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금 전산 자동청구 교착상태

의료계 ‘극렬 반대’...정부부처도 ‘신중’ 입장

2018-11-27     의약뉴스 신승헌 기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획기적 변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국회에서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위한 법률 개정에 나섰는데, 의료계가 적극 반대하고 있다. 관련 정부부처도 신중히 추진해야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상해주는 실손의료보험 가입 건수가 2017년 기준으로 약 3359만건에 이르렀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 필요한 구비서류를 준비하려면 금전적·시간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소액청구는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게 현실이다.

2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서울대 나종연 교수가 소개한 소비자조사(2018년 4~5월, 온라인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빠짐없이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했다는 응답자는 통원의 경우 32.1%, 입원은 57.2% 수준에 그쳤다. 다수의 소비자가 보험금 미청구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최근 6개월간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금액이 소액이어서’라는 응답이 90.6%로 가장 높았다. 평균 미청구금액은 입원 관련해서는 33만 4833원, 외래는 9339원 수준이었다.

이날 포럼을 공동주최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서울 노원갑)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실손의료보험금을 전산으로 자동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9월 대표발의 했다.

▲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왼쪽)과 대한의사협회 이세라 총무이사.

개정안은 ▲보험가입자가 의료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의료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실손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야 하며 ▲서류를 전송하는 비용은 보험회사가 부담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또한 ▲서류 전송업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률개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이세라 총무이사는 “왜 의료기관이 서류전송의 주체가 돼야 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행정인력이 있는 대형병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소병원과 의원의 경우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정부의 지원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 현재 보험회사의 서류접수 인력의 고용 축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걱정까지 보탰다.

아울러 이 총무이사는 “(개정안대로라면) 보험사가 요구하면  환자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들어가게 되는데, 개인정보 유출 등의 관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이 총무이사는 심평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데 심평원이 민간 보험회사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법안에 반대했다. 특히, 2013년 7월부터 자동차보험 심사업무를 위탁받아 수행 중인 심평원의 무리한 급여기준 설정 및 잦은 삭감으로 인해 오히려 국민들은 충분한 진료보장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고형우 의료보장관리과장은 “(청구 간소화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전산화를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민감한 의료정보가 전산으로 오가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의료계에서 감당하는 비용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논의를 끝낸 후 전산화가 이뤄져야지 전산화가 먼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 보건복지부 고형우 과장(왼쪽), 금융위원회 하주식 과장.

금융위원회 하주식 보험과장은 “의료계에서 말하는 ‘비용’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해야 하는데, 의료계 만나봤더니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간 불신·오해가 상당하다”면서 “고민을 하고는 있지만 참 어려운 부분인데, 보험사·의료계도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의에 대해 고용진 의원은 “(보험금 청구 간소화 논의가) 1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국민만 혜택을 본다고 할 수 없고, 보험사나 의료기관의 불편을 해소할 수도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각 주체들이 전반적으로는 (간소화에) 동의하고 있는데 왜 안 풀리는지 속사정이 궁금하다”며 “법안이 발의되면 이해가 상충하는 집단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부분은 마음만 열면 해결하고 국민 편익을 훨씬 증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