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점정(畵龍點睛)

2006-03-05     의약뉴스
만사는 시작과 끝맺음이 같아야 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행사라도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비웃음거리가 된다. 처음엔 그럴 듯했지만 마지막은 형편없음을 가리켜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하며 끝맺음을 더 신중히 해야 한다는 뜻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단어에 새겨져 있다.

고대 중국 ‘양(梁)’나라의 화가 ‘장승요(張僧繇)’가 ‘금릉’의 ‘안락사’ 벽에 용을 그리면서 눈동자를 찍지 않았을 땐 용도 뱀도 아니었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려 넣는 순간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며 승천하였다. 마무리로 찍어 넣은 눈동자엔 용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35회의 연륜을 자랑하는 인천미술대전이 7일간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35년의 오랜 역사만큼 인천미술을 대표할 만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 같다. 입상자 선정 의혹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했던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원인은 집행부의 한심한 대회 마무리 때문이었다.

10월 9일 오전, 아내의 작품 회수를 위해 전시실을 찾았을 때 그곳은 이미 사진 전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섬뜩한 예감을 애써 가라앉히며 미술협회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작품의 행방을 물었을 때 담당 직원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작품을 철수했기 때문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수소문을 하여 구석진 창고를 찾았을 때 화가의 피와 땀과 정열이 배어 있는 작품들은 암흑과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니 쳐 박혀(?)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가사를 돌보며 남편을 내조하며 시간을 쪼개고 새벽잠을 포기한 채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을 잘 알기에 화가 당사자가 아닌 필자마저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하물며 오랜 산고를 겪으며 작품을 출산한 당사자의 피끓는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친지들의 축하와 사랑이 깃 든 화분과 꽃바구니는 어제 오후까지도 작품 옆에서 함께 웃고 있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인천미술협회 사무국장과 통화를 했을 때 그는 입상자들이 축하 화분을 찾아가지 않아 전시실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알라서 처리하라고 일임했단다.

기가 찰 일이다. 개최 요강과 약정서엔 분명 ‘10월 9일 오전 10시부터 10일 오후 5시까지 전시장인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작품을 회수해 가야하며 그 이후에는 분실 및 파손을 책임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축하 화분을 8일에 찾아가지 않아 폐기 처분을 일임했다니---.

더욱 한심한 일은, 작품 당 4만원의 출품료를 받아 챙겼으면 출품한 상태로 소중히 포장한 후 접수를 받았던 미술협회 사무실에서 되돌려 주던가 아니면 종합문화예술회관에 미술협회 임원이 약속한 시간에 나와 접수증을 확인한 후 작품을 내주어야 함에도 사무국장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끝내 작품을 보관한 창고에 나타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제삼자가 와서 작품을 실어 가거나 작품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파손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면 어찌하겠는가. 과연 저들이 인천미술협회 임원이고 작품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예술인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제23회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작가로 인정받을 당시 협회장이 나와 일일이 접수증을 확인한 후 작품을 넘겨주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천미술협회 가입을 하지 않겠다고 울먹였다.

지방 미술의 침체와 인천미술대전의 권위 실추는 타인이 아닌 인천미술협회 임원진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