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Cure)에서 케어(Care)로”

세브란스 호스피스실 이창걸 실장

2006-02-01     의약뉴스
"의사가 친절해지면 환자는 곧 알아채요. 호스피스 담당자가 오면 ‘죽음의 천사’가 왔다고 하기도 하고요."

아름다운 죽음은 가능할까. 이승에서 좀 더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치료불가 판정을 받고도 죽음을 준비하기는 힘들다. 준비는 곧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의 이창걸 실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은 호스피스의 의의를 잘 알고 있다.

“의미 없는 치료가 많아요. ‘가망 없다, 이제 그만 합시다’ 하면 대부분이 받아들이지 않아요.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은 아버지나 아내 치료에 돈 아낀다는 눈치를 받을까봐 치료비를 쏟아 붓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살아남게 될 사람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하는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대체 치료 같은 다른 치료법이 있지는 않을까하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나온 선택일 것이다.

호스피스(Hospice)의 목적은 통증 완화와 상담, 영적 치료 등을 통해 말기 환자가 인간답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병의 원인 치료(cure)에서 마음과 주위 가족까지 돌봐주는 케어(care)로 확대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상적인 기간은 6개월 정도라고 봅니다. 지금 세브란스에서 호스피스를 요청받는 때는 돌아가시기 전 35~40일인데 3~4년 전의 27~28일에 비해 늘었어요. 그러나 이 정도 시간으로는 살아온 세월을 정리하기에는 짧아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굳이 되새김질하며 삶을 정리하기란 좀 끔찍하지 않을까. 하지만 <유서쓰기>놀이를 할 때의 충만된 기분이나 급작스런 사고로 주위사람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려 보면 ‘삶을 마무리할 시간’은 당사자나 남겨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 같다.

“평생 안 보려고 했던 전 아내와 전 남편이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도록 주선하고, 구치소에 있는 아들을 데려와 아버지를 보게 해주었어요.”

호스피스는 담당 의사와 치료받을 때의 담당 주치의, 사회 복지사, 간호원, 그리고 영적 지도자(성직자) 등이 참여한다. 수액 공급과 진통제 치료가 이어지고, 사회 복지사와 성직자의 상담도 진행된다.

의사들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고 치료불가 판정을 내렸다는 데서 책임감도 느낀다. 병원 내 호스피스 병실은 여관비보다 싸고, 베테랑 간호사들은 임시직을 감수하고 있어서 이 활동은 봉사의 성격이 짙다. 종교 관련 병원에서 호스피스실을 많이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실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죽음에 대하 두려움이 덜하지요.”

그러나 그는 일부 강성 종교 단체에서 선교를 위해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하면 말기 환자(주로 암 환자)들은 일생을 정리할 시간을 얻게 되고, 가족은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말기 환자에게 들어가는 치료비가 숨지기 전 한두 달 동안에 최고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일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적으로도 보험 재정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성직자, 간호사, 사회 복지사, 의사 등이 팀을 이뤄야 하는 집약적 케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건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 실정에서는 재료비 등에 치중하는 등 의료 수가가 저 평가되어 있어요.”

그는 ‘통증 치료’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로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에 대해 환자나 가족은 중독을 우려해서 거부하기도 하고 심지어 의사들도 이에 동조해 약한 진통제를 쓰기도 한다.

또한 마진이 거의 없고 마약 남용과 유출을 막기 위해 법을 까다롭게 재정해 놓아 일선 병원에서는 처방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개가 없어지면 시말서를 써야 합니다. 호스피스가 발달한 영국에서는 많이 완화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는 OECD 30개 국가 중 마약성 진통제 처방률이 가장 낮아요.”

식약청 마약관리팀 관계자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과 유출은 거의 없는데 그것이 규제를 ‘타이트’하게 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꾸로, 법개정을 해서 마약류 취급이 가능한 의사에게 더 권한을 주는 대신 일어날 수 있는 남용․유출 사고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다.

“<아름답게 죽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서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어요. 이주일 씨 같은 공인이 ”국민 여러분, 그동안 성원해 줘서 고마웠다“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필연적인 죽음 앞에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또 당사자도 살아온 생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태어난 것이 축복이었듯 죽을 때도 아름다울 수 있다면 인류는 한 단계 진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약뉴스 김유석 기자(kys@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