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2019-03-11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그들은 멋지게 건배를 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잔을 비웠다. 회접시는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누군가 호기롭게 외쳤다.

여기 광어회 추가. 그리고 역시 회는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맛이야 하고 했던 소리를 또 했다. 질릴 만도 했건만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내는 술을 먹으면서 그 정도 성의 표시는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파도가 찰랑이는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섬들을 보면서 먹는 술은 그 자체로 좋았지만 안주까지 그럴싸 했으니 흥이 아니 일리 없었다.

얼마 후 수북히 쌓인 회가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뼈에 살이 붙어 있었다. 사진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다들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심장이 뛰지는 않았지만 눈은 살아서 꿈틀거렸다. 동공이 움직일 때마다 일행은 큰 소리로 살아있다, 광어가 살아 있어. 한마디씩 했다.

비싼 거야. 많이들 먹어. 주문했던 그가 호기롭게 말하면서 잔을 들었다. 다같이 따라 했다. 그리고 채워진 잔을 비웠고 젓가락으로 살점을 헤집었다. 초장을 찍고 한 점을 집어 먹던 그가 아 얏,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씹던 회를 뱉어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을 털었다. 그런데 하필 그것이 맞은 편 사람의 식탁위로 떨어졌다.

플라스틱이다. 화를 낼 법도 한데 맞은편 사람은 화 대신 이렇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그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상 가운데로 모았다. 사람들이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스틱은 살과 함께 있었다. 두툼하게 썰어낸 광어회 속에 그것이 박혀있었다. 위장도 아닌 살 속에 든 조각을 보고 사람들은 아연 실색했다.

다들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취기 때문인지 그 사실은 금새 잊고 사람들은 다시 잔을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됐다. 뼈를 추리는 과정에서 이번에는 플라스틱이 살이 아닌 뼈 쪽에서 나왔다.

그들은 더는 회를 먹지 못했다. 일행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어회가 아닌 플라스틱 회를 더는 먹을 수 없다고 투덜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항구에는 집어등을 밝힌 배의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고 있었다. 만선을 하고 들어오는 배가 막 나가려는 배와 얽혀 혼잡이 일기도 했다.

시끌벅적한 항구를 뒤로 하고 일행은 차를 나눠타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일행이 떠난 자리를 치우던 종업원은 회 속에 섞여 있는 플라스틱 조각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술상을 정리했다.

그는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이런 장사도 다 끝난 것인가. 그는 주인이 해야 할 걱정을 대신하면서 행주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살 속의 플라스틱 조각을 집어내 불빛에 대 보았다. 선명한 그것은 볼펜 심이었다. 예리하게 잘려나가기는 했어도 비스듬히 깎인 부위에 검은색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