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오
2005-11-27 의약뉴스
그때 한 교직자가 ‘일은 기성세대들이 저질러 놓고 왜 철부지 어린 중학생이 양심 선언을 해야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구민 정화 결의 대회는 무산되었고 용기 있는 교직자의 충언은 지금도 신선한 충격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경제를 살리자며 세 방송사들이 법석들이다. 거품 경제나마 경기가 활성화했을 때는 그 공을 위정자들의 공치사로 돌리더니 지금은 마치 국민들의 사치와 낭비가 국가 경제를 망쳤다는 투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이고 소비는 생산의 효자라는데 그렇다면 국민들의 지나친 소비 생활이 중소기업을 살렸으면 살렸지 그 사장들을 자살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정경 유착과 리베이트의 자세한 내막을 아는 국민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거둔 석유 비축 기금의 행방을 아는 국민도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벼룩 한 마리 잡으려다가 초가 삼간을 다 태운다는 말도 있다. 5공(五共, 제5공화국)을 청산해야 한다며 지루하게 펼쳐진 언론 재판과 정치 게임의 깜짝 쇼로 탄생한 실명제는 얻은 것도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엔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간첩 사건과 북괴 남침 정보를 깜짝 쇼의 단골 메뉴로 사용하곤 했다. 갑작스런 실명제 발표로 당시 얼마만큼이나 불리한 상황을 호전시켰는지는 모른다.
밝히지 못하는 수십 조원의 검은 돈이 있는 자들의 지하 창고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치 그 많은 돈을 서민들이 감춘 채 예금도 하지 않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고 매도를 당하는 느낌이다.
금강산댐이 어떻고 63빌딩의 절반이 물에 잠긴다며 코 묻은 돈까지 갈퀴질한 결과 국민들은 실제 상황으로 북괴가 남침한다 해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감에 중독되었다.
후보자의 명함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비현실적인 선거 자금 규제법을 만들어 놓고 재수 없이 걸려든 후보가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판결 받으면 당선을 취소시키는 마당에 전직 대통령은 수천 억 원을 비자금으로 착복했다가 들통이 났다.
부정 부패를 뿌리뽑는다며 전직 대통령들을 사정하던 지도자가 행정고시에도 합격한 적이 없는 아들의 월권행위 때문에 오히려 더 강도 높은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크고 작은 공(功)을 자기 것으로 돌리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지금의 부정 부패와 경제 난국의 책임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인사는 아무도 없는 세상이다.
불쌍한 것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채 ‘네 탓으로’ 경제 파탄의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 국민들뿐이다.
김사연( 수필가, 인천시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