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응급실 위해 추가 법령 개정 및 보완대책 필요"
병협, 국회 토론회 개최...정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의약뉴스] 최근 용인 소재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환자 보호자에게 낫으로 공격당하는 살인미수 사건이, 부산 소재 대학병원 응급실에선 환자 보호자에 의한 방화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018년 故임세원 교수 환자 피살 사건 이후로도, 의료현장 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진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추가 법령 개정 및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윤동섭)는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김원이, 신현영 의원과 함께 지난 1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주한라병원 김원 부원장은 ‘응급실 폭행방지대책 시행 이후 현장상황 및 실질적 지원방안’이란 발제를 통해 실효성 있는 예방적 법 제도 개선과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방안을 제안했다.
의료인 폭행 사례는 매년 벌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는 너무 낮다는 게 문제라는 것.
실제로 응급실에서 의사 폭행에 대해 지난 2013년 청주지방법원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고, 간호사에 대한 욕설 및 폭행에 대해 지난 201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고, 전치 4주의 부상을 입힌 의사 흉기 위협 및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2016년 지역 2년 6개월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故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응급의료종사자, 의료기사, 간호조무사를 응급의료법의 적용대상에 확대했고, 응급실 출입을 제한했으며, 가중처벌 및 형량 하한제를 추진하는 등 예방적 차원의 법제도 개선을 진행했다.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 TF’ 구성, 안전진료 가이드마련 및 배포 등 안전 인프라 확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진료현장의 안전은 확보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김 부원장은 응급실 폭력이란 상황을 최대한 회피해야 하고, 회피할 수 없으면 이를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관용 원칙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전체 응급의료법에서 반의사 불벌죄를 삭제하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관한 법률 5조9에 테러에 관한 항목을 신설, 응급센터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를 테러로 규정해 처벌해야 한다”며 “현재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 산재한 폭력에 관한 법률을 특가법으로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청원경찰, 보안요원, 원무 및 행정직원 등 응급의료법의 대상에 응급센터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을 포함해야 한다”며 “응급의료법 및 의료법에 처벌받은 사람은 중증도 KTAS 3등급 이하면 지정병원에서만 치료받도록 법제화해, 환자가 주취자 혹은 응급의료법 위반자인 경우 응급의료제공 거부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음주폭행은 현행 형법규정 제10조 제1항을 적용하지 않고, 응급실/외래 환자 안전관리료를 신설하는 한편, 응급실 안전관리 전담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게 김 부원장의 설명이다.
김 부원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 개선으로, 응급실 특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폭력행위 예방을 위한 게시물을 제작, 게시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기관에서는 의료인과 환자의 안전 및 건강이 최우선돼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 의료인과 환자간 공감을 형성하고, 긴 대기시간, 목소리 큰 사람부터 진료한다는 오해, 관대한 음주문화 등 왜곡된 이용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정성필 학술이사(연세대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응급실 폭행방지대책 관련 해외사례, 법적ㆍ제도적 개선방안’이란 발제를 통해 미국과 영국 사례를 소개하며,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을 위한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진료실 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019년 7월에는 텍사스 메디컬 센터에서 외과의사가 총격에 사망했는데, 의사를 살해한 범인은 20년 전 의사에게 수술을 받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또 2018년 11월에는 시카고 머시 병원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해 주치의와 경찰관, 약국 거주자, 가해자 1명이, 2018년 3월에는 앨라바마 대학교 계열사 직원이 간호 감독자를 쏘아 살해하고 계약직 직원에 부상을 입히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정 이사는 “미국은 응급실 폭력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고, 작업장 폭력이라는 큰 범주에서 바라보고 있다. 여러 작업장이 있지만, 보건의료분야가 다른 작업장에 비해 폭력 빈도가 높다”며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에서 담당하고 있고, 이곳에서 매뉴얼이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미국 응급의학회와 응급간호사회에서 조사했는데,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이 절반 이상이었다.
산업안전보건청에서 지난 2016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폭력 행위자의 80%가 환자였고, 신체적 폭력 이유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이유가 ‘환자의 사망’이고, 다음이 ‘환자의 심각한 상태’, 세 번째가 ‘처치의 지연’이었다.
폭력 사건에 휘말린 의료진이 보고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의료진에서 응급실 폭행에 대해 보고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캠페인이 따로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4월 건강관리 및 사회서비스 근로자를 위한 직장 폭력 예방법이 미 하원을 통과한 상태다.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21년 NHS에서 조사를 진행했는데 71.4%가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이에 응급 상황에 근무하는 비상 근무자에 대한 폭행법을 만들어, 의료진 뿐만 아니라 경찰, 소방, 구급대원을 폭행했을 경우, 가중처벌 하도록 하는 법령이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응급실 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논의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고 강력한 처벌 등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무관용 정책에서 얻은 결과가 폭력의 감소라는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정 이사는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환자가 많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해주기 어렵다”며 “응급실은 의사를 필요하는 사람들이 오지만, 실제로 응급실에서 폭행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실 폭력만을 따로 떼어서 관리하는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처럼 보건의료를 포함한 직장폭력에 대한 광범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진료현장에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직종별, 폭력 종류별 현황을 주기적으로 파악하는 등 직장폭력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엄정한 법집행도 필요한데, 현장 대응 단계에선 필요하다는 게 정 이사의 설명이다.
정 이사는 “왜 폭력를 저질렀고, 왜 폭력을 당했는지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응급실 환경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해 환경적 원인을 파악해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안전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고, 사후에 어떻게 신고하고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행위자의 공격성을 완화시키는 신체적인 폭력 전 단계에서 예방하는 방법도 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부분 병원에 보안요원이 배치됐는데, 미국의 경우엔 보안전문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며 ”보안요원, 경찰이 현장대응을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 쌍방 폭행 문제를 해결하고, 폭력 행위자를 응급실 밖으로 퇴소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널토의에선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을 위한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법무법인 세승 조진석 변호사는 “사전 예방적 측면에서 응급의료기관에 상황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경찰력 상시 배치가 필요하다. 경비인력이 배치돼 있지만, 검문이나 무기 사용 등 적극적 예방 및 제지 활동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일반경찰이나 청원 경찰의 배치가 필요하다”며 “이에 대한 인건비 등은 사회안전망 확충의 측면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분담이나 응급의료기금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후 대응적 측면에선 응급의료시설 및 종사자에 대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신속한 회복을 위해 당사자의 청구가 있으면,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우선 치료비용 등을 대지급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응급의료현장의 폭력은 응급의료 중단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 정부와 의료계 및 시민사회가 논의해 현실적으로 도움되고 실천 가능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안전한 응급실을 조성하기 위해, 폭력대응 및 대비 매뉴얼을 수립ㆍ운영하고, 이에 따른 시설ㆍ장비ㆍ인력과 업무체계를 갖출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환자와 의료인의 인권 권리를 위해 의료기관이 자체적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병원 내 경비 및 안전관리담당자를 정하고, 경비주체자들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매뉴얼하에서 일정부분 권한을 주도록 대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실내 폭행사건 근절에 대한 대국민적 참여와 문화개선이 시급하다. 응급실 이용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나 의료진에 대한 교육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며 “응급실 내 환자를 어떻게 분류하고, 이용해야 하는지 등 사전에 잘 설명되고, 환자가 이해하고 있다면 불만을 조금이라도 줄이게 되고, 일정부분 응급실 폭행이나 폭언 등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 김은영 응급의료과장은 “이제까지 응급실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대책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개선이 됐지만, 앞으로는 실효성을 높이는 대책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현재 응급실 출입제한이 되도록 개선됐지만, 이번 부산 대학병원 응급실 방화사건을 보면 출입제한이 됐음에도 이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어 “용인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을 보면 소지품 검사를 하도록 하거나, 흉기류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등 실효성을 높이는 대책을 찾아봐야할 거 같다”며 “지난 2018년 개선되어 병원마다 보안인력 배치가 의무화 됐고, 이를 지원하고 있지만, 보안인력 기준이 적정한지, 이들의 업무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부분을 보완해야할 거 같다”고 전했다.
또 “경찰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해 보안인력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근본적으로 응급실에 대한 인식 개선, 진료환경 개선을 통해 폭력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데, 2018년 대책을 만들었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는 거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인식 개선, 응급실을 이용할 때 어떤 기준이 있는 지 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복지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관계기관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현장 의견을 적극 반영해 논의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