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타이타닉(1997)- 사랑은 절박하고 비극은 처절하다

2021-03-02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너무 유명한 영화는 망설여진다. 안 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면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숟가락 하나 얹은들 작은 의미조차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더듬어 보니 영화가 나온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고 젊은 주인공이 백발이 성성하다면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너무 유명하지도, 안 본 사람도 많이 있을 거라는 편견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을 소개하고자 한다.

심심풀이 땅콩으로라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면 고맙고 그 때문에 이런 영화가 있었어, 하면서 찾아보는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더없이 즐거운 일이 되겠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몇 자 적어본다.

가난하지만 꿈많은 화가 지망생이 있다. 그의 꿈은 뉴욕에 도착해 유명해지는 것이고 돈을 버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그런 무모한 용기 하나로 타이타닉에 승선한다. 초호화 유람선이니 값이 만만찮다.

도박으로 표를 구했다고 치자.

여기서부터 잭의 운명은 도박장의 바카라 같이 숨돌릴 새 없이 돌아간다. 출항에서 침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잭이 가난하다면 칼(빌리 제인)은 어마어마한 부호다. 그는 가장 비싼 일등석에 있다. 아름다운 약혼녀 로즈( 케이트 원슬렛)가 동행했다.

가난한 잭과 부자인 칼과 그녀의 여자 로즈, 이 셋이 영화의 중심축이 되겠다.

그런데 로즈는 돈 많은 칼보다는 가난뱅이 잭에 끌린다. 잭은 말할 것도 없다. 칼과 잭이 로즈를 놓고 사랑 다툼을 벌인다. 애초에 이 싸움은 상대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처지나 앞뒤를 잘 헤아리지 못하고 범인 칼을 앞에 두고 용감하게 짖어 대는 하룻강아지가 잭이니까.

잭의 앞날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장난꾸러기다. 그녀의 특기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영화가 아니라면 당연히 잭은 범의 한 입 거리로 끝나기 십상이다. 범이 입맛 다시기도 전에 강아지는 사라져야 옳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다. 잭과 로즈는 거지와 재벌처럼 사랑한다. 사랑이 깊어 지자 둘은 뉴욕에 상륙하는 즉시 도망가기로 의기투합한다.

칼이 가만히 있을까. 칼은 가슴속에 품은 칼로 잭을 난도질 할 기회를 노린다.

갈고 닦은 복수의 칼을 꺼내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절도범으로 몰고 급기야 권총을 쏜다. 그때마다 잭은 영화의 주인공답게 잘도 이겨낸다.

그러나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다.

배가 침몰 직전에 놓였다. 빙산에 부딪쳤다.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배에 탄 수천 명의 승객도 마찬가지다.

잭과 로즈의 사랑이 익어갈수록 배의 침몰은 속도를 내고 마침내 끝 모를 대서양 속으로 가라앉는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들어서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니 줄거리는 여기서 일단 멈추자.

내가 주목한 것은 칼이다. 잭만큼 로즈를 사랑하는 칼.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는 충분히 아이나 여자에 앞서 구명정에 오를 수 있었다.

▲ 가난한 화가가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해 오늘 밤에는 눈 대신 비가 푹푹 내린다.

실제로 돈으로 매수한 덕분에 그런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로즈를 찾기 위해 물이 차오르는 배를 떠나지 않는다. 잭에 대한 복수의 일념이 더 강했다고, 사랑은 뒷전이라고 치자.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도록 만든 잭을 처치하겠다는 그 신념 하나만큼은 높이 사줄 만하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앞으로 가지 않고 다시 뒤돌아서는 용기는 백만장자의 자격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생명보다 사랑이나 복수를 앞세우는 재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잭의 사랑이 무모한 것이라면 칼의 사랑 역시 그렇다. 무모한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놓고 사생결단을 한다. 둘 중 나는 죽어야 끝이 날 것이 분명하다.

누가 죽었을까. 언제나 친절한 영화평이니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하지 않겠다. 안타깝게도 잭이 죽었다.

주인공이 죽는 영화라니 애잔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칼은 자신의 손으로 잭을 죽이지 못했으나 어쨌든 연적이 죽었으니 가슴은 후련할 것이다.

그는 아이를 인질로 삼아 구명정에 올라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 틈에 끼었다. 로즈도 살았다.

그러면 칼과 로즈는 다시 만났을까. 이 질문에 답은 하지 않겠다. 아무리 친절해도 다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칼의 비극을 기어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 악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흐름상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즈는 천수를 누렸을까. 그렇다. 쉽게 답한 것은 로즈가 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끌고 나가는 힘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아서 다이아몬드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보물 사냥꾼들 앞에서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지상 최대의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녀는 왜 그 다이아몬드를 끝까지 간직하고 있었을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잭이 준 것이 아니고 칼의 실수로 얻은 것이라고 해도 그녀는 다이아몬드의 영롱한 빛을 보면서 칼 대신 잭을 평생 사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솔로로 인생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칼 아닌 누군가와 결혼해서 자식도 보았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로즈 옆에 그녀를 간호하는 손녀가 등장해 자연스럽게 그녀가 혼자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린다.

여기서 로즈를 탓하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 장면은 그저 그냥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 눈치 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가: 미국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드 윈슬렛

평점:

: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영화로 대박을 터뜨렸다. 많은 상을 받았고 엄청난 관객을 끌어모았다.

지금까지의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다. ( 이 기록은 자신의 <아바타>가 깨기 전까지 이어졌다.)

사랑과 비극이라는 극과 극의 대립은 관객을 기쁨과 전율의 세계로 이끌었다. 두 사람이 사랑할 때 관객들은 웃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을 때 가슴을 쥐어짰다.

뗏목에 기대 차갑게 식어가는 잭의 외마디 절규를 로즈가 들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에서는 숨소리조차 멎었다.

누구나 그런 멋진 사랑을 꿈꾼다. 가난한 청춘이 재벌과 엮이는 과정을 한 번쯤 상상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아직 젊은 청춘이라면 그래서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기필코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영화 한 편이 코로나 19로 슬픈 그대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어떤 작은 다짐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