의 환상이 눈에 어른거렸다. 숱한 흰옷 입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그는 동휴를 보자 잽싸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뿔싸, 또 놓쳤다.'

'뭐라는 거야.'

혼자 말을 하는 동휴에게 경시정이 물었다.

'아닙니다. 바로 현장에 나가볼게요.'

'그래 헛것이 보이더냐.'

나가는 등 뒤로 경시정의 한 마디가 동휴의 가슴을 헤집었다.

도대체 왜? 동휴는 조센징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길 넓혀 주고 철도 놔주고 새집 많이 짓고 있는데. 

그는 왜? 동휴는 부하도 없이 홀로 경성역 주변을 서성였다. 사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면서 어떤 예감이나 우연을 기대했다. 기적 소리가 길게 울렸다.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온 기차는 사람들은 광장으로 내몰았다. 저마다 이고 지고 서둘러 이동하고 있었다.

저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동휴는 잠시 자신의 본분을 잊고 움직이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 모였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반갑지 않은 가을비가 툭툭 떨어졌다. 그는 옷깃을 여미면서 죽마을의 추수가 끝났는지 궁금했다.

순사의 옷을 입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어도 불쑥불쑥 고향과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추수 전의 비는 백해무익이었다. 일거리만 늘리는 비가 반가울 리 없었다.

마치 논두렁에 서서 어제 추수하지 못한 비에 젖는 벼를 보는 아버지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동휴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우울한 날씨처럼 전선도 우울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반면 상해의 임정은 무장한 독립군을 조선 땅에 파견하는 등 갈 길 바쁜 일제를 괴롭혔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동휴가 보기에 일본이나 조선이나 같은 나라이며 같은 민족이었다. 큰 나라에서 식민의 생활을 하는 것이 굶주림과 원시 상태를 벗어나는 것보다 백배는 나았다.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의 뇌를 해부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이 들어 동휴는 대검을 꺼내 들고 마치 뇌를 잘게 쪼개기라도 하려는 듯이 대검을 꺼내 손에 문질렀다.

마치 손이 칼 가는 숫돌이나 되는 것처럼 이리 밀고 반대로 뒤집어서 앞 뒤로 밀어 냈다. 서늘한 칼날의 기운이 밑바닥에서 위로 치고 올라왔다.

독립군이 만주를 떠나 조선에 도착했다면 그 일행 가운데 분명히 휴의가 있을 것이다. 이는 동휴가 예상하는 것 가운데 가장 정확한 시나리오였다.

휴의 만큼 조선의 치안 상태를 잘 아는 독립군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경찰 내부는 물론 군부의 움직임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노련한 인물로 손색이 없었다.

그가 어떤 복장으로 어떤 계급장을 달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경성에 오는지 혹은 왔는지 동휴는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더구나 며칠 전에는 상부로부터 만주 임정이 독립군을 경성으로 파견했을지 모른다는 첩보를 받은 상태라 동휴는 더욱 초조해졌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사전에 차단하고 그래야 작전의 성공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아는 것이라고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전문뿐이었다. 상부는 독립군의 활동보다는 전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위기에 빠졌고 대륙의 전선도 뒤로 밀리고 있었다. 보급은 시원치 않았고 적들은 날로 세를 더했으며 상대가 가진 무기는 자신들이 자랑하는 것보다 더 우세했다.

사방의 적과 싸워야 하는 엄중한 시기에 조선인이 앞장서서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놓고 있었다. 당연히 능지처참해야 한다. 삼족을 멸하고 다시는 이 땅에 씨를 뿌리지 못하도록 그 이상도 해야 한다.

동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어 죽마을에 십여 명의 순사를 보내 휴의, 점례, 용희 부모를 모두 잡아들이라고 엄명을 내렸다.

오로지 휴의를 잡기 위해 어떤 실마리라도 얻어 볼 까 하는 심사에서였다. 소문도 내고 여기저기 퍼지다 보면 걸려들지도 모른다.

불 타 버린 신의주경찰서를 생각하면 동휴는 이런 것은 매우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싹 다 죽이리라. 제국을 세우는데 그런 걸림돌은 과감하게 빼야 한다.

거기에는 작은 인정이 들어설 이유가 없다. 감정에 빠지면 일을 그르치게 쉽다. 야수의 마음으로 적의 심장을 쏴야 한다. 그는 잡아들이라고 했던 명령의 일부를 수정했다.

순사들이 죽마을에 막 도착했을 때 동휴는 그 가운데 책임자에게 수고롭게 데려올 필요 없이 현장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은 곧 처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예 마을을 다 도육 내고 싶었으나 그것만큼은 참았다. 그 자신이 언젠가는 가야 할 고향이었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늙은 부모가 있지 않은가.

동휴는 그 순간 정말로 오랜만에 부모를 떠올렸다. 간혹 돈을 부쳐 주기도 했으나 최근 이년 동안은 소식을 끊고 지냈다. 사소한 인정을 보여 정에 약하는 약점을 일본인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빠가야로 조센징은 정에 약해.'

그는 그 말을 조센징은 미련하다는 말보다 더 혐오했다. 정에 약한 것은 인간이 덜된 것이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은 버려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이번 기회에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상부에 확실히 심어 두고 싶었다. 고향을 쑥대밭으로 만들면 자신의 충성심은 드러나는 것이고 정에 약한 조센징의 약점은 묻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