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릴 수 있는 막대기가 있는지 주변을 살펴 보았다

2019-07-31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사과를 막 한 입 깨어 물어보려고 할 때 나는 문득 그것을 입에서 떼어내고 손안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붉은색이 나는 둥그런 사과를 쳐다보면서 이브를 유혹한 이것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과였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배나 복숭아나 고구마라 했더라도 뭐 달라질게 있을까.

이것은 사과에 대한 모독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과를 먹었다. 꼭꼭 씹어 먹고 또 씹어서 단물이 사라질 때까지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았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과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였다. 맛있게 먹고 잘 먹어 주는 것이 익은 사과에 대한 인간이 차려야 할 바람직한 태도였다.

나는 다시 걸었다. 오후의 태양은 이제 좀 수그러들었다. 동풍이 불기 시작했고 하늘이 흐려져 있었다. 걷기에 한결 수월해진 나는 하늘을 보는 대신 땅을 보고 걸었다.

그 때 앞쪽에서 어떤 움직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서늘한 기운도 감돌았다. 멈추고 앞쪽을 보는데 나무 사이로 무언가 이동하는 것 같은 낌새가 확실했다.

가만히 보니 뱀이었다. 사과를 먹다가 멈칫거렸던 것은 저 뱀 때문이었던가. 나는 뱀이 이쪽을 보느라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한자리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도 뱀을 보고 뱀도 나를 보고 있었다. 서로 보면서 탐색전을 펼치는 중이라 섣불리 다음 행동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뱀보다 먼저 머리를 굴렸고 저 뱀을 한번 잡아 보자는 심산이었다.

뱀이라면 소싯적에 작대기로 몇 차례 때려잡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그것이 설사 독사라고 해도 말이다.

설악산 칠부 능선의 이 뱀은 독사가 틀림없었다. 꽃뱀류와는 달리 독사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나도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움직인다고 해도 사방 10 미터 내에서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꽃뱀이었다면 벌써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나는 발을 뻗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막대기 같은 것을 눈을 돌리면서 찾았다.

지팡이가 있었다면 손쉬울 것이지만 그것을 사용한 적이 없어 떨어진 나뭇가지를 수소문했다. 그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그런 것이 몇 발자국 안에 있을리 없었다.

나는 길게 뻗어 올라온 싸리나무를 주목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밑둥을 꺾으면서 눈은 숲속을 응시했다. 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꺾은 나무의 끝을 잘라 때리기 좋은 막대기로 만들고 한 발 앞으로 나가 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몸이 이동하면서 시야가 확보되자 수풀 아래 숨은 뱀의 형태가 조금 드러났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독사였다.

물리면 일곱 발자국 걷기도 전에 죽는 칠점사는 아니었다. 회색 바탕에 연한 갈색이 띄엄띄엄 있는 살모사였다. 몸통이 굵고 꼬리가 짧았다.

영락없는 쇠살무사였다. 어미까지 잡아먹는 살모사가 고개를 바짝 쳐들고 간혹 혀를 낼름거렸다. 손에 막대기가 있었으므로 나는 겁이 없이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내쳐서 잡을 것인지 아니면 쫓아 버릴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죽일 생각은 없었다. 녀석도 생명이고 생명을 헤치는 것을 나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놈의 생명은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몰랐다. 갑자기 달려들기라도 하면 내가 막대기로 후려쳐 기절시킨 다음 발로 밟아 죽일지도 몰랐다.

길게 뻗은 수풀을 나무로 누르자 놈이 몸통이 확 드러났다. 엄폐물이 사라지자 놈이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틀었던 똬리를 갑자기 풀더니 대가리를 번쩍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