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 열혈남아(1988)-사랑과 의리 그리고 남은 것

2021-05-03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왕가위 하면 컬렉션이 따라붙는다. 한두 개가 아니고 볼만한 영화가 무더기로 있다는 말이다.

왕 팬이 아니어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디오와 DVD 판매가 유행일 때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책장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모음집 뚜껑을 열고 <열혈남아>를 꺼내 들었을 때 느낌이 싸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흡족한 기운이 몰려오기도 했다.

서늘했던 것은 건달이나 양아치의 정해진 최후가 가련하기도 했기 때문이고 웃음기 머물렀던 것은 주인공들의 연기와 그들이 풀어나가는 실타래가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소화(유덕화)는 깡패 집단의 중간급 보스다. 14살 때 사람을 죽일 만큼 나름대로 실력도 있고 부하를 거느릴 만큼 의리도 있다.

의형제인지 뭔가 하는 창파(장학우)와 그의 동생이 한패가 되겠다. 겨우 세 명의 무리인데 그나마 나대거나 겁쟁이거나 형편없다.

그와 대적하는 토니(만자량)는 용기 있고 돈도 있어 따르는 무리가 무더기다. 당연히 큰 형님의 관심은 소화파보다는 토니파에 무게 중심이 쏠린다.

그렇다고 해서 소화가 기죽거나 창파가 꼬리를 내리는 법은 없다. 되레 큰 소리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나 그들에게 없는 것은 돈이지 ‘가오’가 아니다.

건달이나 양아치는 다 알다시피 늘 문제를 일으킨다. 주로 창파가 여기에 해당한다. 돈을 빌리고 값지 않고 그 대가로 창피를 당하자 앞 뒤 가리지 않고 토니의 차를 부순다. 무대포, 천방지축이 그의 장기다.

대책없이 저지르고 금방 잡혀서 거의 반죽음인 상태에 빠졌다. 연락을 받은 소화는 만사 제쳐놓고 그를 구해낸다. 이러기를 연중행사로 하니 소화는 미덥지 못하고 창파는 형 보기 미안하다.

▲ 장만옥과 유덕화는 풋풋하고 오월의 초록처럼 싱그럽다. 둘은 불같이 사랑하나 그 사랑 길지 않고 매우 짧다.

차라리 쥐어박았으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감싸주니 형에게 빚을 한 번 시원하게 갚고 싶다. 무시하는 자들을 멋지게 복수해 이름을 만천하에 떨치고 싶다.

비록 단 3분이라도 영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곤죽 내거나 큰 형님의 심부름을 말썽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마약도 아니고 길거리서 어묵을 팔 수는 없다. 입에 깡통을 물리고 죽기 전까지 맞아도 꺾일 줄 모르는 용기는 그런 자존심에서 나왔다.

이즈음 소화는 또 다른 고민거리에 빠졌다. 사랑했던 술집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자신을 떠나자 쓸쓸함이 온몸을 감싸고 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슴 한구석을 채워 줄 아화(장만옥)가 있다. 먼 친척으로 병 핑계로 며칠 같이 보냈다.

그가 찾아가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서로 맞장구친다. 세상은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행복은 지구 끝까지 뻗어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불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밤은 깊어가고 이불 속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그가 생명의 위협에 빠질 것을 직감한다. 여자의 촉은 예민하고 대개 맞아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해 볼 수 있는 뻔한 구성이다. 이제 소화가 아화와 결혼하고 거리 생활을 청산하면 그뿐이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깨알을 쏟아낸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다. 아니면 동생을 괴롭히는 적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보스의 자리로 올라서거나.

하지만 왕감독은 그런 식상함을 택하지 않았다. (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는 이후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 숱한 명작을 쏟아냈다. 모두 스타일리쉬하고 생동감이 넘치며 영상미가 장난 아니다.)

사랑보다는 의리를 내세웠다. 내세웠다고 했으나 꼭 그렇다기보다는 가슴의 뜨거움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표현해야 옳다.

이것은 사랑을 버리고 의리를 향하는 양자택일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의리 이전에 위기에 처한 동생을 구하고자 하는 열혈남자의 본능이라고나 할까.

음악은 그런 심장에 불을 붙인다.(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비행 교관과 만날 때 나오는 그 음악 맞다. ‘Take my breath away’)

국가: 홍콩

감독: 왕가위

출연: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만자량

평점:

: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 대개 그렇다. 사랑도 그렇다. 그런데 아닌 경우도 있다. 누가 봐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모도 그렇고 집안 재력이나 취미나 성격에서 맞지 않는데도 사랑한다. 이것은 사랑이 예측 불가능한 럭비공이기 때문이다.

아화만 해도 그렇다. 깡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한다. 의사와 결혼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의사와 아화는 어울린다. 그런데 아화는 의사를 버리고 깡패를 택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랑이 보아서 나쁘지 않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달라 붙었을 때 두 사람은 그 순간 최고의 행복을 맛보기 때문이다.

소화도 죽기 전 그런 사랑을 했다. 아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소화는 죽고 없다. 영화 밖으로 나가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 아화는 의사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검은 머리 백발이 된 노년의 아화는 철없는 시절의 소화를 생각하면서 잠시 뜨개질을 멈추고 웃음 가득한 미소를 입가에 짓는다.

이것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것이 사랑이고 인생이다. 그러니 사랑에 목매달 것도, 하나의 인생에 ‘몰빵’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남은 것이 없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