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관제 시범사업 참여 두고 의계 내홍 조짐

집행부 결정에 일부 반발..."원격의료 빌미ㆍ주치의제 변질 우려"

2018-12-19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추무진 전 회장(왼쪽)과 최대집 회장.

정부가 추진 중인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가 최근 참여 입장으로 선회한 가운데 이로 인해 의료계 내홍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편으론 의협의 만관제 참여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주치의 제도로의 변질이나 원격의료 확대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고혈압‧당뇨병 등록 관리사업,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 등을 하나로 통합한 동네의원 중심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등으로 구성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단’(추진단)을 발족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정부가 추진단 구성과 기존 시범사업의 통합모형(안)을 마련함에 있어 실제 시범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의료계의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다면서 반대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다.

이렇게 반대의사를 표명하던 의협의 입장이 바뀐 것은 지난 8일 시도의사회장단과 회의에서부터였다. 시도의사회에선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을 진행해봐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의협이 적극 참여하는 조건으로 시범사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어 지난 12일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의협은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에 대한 참여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의협 박종혁 홍보이사겸대변인은 “만관제에 대해 의협은 뚜렷한 입장이 없었고, 분란만 계속 있었던 상황”이라며 “이번에 정부와 어느 정도 논의 구조를 만들고, 신뢰 관계를 쌓는데 성공했다. 만관제에 대한 회원들의 입장이 시도의사회장들에게 반영됐고, 시도의사회장들이 만관제 시범사업을 한번 진행해보자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게 아니다. 의협 회장은 회원들의 의견이 있다면 자신의 의견을 굽힐 줄 알아야한다”며 “협회는 회장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회장 독단으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 최 회장의 입장 선회는 민주적인 토론 절차의 프로세스를 밟아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내에선 의협의 입장 선회에 대한 옹호와 반발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박홍준)는 만관제에 대한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참여해 문제점이 발생하면 시범사업기간 동안 개선하는데 노력하겠다는 밝혔다.

박홍준 회장은 “초진진료를 30분 이상해야한다는 것과 전화로도 상담이 된다는 점이 원격진료에 대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범사업이고 예산도 500~800억원에 달하는데 이런 부분은 분명 진료현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회장은 “만관제는 결국 의사들이 주도해 나가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에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시범사업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 개선책을 적극 개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며 “서울시의사회는 이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경기도의사회(회장 이동욱)는 의사회원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전제로 조심스럽게 만관제에 대한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집중 교육 30분 이상, 기본 교육 10분 이상의 상담시간 규정 미준수 시 이제가지 공단의 삭감을 비춰볼 때 추후 전액 삭감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라며 “심지어 의원급에 대부분 존재하는 간호조무사는 사업에 참여할 수 없어 참여시 불법행위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의사회는 “만관제는 앱이나 전화, 문자, 메일 등을 이용한 비대면 환자 관리를 허용하고 있어 향후 처방전 발행만 추가할 경우 의료계가 반대하는 원격진료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라며 “심지어 특정 의사가 특정 환자의 만성질환을 관리하게 돼 변형된 주치의 제도로 정착하게 된다면 신규 개원의들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할 우려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지역의사회에서도 경기도의사회와 입장을 함께 했는데, 해당 의사회장은 “만관제는 일부 작은 병원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수가 자체도 높지 않은데다 원격의료로의 확대나 주치의제도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려가 되는 정책”이라며 “의사회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회 회무 방향은 만관제 시범사업 자체를 반대하지만 참여하고자 하는 일부 의사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만 할 없는 입장”이라며 “결국 의사회 차원에서 만관제 시범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여하고자 하는 의사회원들이 있기에 자율적으로 진행하려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의협 노환규 전 회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노 전 회장은 “전국의사총연합은 ‘지켜져야 하는 원칙’과 ‘의사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워왔다”며 “수익 역시 의사의 정당한 권리에 포함되지만, 그 수익은 의사 전체가 수혜 받는 정당한 수익에 대한 것이지, 개인이나 소수 특히 기득권 의사들의 수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만성질환관리제 역시 과거 전의총이 반대해왔던 만성질환관리제와 기본적 내용과 속성이 다르지 않다”며 “더욱이 젊은 의사들의 시장진입을 막는 울타리가 될 여지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의총과 의협 집행부의 임무는 다를 수 있지만 회원들이 전의총 대표를 의협 회장으로 선택한 이유와 전의총 출신의 의사들로 의협 집행부를 구성하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회원들이 곧 전의총의 정신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회원들이 선택한 전의총의 정신은 실익을 놓치더라도 부당한 것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회복해내자는 정신이 의협에서 구현되기를 바래서 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러 가지 남모를 어려움과 속사정이 있겠지만, 상징성 있는 만성질환관리제 만큼은 회원들이 납득하고 이해하기 전까지 물러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만관제 시범사업에 대한 최대집 회장의 스텐스 변화에 대한 지적하고 있다. 일부 의사들 사이에는 최 회장이 추무진 전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추진할 때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를 불신임 사유로 거론한 것을 두고 “그 때는 회장 불신임 대상이고 지금은 맞는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 회장은 전의총 상임대표 시절인 지난해 3월, 당시 의협회장인 추무진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추진하겠다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 회장이 꼽은 추무진 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사유는 총 10개로, 이중 ‘만성질환관리제와 원격진료(전화진료) 시범사업 실시’가 포함돼 있었다.

대한평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최 회장이 만관제, 전문가평가제, 문 케어 등을 현재처럼 말을 바꾸어 실행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말이 달라짐에 대한 대회원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고 자신의 회무에 대한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의사회는 “그 때의 만관제와 어떻게 다른지 회원들에게 명확한 설명이 우선 되어야 하며, 다른 점이 없다면 태도변화에 앞서 그동안 만관제를 극렬히 반대했던 자신의 과거의 행동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이전 회장, 이전 집행부, 그리고 14만 회원들에게 사과를 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 의료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그동안 자신의 발언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이전 회장, 집행부, 그리고 회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한다”며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대회원서신문 등 의협의 공식적인 채널로 널리 알려야한다고 본다. 닥플이나 최 회장의 SNS와 같은 공식 채널이 아닌 곳에서 얼버무리듯 넘어가는 건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야기할 거라 생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