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두고 의-정간 전운 고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재입법...의협 "의료현실 반영 못해 폐기해야"

2021-01-13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정부와 정신건강의학과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의협도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정부와 정신건강의학과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의협도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정신보건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정부의 탁상행정으로 개정 방향이 마련됐다는 게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는 이유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는 지난해 11월 28일 ‘정신의료기관의 시설규격 및 장비 관련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을 재입법 예고했다.

해당 개정안을 살펴보면 정신의료기관의 입원실 면적을 넓히고(1인실은 6.3㎡→10㎡, 다인실 4.3㎡→6.3㎡), 입원실 병상 수를 줄이며(10병상→6병상), 병상 간 이격거리를 1.5m 이상 두도록 하고, 300병상 이상 정신병원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격리병상을 두도록 정신의료기관의 입원실 시설규격 등을 개선한다는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진료실에는 위급상황에 긴급 대피할 수 있는 비상문 또는 비상대피공간을 설치하도록 했고, 환자ㆍ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위급상황에 관할 경찰관서와 연결되는 비상경보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

100병상 이상인 정신의료기관은 보안 전담인력을 1명 이상 두도록 했으며, 시설규격 강화에 따른 경과규정을 두고, 규칙 시행 당시 개설됐거나 개설(변경) 절차가 진행 중인 정신의료기관은 입원실 병상 수 및 이격거리, 격리병실 설치 등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특례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지원 대책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령 개정을 강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먼저 의협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정신과 입원실을 운영하는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개정안의 시행시 예측되는 병상수 변화와 그에 따른 각병원의 의견서를 취합했다.

이에 따르면 개정안과 같이 2023년 1월부터 시행할 일인당 병상면적 6.3m², 병상 간 이격거리 1.5m, 병실 최대 인원 6인실 규정을 따르는 경우 최소 36%에서 최대 49%의 병상 감소율을 보이고, 건물에 입주한 형태에선 병의원 운영 불가로 입원실을 폐쇄 내지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

또한 자ㆍ타해 위험성으로 인한 보호자 동의 입원, 응급 입원, 행정 입원, 반복되는 음주 재발 및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서 재발하는 정신병, 자살 사고가 심한 우울 불안 장애, 재원기간이 짧고 입퇴원을 반복하는 환자들을 급성기 환자로 봤을 때 입ㆍ퇴원 현황을 밝힌 4군데 병ㆍ의원에서 3개월 이내 퇴원한 급성기 환자 비율이 43%, 58%, 80%, 84%를 보이고 있다.

의협은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정신과 입원병상수가 적은 의료 현실에서 중소규모의 정신의료기관은 지역사회의 급성기 정신질환자에 대해서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대처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며 “개정안은 이러한 중소규모의 정신의료기관의 급격한 병상수 감소를 일으킴으로써 정신의료기관의 운영 축소 내지 폐업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도시내 정신과 입원실 공동화현상’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현재도 어려운 급성기 환자의 사회적 대처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위험이 클 것이라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이어 의협은 “의료기관에 대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 방안 없이 개정안과 같이 정신의료기관의 입원실 시설기준 등을 개선하는 등 의료기관에만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정신의료기관의 경영난을 초래한다”며 “관련 기준들의 개선 및 추가 설비 설치, 인력배치시 발생될 문제점 및 정확한 비용추계 등을 의료계와 긴밀히 협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개정안에 대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정신의료계도 우려를 표하며, 개정 저지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감염병이 유입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며 “시설 보완으로 갑자기 퇴원해야 하는 환자들도 갈 곳을 잃는 등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부작용은 오롯이 환자와 가족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사회는 “수많은 환자는 길거리로, 고용됐던 의료인력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에 대해선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의문”이라며 “졸속적인 이번 개정안 대신 보다 현실적인 대안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코로나가 엄중한 상황에서 정신의료기관의 안전과 감염예방을 위한 관심과 개선의 취지에는 동의하고, 학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사항이 포함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학회는 이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도 의료현장의 현실에 맞지 않을 경우 취지와는 달리 개정 시행규칙의 통과 이후는 돌이키기 어려운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돼 코로나19 사태 극복 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