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2006)

2021-04-09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압도적인 큰 키, 눈에 띄는 검은 콧수염, 호리호리하면서 어딘지 꺼벙한 모습. 키만 빼고는 찰리 채플린을 닮았다.

쉼 없이 굴리는 호기심 가득하나 어딘지 쫓기는 듯한 눈동자를 더하면 영락없다. 보랏(사챠 바론 코헨)의 첫인상은 이렇다.

그런데 한가지가 빠졌다. 입을 한시도 다물지 않는 ‘떠벌이’가 보태져야 한다. 이것만 본다면 그는 직업을 제대로 택했다.

방송국 리포터. 국적은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멍청한 우즈베키스탄(보랏의 표현, 이후에도 그는 우즈베키스탄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다.)과 인접한 카자흐스탄.

그가 소개하는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은 한결같이 범죄자이거나 야만인에 다름아니다. 여동생을 매춘부로 유명세를 타 트로비를 받았다고 소개할 정도다.

▲ 보랏이 여동생을 소개하고 있다.

거친 그의 입은 그러나 그 나라의 일상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보는 관객은 카자흐스탄이 그 정도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그의 연기와 익살이 거짓이라기보다는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탁구를 즐기고 일광욕이 취미인데 주말에는 여자 화장실 훔쳐 보는 낙으로 삼는다. 주변에는 강간범들이 득실거린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정보부의 지시에 따라 세계 최고의 나라 미국으로 떠난다. 보고 배워서 조국을 위해 긴히 사용하라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카자흐스탄의 '킹카' 보랏이 과연 영화의 제목처럼 미국 문화를 빨아 들이는지 보자.

미국에 도착한 그는 원시인처럼 행동한다.

지하철에서는 난데 없이 자신을 소개하고 아무나 붙잡고 키스 하자고 덤벼들고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대뜸 이름부터 묻는다.

열린 트렁크에서는 닭이 튀어 나온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호텔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객실로 착각하고 입실해서는 변기물로 세수한다.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아무 여자나 잡고 얼마면 되느냐고 진지하게 흥정한다. 인터뷰 하면서는 유머랍시고 장모와 잤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문화적 차이라 해도 유대인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심하다. 얕잡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뿔달린 괴물 취급을 한다.

9.11사건도 유대인 짓으로 몰아 부친다. 서슴없는 인종차별 발언이 쏟아져 누가 볼 까봐 주변을 둘러보게 만든다.

동행한 제작자 아자맛( 켄 데이비찬)은 말그대로 '죽을 맛'이다. (하지만 그 역시 보랏의 언행을 제지하기보다는 즐긴다. 그도 한패라고 봐야 한다.)

여자에 대한 편견은 지독하다. 남자보다 뇌크기가 작다고 떠들고 페미니스트를 우스운 종자로 취급한다. 꼴에 뉴욕이 싫증 났으니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한데 중고차 매장에 가서는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을 쏟아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딜러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축제 현장에서는 게이들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데 과연 이런 것이 문화를 이해하고 세상을 배워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원래 취지에 맞는 것인지 물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저주 받은 여행이다.

머물게 된 민박집 주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이 음식에 독약을 넣고 쥐가 농부로 변신했다느니 호들갑을 떨다 몰래 도망친다.

그러고서는 유대인을 막을 45구경 권총을 구입하고 앨라배마에 도착해서는 미국 남부의 식사문화를 배운다면서 똥 주머니를 식탁으로 가져온다.

선물을 사기 위해 골동품 점에 들어가서는 찰리 채플린 만큼이나 포복절도할 몸짓을 보이고 아자맛이 자신이 점찍은 광고판의 여자를 보면서 자위를 하자 죽일 듯이 덤벼든다.

둘이 알몸으로 싸우는 장면은 장관이다. 웃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다. ( 이런 장면까지 세세히 쓰는 것은 친절한 영화평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 연재 서평에서는 스포일러는 언제나 무시된다.)

아자맛과 헤어진 보랏은 이제는 길위에 있다.

차는 고장이 났는지, 기름이 떨어졌는지 멈춰서 있고 야영을 하는 학생들과 어울려 그들이 지껄여 대는 이야기에 입을 벌리고 다물 줄 모른다. ( 미국의 문화는 보랏이 만나는 이런 저런 미국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녀로 알고 사랑을 다짐했던 광고판의 그녀가 사실은 오럴섹스의 명수인 것을 알고는 기가 팍 죽는다.

이제 그를 지탱하는 힘은 없다. 그녀가 표지 모델인 잡지책을 불태운다. 그리고 여전히 동행하고 있는 닭을 죽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유롭게 살라고 풀어준다.

국가: 미국

감독: 래리 찰스

출연: 사챠 바론 코헨, 켄 데이비찬

평점:

: 닭의 목을 따지 않고 살려 준 것이 어떤 의미인지 따져도 좋고 무시해도 좋다. 그것보다는 닭을 살려준 뒤 보랏의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그 뒤를 따라가 보는 것이 급하다.

이번에는 교회다. 미국하면 기독교고 교회이니 그것이 빠질 수 없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기 바라는 보랏에게 행하는 교회 목사의 혀놀림과 현란한 말솜씨 그에 견주는 춤과 노래는 가히 이 영화의 마지막이 처음이나 중간에 비해 결코 느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절정의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헤어졌던 아자맛을 만나고 둘은 귀국한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다.

귀국해서 제버릇 개줬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는 커녕 거기에  혹하나 더  붙여 왔다고 말하고 싶다.

3주간의 미국 여행은 끝났다. 애초 목적을 보랏은 달성했을까. 아니면 거지 같은 시간만 보냈을까. 미국 문화가 그 정도라면 주눅들 필요없다는 용기가 생겼을까.

이 영화는 무지한 이방인의 눈으로 미국을 조롱한 것은 아닐까, 영화가 끝나면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어쨌든 말초적이고 노골적인 풍자, 이 모든 것은 매우 진지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역겨우면서도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