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어디있고 타락천사는 왜 오지 않는가

2020-08-12     의약뉴스 이순 기자

토벌대 대장과 그들을 노예처럼 다루던 일본군 대좌가 죽었다는 소문은 간도 조선인 마을에 조금씩 퍼져나갔다. 듣는 귀가 있는 독립군 잔당들도 그 소식을 들었다.

호석 아버지는 이때다 싶었다. 팔 잘린 부대장을 찾는 것이 그만큼 쉬어졌기 때문이다. 심어둔 프락치를 이용하거나 기차역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기회는 올 것이다. 그러기 전에 그는 주변 병원들을 돌았다.

그가 아무리 독종이라고 해도 잘린 팔을 들고 나머지 한팔로 스스로 꿰맬 수는 없다. 8명의 대원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병원 수색에 내보냈다.

그들은 혹시 몰라 갑자기 찾아온 두통이나 감기 때문이라고 무슨 일로 왔으냐고 병원 관계자가 물으면 대답하라고 사전에 알려두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무기는 보이지 않도록 품안 깊숙이 감추되 언제든지 빼낼 수 있도록 준비를 단단히 시켰다.

대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흩어질 때 호석 아버지에게 경례를 했다. 토벌대를 토벌하는 독립군의 의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이것은 마지막 작전이었다. 그전에 임시정부가 내린 무장해제 명령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 된다면 기꺼이 받으리라, 거리로 나온 독립군은 이런 각오를 다지며 입을 악물었다.

대원들이 떠나고 얼마 후 빈 공간에 작은 햇살이 들어왔다. 여름 볕은 길었으나 오후로 다가오면서 그림자의 꼬리는 빠르게 사라졌다.

홀로 남은 호석 아버지는 책상 위에 놓인 권총을 가져와 장전 상태를 확인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도로 하나 건너 바로 이웃해 있는 곳에 놈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대원들은 이곳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떠났다.

호석 아버지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것은 작전의 결과이기보다는 일종의 예감이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맞아떨어지는 예감을 기대하면서 호석 아버지는 급히 도로를 건넜다. 간도 제일병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조선인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환자를 받았으나 이용자는 대개 조선인이었다. 서투른 외국어보다 조선말을 쓰는 의사에게 조선인들은 동포애에 앞서 신뢰를 기대했고 의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훌륭한 의사였다. 그는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졌다. 호석 아버지도 한 번 치료받은 경험이 있어 이런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간판 아래서 잠시 망설였다.

해방 조국에서 그까짓 부대장 한 놈 살려 둔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냐고 따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그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것이니 누구에게나 중한 목숨 살려 주라고 말하는 독자도 있음을 안다.

조선 땅 어딘가에 있을 엄마를 찾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고 귀향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는 성화도 무시할 수 없다.

호석 아버지는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라고 끄덕이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른 자는 모두 살려 둬도 그자만큼은 아니다. 독립군의 제단에 바칠 어린 양은 그의 붙어있는 숨통을 끊은 것이었다. 그래야 먼저 간 동료들에게 이제야 복수를 했다고 술 한 잔 따라 올릴 수 있다.

그는 마음이 약해져 살려 두자는 생각이 들까 봐 불러 모은 대원들을 급히 병원을 내보냈다. 가능하면 병원 밖에서 처리할 것이나 부득이할 경우 의료용 침대 위든 진료실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무참하게 살해하고 지시했다.

대원들이 떠나고 나자 호석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명령이 부당하지 않고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부대장의 잔혹 행위를 떠올렸다.

제발 죽여달라.

벌겨 벗겨진 독립군은 부대장에게 애원했다. 통사정하면서 네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니 원망은 없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러나 부대장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고통을 가했다. 피부를 벗겨내고 침을 뱉았다. 그리고 조센징 나쁜놈, 빠가야로 라고 조선말로 욕을 했다.

그 욕을 고스란히 독립군은 받았고 욕을 받은 후 독립군은 마지막 생명줄을 놓고 늘어졌다.

지독한 조센징.

부대장은 한 번 더 욕을 한 후 부하를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땅에 있던 군용 휘발유 통을 들어 올렸다. 잔악무도한 행동이었다.

신이 있다면 이 자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하고 타락 천사를 시켜 사람이 아닌 뱀으로 변신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방 어디에도 없어 그자는 뱀이 아닌 여전히 사람의 가죽을 쓰고 해방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면서 수술대 위에 누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됐다고 말했다. 면도칼로 종이를 자르듯이 이런 상처를 낸 자는 분명히 일본도를 아주 잘 쓰는 명인 축에 들거라고 의사는 피 묻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토벌대 부대장은 자신의 팔을 자른 일본인 대좌를 떠올렸다.

그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의 밑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은 어디가지 않고 고스란히 부대장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비록 자신이 총으로 그를 죽였지만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존경했다. 오늘의 그는 모두 그 때문에 이룬 성과였다는 것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