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가고자 하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내밀었던 혀를 집어넣자 호흡이 조금 곤란해졌다. 혀를 넣으면서 입까지 다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들어갔던 혀는 안쪽에 그대로 놔두고 입은 조금 벌렸더니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런 상태로 예정된 곳까지 더 가기로 했다. 여기서 멈추면 다음 번 에도 멈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코스를 중간에서 한 번 쉰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것은 피해야 했다.
날씨 탓을 하다가는 원하던 곳을 가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나약한 인간이라는 스스로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좀 강해지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원만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해 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신을 달구는 것은 대장간의 쇠 작두와 비슷했다. 뜨거운 불과 그 것을 식히는 물을 뒤집어쓰고 숱한 망치질 끝에 강철은 단련되지 않는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강한 인간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준 적이 있던가. 아니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말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보잘 것 없는 행동이 과거와 다른 바 없다면 무가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천하는 길을 가보자는 것이 최근의 다짐이고 보면 이 까짓 더위쯤이야 하면서 애초 정했던 목표지점 까지 쉬지 말자. 비록 걷는 속도보다 느려도 두 발자국이 동시에 땅에 닿아서는 안 되겠다.
한 쪽 발이라도 떠 있으면 그 것은 걷기가 아니라 달리기 이므로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다. 다시 작은 다리로 접어들었다.
그림자 세 개가 한꺼번에 앞에서 어슬렁 거렸다. 등 뒤에 켜진 가로등이 이중 삼중으로 빛을 내면서 서로 각도를 달리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 것을 나는 좋아했고 즐겼다. 다리를 건널 때면 없던 힘이 숨어 있던 어디에서 인가 갑자기 나타나서 불끈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다리를 다 건너기도 전에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는 신호를 감지한 몸이 벌써부터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자전거 여러 대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내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움찔 했지만 뭐라고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일일이 참견하다가는 마지막 남은 체력까지 소진될지 모른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념무상의 상태만이 그나나 한 걸음이라도 더 가게 하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