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상화 파악은 뒤늦게 시작됐다

2018-08-01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땅 속으로 들어간 대위는 굴이 생각보다 깊고 넓은 데 놀랐다. 

워낙 급하게 투입되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어둠속에서 대위는 생각보다 굴속의 환경이 열악한 것이 크게 긴장했다.

이곳에서 중사가 일주일 정도 버티면서 적과 교전하고 승전보를 올린 것에 대해 대위는 중사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과 자신이 과연 그 같은 전과를 올릴 지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계급으로 보면 당연히 그 이상의 결과물을 가지고 지상으로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적진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고 대위는 갈림길에서 2, 3조와 헤어지면서 살아서 나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크게 위축돼 있었다.

그를 따르는 대원들도 대위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깊어 들어갈수록 대원들의 공포심은 더해갔고 아무 소리 들리지 않은 깜깜한 어둠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수류탄이나 크레모어, 화염 방사기 등은 밀폐된 공간에서 적도 죽지만 자신들의 생명도 크게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대원들은 알아챘다.

그런데도 연대장은 손수 무기를 건네면서 적을 섬멸하고 살아 돌아오라고 어깨를 치면서 격려까지 했다.

대위는 적과 교전하게 되면 일단 수류탄 투척이나 화염 방사기를 작동하는 대신 기관총으로 응사할 것을 주문했다.

파편이 튀기는 무기는 자신이 명령할 때만 쓰도록 했고 이를 2조와 3조 조장에게도 전달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아군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대위는 생각했고 그런 방편으로 이같은 지시를 내린 것이다.

2,3조를 책임진 두 명의 중위도 대위와 같은 생각을 했다. 어둠 속의 동굴에서 폭탄 투하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연대장은 이런 무기들을 즉각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적지의 상황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적의 섬멸에 무게를 둔 공격 포진이었다.

굴 속데 들어간 대원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불빛 하나 없는 암흑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찾아 무작정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과연 교범에 있는 작전의 일환인지 의심스러웠다.

자신들은 연대의 승리를 위한 희생양으로 바쳐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두려움은 더욱 커져 갔다.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적들이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어디선가 총구를 들이대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무장한 병력의 이동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교전으로 부상당하면 신속한 피신 대신 우선 응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응사하지 못할 경우 수류탄 투척을 중요한 대응 수단으로 명령이 이미 하달 된 뒤였다.

그 것은 적도 죽이는 행위였지만 자신들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무모한 대응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터진 폭탄의 위력은 대단할 것이다.

귀와 눈을 멀게 하고 천장의 흙을 무너트려 굴이 파괴되는 상황은 자명했다. 굴 속에 들어와서야 대원들은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파악은 뒤늦게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