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길소뜸(1985)

2019-12-01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연기자도 아닌데 바로 눈물을 쏟아 낼 수 있을까. 헤어진 지 33년이 지났어도 혈육이 확인되면 바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러니까 KBS가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한 것이 1983년이니 아주 오래전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얼싸안고 울고불고 그야말로 전국이 눈물바다였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누님을 흐느끼며 외치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먹먹하다. 누가 빨리, 누가 더 많이 우는지 내기하는 경연장 같았다.

헤어진 혈육이 그렇게 서로 만나는 장면은 분단과 전쟁이 가져온 가슴 아픈 한민족의 비극 때문이다. 

방송 2년 후 임권택 감독은 <길소뜸>을 통해 또 한 번 눈물샘을 자극했다. 하영( 어린역 이상아, 성인역 김지미)의 가족 찾기도 그런 극적인 상봉과 눈물이 줄줄 흐르는 행복하면서도 슬픈 장면으로 이어질까.

성인 하영은 화목한 가정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산다. 텔레비전 방송은 이산가족이 만나서 한 많은 설움을 토해내고 있다. 늦은 저녁,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화면은 과거로 돌아간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황해도 연백군 길소뜸에서 하영이 아버지 사후 아버지 친구 집으로 온다. 그 집에는 하영보다 위인 아들 동진( 어린 동진 김정팔)이 있다. 동진이 중학생 모자를 쓰고 있어 하영은 중 1이나 중 2로 보인다.

 

둘은 자전거로 같이 등교한다. 그러는 사이 오빠, 동생 사이를 넘어 좋아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리고 비 오는 어느 날, 빈집에서 마침내 선을 넘고 만다.

하영이 임신을 하고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노발대발한다. 하영은 동진의 이모가 사는 춘천으로 쫓겨난다. 

아버지는 지병인 고혈압 악화로 죽을 운명이다. 그는 죽기 직전 하영이를 보고 싶어 한다. 동진이 부랴부랴 춘천으로 가고 하필 그날 전쟁이 터진다. 이모 집에 도착하니 하영은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며 이미 떠난 뒤였다.

이 정도만 파악해도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대충 짐작은 갈 것이다. 이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앞서 말한 대로 화영은 다른 남자를 만나 대학생 딸과 고3, 고1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화영의 과거를 알고 있는 현 남편은 부담 갖지 말고 이산가족 찾기 현장이 벌어지고 있는 KBS 본관 만남의 장소에 가보길 권한다. 마침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를 찾는 이가 방송을 타고 있다.

그가 화영이 낳은 아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관객들은 할 것이다. 구구절절 헤어지게 된 사연을 적은 피켓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곳에서 두리번거리던 화영이 깜짝 놀란다.

그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죽은 줄 알았던 그 남자 동진이 서 있다. ( 성인 동진역은 신성일이 맡았다. 그의 중후한 연기가 돋보인다. 젊은 시절보다 연기가 좋다. 감정표현이 살아 있다. 감독은 김지미가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고 회상한 바 있다.)

여기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는 것을 트집 잡을 필요는 없다. 우연히 사건은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긴장이 순식간에 고조되고 감독은 어렵지 않게 다음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만났다. 감정이 아니 없을 수 없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둘 다 첫사랑이고 둘 사이에는 아들(어른 아들 한지일)이 있다. 그 아들을 찾기 위해 방송국 계단에서 만난 화영과 동진. 둘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더듬는다.

춘천에서 남하하다 동진은 의용군으로,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자신을 숨겨준 은인의 딸과 결혼해 아들만 다섯을 두고 있다. 화영은 음악선생의 심부름을 하다 간첩으로 몰려 7년 형을 언도 받는다. 

1960년 감옥에서 나왔을 때 어린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없다. 그렇게 잃어버린 아들을 두 사람은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과 마주친다. 친자확인 끝에 아들임이 확인되면 동진은 장남으로 그를 입적 시키겠다고 말한다.

화영은 망설인다. 그리고 아들을 부정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백 프로 아들인지 확신할 수 없다며 돌아선다. 쌍가마와 우물 가슴 등 신체적 특징을 확인하고도 그녀는 아들을 의심한다. 아니 의심하는 척한다.

여기서 화영의 선택을 놓고 비난을 퍼부을 수는 없다. 고아로 거친 세상을 살아온 아들과 현재 자신과는 너무나 큰 벽이 존재한다. 그녀는 지금의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동진은 아니다. 화영이 준 대표이사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끝났다.

국가: 한국

감독: 임권택

출연: 김지미, 신성일

평점:

 

: 임권택 감독은 <짝코>에서 분단과 이념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 그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 <길소뜸>이다. 분단이 없었다면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화영과 동진은 부부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은 바꿔 놓은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했다. 세월의 힘은 그런 것이다. 앞서 눈물샘이 쉽게 터지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핏줄이라고 해서 수십 년 만에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 바로 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봤다고 언급했다.

부모 자식 사이라면 감정이 복받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울고 나서 눈물, 콧물을 닦은 이후의 문제는 복잡하다. 화영이처럼 양쪽이 서로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면 현실은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 만난 가족끼리 빈부의 문제가 발생한다.

화영의 아들은 빈한하게 산다. (저수지 옆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건져 주는 일을 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 부인은(굳이 말하자면 화영의 며느리) 자가용을 타고 온 화영과 동진의 아들이자신의 남편이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그것은 돈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도움을 받겠다는 노골적인 희망을 품고 있다. 이것이 화영이 아들을 부정한 전적인 이유는 될 수 없지만 일부는 작용했을 수도 있다. 천륜 앞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친족을 확인하고도 피하고 재회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만나기를 꺼려하는 이유이다. 이산의 만남은 그것으로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이질감은 핏줄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여기서 잠깐.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을 옮겨 본다. 좀 지루하고 신파적이기는 하지만.

“극동의 작은 나라 한반도. 일제 36년의 통치. 나라가 열린 이래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불행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열강의 침략. (자력이 아닌) 외세에 의한 해방으로 인한 3.8선은 단순한 국토의 분단이 아닌 민족의 분열로 이어지고 1천만 이산가족은 여기서부터 기인한다. 지금 이 순간도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에 시달린다. 155마일 휴전선, 33년간이나 무력대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는 김연자가 부른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 슬픈 감정이입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