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국가의 책무-

이유섭 명지전문대 사회복지학 교수

2006-03-21     의약뉴스
세계적인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의 조사자료에 의하면,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및 진료수준이 OECD 국가(전체 24개국) 중에서 5위이고 GDP의 15%를 의료비에 쏟아 붓고 있는 미국은 23위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지출이 GDP 대비 5.6%(2003년 기준)로 최하위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국민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의료보장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외국학자들은 우리의 의료보장제도를 Miracle(기적)이라고 한다.

세계 각국은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하여 국가 경쟁력 제고와 경제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우리도 의료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국민의 다양하고 고급화된 의료수요 충족을 위해 경제관료와 생명보험업계를 중심으로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민의료 분야의 역할분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진료비 본인부담금을 보장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실손형 의료보험이란 공보험에서 지급하지 않는 본인부담금을 민간보험사가 보전해주므로 본인부담이 거의 없다. 민간의료보험 가입자의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증가하고,이는 의료비 부담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재정의 폭발적 증가와 공보험의 무용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신의료기술,미용․성형,부가서비스 등 수익성이 높은 비필수적인 의료분야에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보건의료체계의 왜곡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민간보험 시장은 국민 총진료비 26조 6000억원의 약 45%인 12조원을 상회한다. 이것은 공보험이 발달한 의료선진국의 10% 내외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포화상태에 이른 보험시장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민간보험업계는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을 등에 업고 새로운 민간의료보험 영역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들의 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겨달라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부처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인의 진료정보는 단순한 질병치료의 정보가 있는가 하면 유전질환,정신질환,임신,낙태 등 많은 치료력이 있다. 이런 정보들이 유출되면 가족간 갈등은 물론 이혼,실직,인신공격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

최근 우리 국민 3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중국에 유출되어 돈벌이에 악용되고 있는 사례가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민간보험사에 대한 질병정보 제공은 그 어떤 국가에서도 전례가 없다. 정부를 대변인으로 삼는 민간보험사들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과연 적절한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장체계가 없고 4500여만명이 공보험과 민간보험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전국민 의료보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클린턴 대통령이 전국민 의료보장 실현을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였으나,제도개선을 찬성하는 89%의 절대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의사․보험회사․제약회사․자영업자 등의 강력한 반대로 의료보장체계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칠레,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은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민간보험을 도입하였으나,공보험 의료체계는 거의 무너지고 과중한 진료비 부담으로 국민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와는 달리 유럽 국가들은 80%가 넘는 튼튼한 공보험의 기반 위에 민간보험은 공보험의 보충적인 형태로 미용,성형 등 비필수분야를 중심으로 틈새시장에 진출해 있다.

특히 영국의 철혈총리 대처는 산업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모든 부문은 민영화의 대상이되,국방과 의료제도는 예외라고 단언하여 아직까지 그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세계사를 배우는 이유도 과거와 현재를 잘 살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논의는 서민층의 의료 소외감 등 엄청난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민간보험회사의 주장에 따라 민영보험 도입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유럽처럼 공보험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