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료기관 출생신고 의무화 법안에 "강력 반대"
정부ㆍ국회 관련 법안 발의..."과도한 의무ㆍ분만 기피 현상 심화" 반발
최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방치되거나 버려지는 아동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며, 의료기관에 과도한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이라며 강력히 반대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최근 상임이사회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이 발의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논의했다.
송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분만에 관여한 의사ㆍ조산사 등이 출생 후 7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생통보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심사평가원은 출생통보서를 출생지를 관할하는 시ㆍ읍ㆍ면의 장에게 송부하도록 하며, 출생신고를 받은 시ㆍ읍ㆍ면의 장은 송부받은 출생통보서와 대조해 확인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의협은 산하 산부인과단체에 해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는데, 산하단체들은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출생신고는 부모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처벌 규정을 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의사에게 부모를 대신한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처벌 규정을 만들어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의 직업수행의 자유, 과잉 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회는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부모의 국적, 나이, 이름, 신생아의 이름 등)를 알아야 하는데 출생 당시에 의료인이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신고 대행시 발생하는 오류 및 착오에 대해서 행정처분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출생 대행 신고는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출생증명서는 기존에 의료인이 작성하고 있었으므로 출생증명서를 지정기간까지 관할기관에 제출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며 “출생신고서는 인류사회학적 내용까지 포함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므로 출산당사자가 작성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의사가 환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침해하면서 작성하는 것은 법리에 어긋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출산통보를 의료기관에서 할 경우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산모들이 산부인과의 내원을 기피하게 되어 산전 관리를 하지 않고 더욱 음성적인 출산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사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기존의 청구 시스템을 통해 출산 후 퇴원한 산모에 대한 분만 사실을 청구 프로그램의 분만 관련코드를 이용, EMR을 이용하면 의료기관이 분만 관련 코드를 입력하면 심평원에서 확인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한 자료를 대법원에 전송하면 출생신고 누락자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은 보건복지부와 합의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유사한 법률안을 통합해 법제처에서 정부입법안으로 정리할 예정”이라며 “산부인과의사에게 출생신고에 대한 의무 부과 없이도 자료수집이 가능하게 전산작업을 심평원의 전산부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의견을 종합해 의협은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의협은 “해당 개정안과 상당부분 내용이 일치하는 개정안이 제19대 및 제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고, 당시 미혼모의 사회적 문제와 의료기관에 대한 지나친 의무부과 문제 등을 사유로 폐기됐다”며 “사회적 문제로 인해 폐기된 법안을 다시 상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은 “출생신고 누락 및 허위신고를 이유로 의료기관에게 출생증명서 송부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친 의무부과”라며 “개정안이 통과된 후, 출생신고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경우 개인정보 관련 문제 등에 있어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비용과 책임을 오로지 의료기관이 떠맡게 될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의협은 “산부인과의 경우 터무니없이 낮은 분만수가로 인해 많은 개원의들이 분만을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책마련은 고사하고 오히려 추가적인 규제만 부과하고 있으므로, 이는 산부인과의 분만기피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의협은 “국가의 현황파악 및 관리를 위한 출생신고 누락자의 확인이 필요하다면, 부모 동의를 전제로 관할관청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출산 관련 보험급여청구 정보를 직접 송부받아, 이를 근거로 출생신고의무자의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타당한 방향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법무부에서도 지난 21일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방치되거나 버려지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정부가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해당 법안에는 의료기관의 출생 통보 의무 규정이 신설됐는데,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의 장은 7일 이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산모의 이름과 아이의 성별 등 출생 정보를 송부해야 하고, 심평원은 이 정보를 다시 7일 안에 시ㆍ읍ㆍ면의 장에게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다.
출생 신고가 누락될 경우 국가가 이를 직접 이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시ㆍ읍ㆍ면의 장은 평가원으로부터 출생 정보를 넘겨받은 아이들 가운데 출생 신고 누락자가 발견되면 그 부모에게 7일 이내에 신고하라고 통보해야 하고, 그럼에도 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직권으로 출생 등록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해당 법안에 대해서도 의료계에서 강력히 반대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동석)는 “현실을 무시한 행정 편의적인 법률안이 입법 예고됨에 실망을 감추기 어렵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은 의료인들이 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곳으로 나라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도, 공무원들도 아니기에, 새로운 행정업무를 대신하여 행하는 것은 공무원법에 반하며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 대개협의 지적이다.
또한 대개협은 출생신고를 위해서는 많은 개인정보를 다뤄야 하는데 의료기관이 이를 다룰 명분도 자격도 없으며, 나아가 출생 당시 의료인이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다분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대개협은 “진즉에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 등 노력을 들여 이용했더라면, 위의 좋은 목적을 이미 이루었을 것이며, 많은 아동들의 권리가 보호받았을 것”이라면서 “산부인과 등 병의원에, 심평원이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다시 중복된 자료를 요구하며 무책임하게 나라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며 손쉽게 처리하고자 법을 만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병의원이 행정기관도 아닌데 의료인들이 환자 진료를 뒤로하고 출생신고에 몰두해 출산 7일, 14일을 세고 있도록 만드는 탁상행정의 대표적 발상이라는 게 대개협의 설명이다.
이어 “손쉬운 행정을 위한 불필요한 제도의 도입은 결국 열악한 병의원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각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를 전담할 인력의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출생신고 대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및 착오에 대한 책임은 물론 이로 환자진료의 방해 및 차질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하는 문제는 의료기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전했다.
또한 “정부는 행정 편의 위주의 편법적인 법안이나 중복 행정 일변도에서 벗어나 행정 간소화를 통해 보다 능률적이고 능동적인 업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입법목적이 출생신고 누락자 실태파악을 하여 의료기관에서 분만을 했는지 확인을 먼저해야 한다”며 “만약 출생신고를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하게 되면 신고를 원하지 않는 임신부는 의료기관 출산을 기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출생 확인은 의료기관에서 분만 후 청구를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확인하면 될 일”이라며 “폐원이 많은 분만의료기관에게 행정적 업무를 떠넘기면서 규제를 만드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