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8-12-28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마침내 리처드가 퇴원하는 날이 왔다. 모두들 기쁜 얼굴이었다. 물론 당사자보다 더 기쁠 수는 없지만 그곳 사람들은 모두 내일처럼 리처드의 기적 같은 회복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는 리처드를 보면서 처음 그가 간호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리처드는 그 때 매우 왜소했다.

거구였던 그의 몸은 바싹 말랐으며 앙상한 다리가 침대 끝 쪽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관 값이 많이 나가겠다는 해서는 안 되는 농담을 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시트 밖으로 비어져 나온 긴 다리를 안쓰러워했다.

그녀는 리처드가 곧 죽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의료진이 알려주지 않아도 그곳 병동의 모든 사람들은 리처드가 언제 죽을지 그래서 그 자리에 어떤 신규환자가 들어올지 궁금해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가 리처드를 맡았다. 한국에서 온 낯선 여자의 간호를 받게 된 리처드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조금씩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그녀는 서툰 영어로 그에게 아직 살날이 많이 있다고 용기를 넣었고 그때마다 리처드는 고개를 돌렸었다. 사실 리처드의 회복이 그녀의 간호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억측이 있을 수 있다.

누가 간호해도 리처드는 살 사람이었고 그저 운이 좋은 그녀가 우연히 그를 간호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놀라운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암말기 환자가 그녀의 간호를 받은 후 한 달 만에 퇴원한다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밖에는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리처드에게 가족은 없었다. 이혼한 아내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그들 사이에 아이들은 없었다.

병동에 오기 전에 그는 택시 운전수였고 동료가 그의 퇴원 길에 마중 나온 것이었다. 리처드는 손을 흔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리처드의 눈이 어느 한쪽에 고정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잘 가라고 눈인사를 할 때는 작은 눈에서 눈물이 조금 맺혔다. 그녀 뒤에는 절대자가 있었다. 그런 사실을 그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간호했던 환자가 완치돼서 나갈 때는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병실로 돌아오자 다른 환자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늙은 흑인 여자 환자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리처드의 어머니였다. 리처드가 나가면서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을 그녀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녀는 이 환자 역시 리처드처럼 정성을 기울여 간호했다. 말을 들어주고 고통에 괴로워하면 가만히 손을 잡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