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일상회복’ 흔들, 의료체계 확립 절실

국민청원에 응급실 포화로 대기 중 사망 사례 올라와...醫, 주먹구구 방역 대책 폐기해야

2021-12-16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지난달 1일 시작됐던 ‘위드 코로나’로 인해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밀려드는 코로나19 확진환자로 인해 응급체계는 마비 직전이며, 위중증환자를 치료할 중환자 병상도 부족해지고 있어 의료계 내에서 졸속 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12월 16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총 7622명으로 어제에 이어 7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위중증 환자는 989명이고, 어제 신규 사망자는 62명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아직 의료 붕괴가 아닌 걸까요? 이미 붕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본인을 서울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응급의학과 전문의라고 한 청원인은 “위드코로나 시작과 동시에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한 달 동안 20~30명 정도의 확진자를 찾아냈었던 응급실에서 이제는 하루에 2~3명, 4~5명씩 확진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이분들이 격리실에 들어가면, 병상을 배정받아 전원을 가기까지 11월 초에는 4~5일, 최근에는 9~10일 동안 응급실의 격리실을 입원실처럼 사용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고 밝혔다.

응급센터 내 소생실마저 확진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채 며칠씩 대기를 하는 등 응급실이 포화상태에 빠지면서,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119 전화를 받아도 수용을 할 수가 없고, 소생술 시행 후 확인한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오는 상황이 하루에도 숱하게 발생하고 있었다는 게 청원인의 설명이다.

청원인은 “결국 소생되지 못한 확진 환자의 시신을 응급센터의 의료진들이 입관하고, 이 시신이 화장터로 이송되기까지 응급실에서 며칠을 또 대기하는 일도 있다”며 “문제는 결국 새로운 환자를 수용해야 할 공간이 점유돼 버리는 것이기에 이제는 119 대원들이 환자를 수용해줄 병원을 찾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다. 심정지 환자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만 보더라도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응급센터의 의사들은 119로부터 수용 가능 전화를 받고, 내용을 들어보면 중증환자라 빨리 수용해줘야 할 것이 뻔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격리실과 소생실이 코로나 확진 환자로 채워져 있어 수용이 불가하니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며 “무리한 위드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죄 없는 국민들을 죽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면 뭔가”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국가가 위드 코로나를 세분화해서 진행하고, 부스터 백신 접종 진행 후에 진행했다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 이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라며 “응급실을 바로 찾아 들어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병원 밖을 헤매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의료 붕괴가 아니면 무엇이 붕괴일까”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코로나19 현장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의료계 내에선 정부의 방역대책을 다시 점검해야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여한솔)는 ‘코로나19 관련 진료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일상회복 계획 이후 일선 병원은 마비 수준에 당국의 관리 시스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침을 가했다.

총 652명이 응답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 일반 환자의 진료에 크게 문제가 있으며, 환자 위해 가능성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당국의 대처는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환자에게 위해 가능성이 증가했다고 답변한 회원이 59.2%, 일반 환자의 진료에 제한이 있다고 답한 회원은 91.4%로 나타났다. 현재 입원한 코로나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나 체외막산소공급(ECMO) 등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53.9%, 그에 준해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상태가 악화될 수 있는 환자가 44.6%로 밝혀졌다. 

▲ 대전협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이런 상황에서 전문 의료 인력이 부족해 내과나 응급의학과는 물론 다른 과 전공의들까지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투입되고 있었다.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전공의는 내과(81.1%), 응급의학과(27.2%)의 비중이 높았고 소아청소년과(13.9%), 가정의학과(13.4%)가 그 뒤를 이었지만 다른 과가 참여한다는 대답도 27.8%였다. 인턴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참여하는 병원도 있었다.

중환자와 준중환자도 내과(96.6%), 응급의학과(14.0%)가 담당하지만 다른 과가 담당한다는 대답도 9.3%였다.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날수록 전공의 수련환경도 나빠졌다. 전공의 80.3%가 코로나19 진료로 수련교육이 침해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코로나19 관련 근무를 떠맡으면서 주말이나 연휴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지만 근무일로 인정받지 못해 사실상 무임금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한솔 회장은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참담한 현장 상황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라”며, “정책결정자들의 일선 전공의에 대한 책임 전가는 그만두고, 제대로 된 환경 속에서 전공의들이 일할 수 있도록 시급히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 회장은 “젊은 의료진의 피땀과 생명을 갈아 넣는 희생을 욕보이지 말라”며 “보건당국의 각성을 촉구하고, 시급히 현장 상황을 반영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동석)도 현 정부의 방역대책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대개협은 “현재 확진 후 병상 배정을 기다리다 입원도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응급실에서는 병상 배정이나 이송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각 병원은 코로나 병실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건물 자체가 음압시설 설비에 적합하지 않아 병실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도 있고, 어렵게 확보한 병실에는 환자를 볼 의료진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개협은 “의료진은 치료뿐 아니라 백신 접종, 방역과 행정까지 과도한 업무로 거의 탈진 상태”라며 “혹시라도 코로나 확진자라도 다녀간 것이 확인되면 진료 중단, 의료진 격리, 병동 폐쇄가 발생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경영 손실까지 이중 삼중고를 감당해야 하는데, 정부는 무조건 코로나 병실을 마련하라는 무책임한 행정명령만 남발하고 있는 한심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필요한 의료 자원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잘못된 예측과 예단으로 정책을 입안하면서 의료와 방역에 있어 최고 전문가인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았음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전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개협은 “이제라도 국민의 건강권을 수호하고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현재의 주먹구구식 방역 대책을 폐기하고, 진료 현장 중심의 과학적인 기준을 반영하도록 의료 전문가 단체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회장 주신구)도 준비되지 않은 위드 코로나 정책의 실패를 사과하고, 방역 정책을 즉각 재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병의협은 “전문가들은 위드 코로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백신에 의해 면역이 확보되고, 치료제로 질병 자체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 돼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며 “지금까지 정부와 방역 당국은 들쭉날쭉한 백신 접종 기간, 통일성 없이 도입된 백신의 종류, 원칙 없는 교차 접종 등 백신과 관련, 어느 것 하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병의협은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위해 준비한 것은 민간병원들에 대한 병상 강제 징발 말고는 없었다”며 “정부는 추가 코로나19 전담 병상마저도 환자 폭증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여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부족한 병상을 기다리다가 죽어나가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고 전했다.

이에 병의협은 “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위드 코로나' 정책의 실패에 대해서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며 “위드 코로나 철회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방역 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 의료진 번아웃 및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인력 확보를 위해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