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폭력 근절’ 국민청원, 20만 달성 실패
14만명에 머물러..."국민 공감 실패" 지적도
전북 익산 모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한 의사 폭행 사건과 관련된 국민청원이 결국 실패로 끝났다. 전국 시도의사회, 의료기관, 보건의료종사자들이 한 뜻으로 ‘청원 동참’을 호소했지만 청와대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명에서 한참 모자랐다.
지난달 1일 전라북도 익산 모 병원 응급실에서는 술에 취한 환자가 의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사건이 발생된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다.
국민청원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을 등록하고 30일 동안 20만개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들이 청원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는 문재인 정부의 소통 정책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 하에 취임 100일이 되던 지난해 8월 17일에 공식 출범했다.
지난달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감옥 갔다 와서 칼로 죽여 버리겠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해당 게시물은 최근 있었던 의료인 폭행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해당 국민청원은 지난 3일부터 시작, 꾸준히 숫자가 증가했지만 청와대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에는 한참 모자란 14만 7885명으로 마감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실패로 끝난 것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청원에 동참해 준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비록 목표로 했던 20만명을 넘지는 못했지만 의권이 땅에 떨어진 현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단합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회원들이 힘을 모아야만 불합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방 부회장은 또 “의료기관 내 폭행사건에 대해 벌금형의 가벼운 처벌만 내려지고 있는데 사안의 심각성을 잘 몰라서 반복되는 것 같다”며 “지금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있는데 처벌 강화를 통해 의료기관 내 폭행을 근절, 의료진 뿐 아니라 환자들도 안전한 진료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실패로 끝나서 안타깝다. 이번 일이 의료인 폭행에 대한 경각심을 세우기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의협 집행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 좀 더 노력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도 “의사 내부, 보건의료연대, 국민 공감으로 나눠 살펴보면, 초반 의사 내부 결집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해 6만에서 7만에 머물렀던 게 아쉬웠다”며 “의협도 전략을 잘못 짰는데 이번 일은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 응급구조사까지 연대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건의료연대를 초반부터 했더라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에 대한 설득이 필요했는데, 의사가 맞아서 억울하다는 것보단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응급실 안전을 지켜달라’고 갔어야했다”며 “마지막으로 최대집 의협 회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있음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 부재했던 것도 아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의료인 폭행과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이 실패한 것에 대해 의료인, 특히 의사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시민은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을 폭행하는 건 있어선 안 된다”면서도 “최근 문재인 케어 등에 대해 반대하는 의협나 의료계의 행보를 보면 ‘굳이 도와줘야하나’는 생각이 든다. 최대집 회장보다는 국민적으로 지지를 받는 아주대 이국종 교수 같은 인사가 나서서 홍보에 나섰다면 많은 국민들이 호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버스기사 폭행과 비슷해보일 수 있지만 일반 국민들 시각에서 버스기사는 사회적으로 약자로 비칠 수밖에 없다. 돈도 얼마 못 버는데 폭행까지 당하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이라며 “의사는 버스기사완 다르다. 고수익을 올리는 직종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돈 많이 버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라라는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의료계 인사는 “초반 전략이 잘못됐다. 이번 일도 ‘의사만의 리그’로 ‘의사들이 맞아서 억울해요’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가 나중에 전략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며 “2000년 의약분업 때의 기억에 갇혀있는 인사들이 의사 중심의 사고로 투쟁이나 국민홍보에 임하니 계속해서 ‘그들만의 리그’가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