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상정 소식에 전운 고조

임시국회서 유보됐으나 9월 정기국회서 재논의 예고...의약 5개 단체 폐기 촉구

2021-09-28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지앤넷이 최근 상용화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서비스. 의료기관의 데이터를 연동하지 않아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6월 임시국회에서 유보됐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된다는 소식에 의료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의협 등 5개 단체는 연대성명으로 개정안 폐기를 촉구했으며, 해당 개정안들이 논의될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10여년 간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온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안이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현재 제21대 국회에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소액 보험금 청구 편의성 제고 취지로 실손보험 가입자가 요양기관에 자신의 진료자료를 보험회사로 전자적 전송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 5건이 발의됐으며, 해당 개정안들은 오늘(28일) 열리는 국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와 관련해 정부와 국회는 소비자 편익 향상을 위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고,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들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의 계약당사자(환자와 보험사)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자료를 보험사에 전송할 의무가 없고, 환자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들이 국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논의된다는 소식에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 대한병원협회(회장 정영호),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박태근), 대한한의사협회(회장 홍주의), 대한약사회(회장 김대업)는 ‘보험가입자의 편익보다 민간보험사의 이익추구’하는 개정안이라며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의약단체들은 “‘진료비 청구 간소화’는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보험가입자의 편의를 도모하여 보험금 수령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논의됐던 사안”이라며 “현재까지 입법화되지 못한 이유는 의료정보 전산화로 인해 여러 위험성과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의약단체들은 해당 개정안들이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뜻을 표했다. 실손의료보험은 공보험인 건강보험만으로는 보장되지 못하는 의료영역, 즉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보장을 내세우며 활성화된 보험으로써 보건당국의 규제가 필요한 보험이라는 것.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단순히 금융상품으로서 금융당국 규제만 받고 있어 부작용이 심화됐는데, 의료정보의 전산화 및 집적까지 이뤄지면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게 의약단체들의 설명이다.

의약단체들은 “민간보험사는 개인의료정보를 축적해 보험금 지급거절, 갱신시 보험료 인상 자료로 사용할 것”이라며 “전자적 전송 의무를 위한 비용과 관련한 제반문제 해결책도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진료비 청구 간소화 제도 추진이 진정 국민 편의를 위해서라면 일정금액 이하 보험금 청구시 영수증만 제출토록 하고 현행 의료법에서 가능한 범위의 민간 전송서비스를 자율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의약단체들은 “실손의료보험 지급률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급률 하한 규정 법제화, 보건당국의 실손의료보험 상품 내용 및 보험료 규제 현실화가 더 실효성 있다”며 “같은 내용으로 발의돼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적극 반대한다. 해당 법안의 철회 및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핀테크 회사’들이 이미 개발한 ‘청구간소화’ 서비스로 인해 해당 개정안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이미 형성된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 삼성화재를 비롯한 대부분 보험사는 의료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의료기관 데이터(영수증ㆍ세부내역서 등)를 전송해주는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 지앤넷, 레몬헬스케어, 삼성SDS, 메디블록 등은 중개업체 전산망을 통해 무인단말기(키오스크), 모바일 앱 등을 활용한 청구 간소화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보험료를 받은 건 보험사로, 보험가입자의 편의를 위한 시스템 구축 의무 역시 보험사에 있다”며 “이에 대한 노력 없이 보험업법을 개정해 의료기관에 강제로 청구전송 데이터를 보내려고만 하고 있다. 이는 과도한 면이 있어 지난 10여년간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 이사는 “핀 테크 회사들이 보험 가입자에 대한 요구를 실현하려고 노력했고, 의료기관도 관련 서류 발급 등에 있어 간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런 노력들이 만나서 청구간소화에 대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는 보험업법 개정없이 현행 의료법 내에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에 대해 보험사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보험업법 개정안에 목을 매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