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폭력 근절’ 청원, 사실상 실패했나

종료 이틀 전 12만명…시도의사회, 막판 스퍼트

2018-07-31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전북 익산 모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한 의사 폭행 사건과 관련된 국민청원 마감(8월 2일)을 앞두고 전국 시도의사회, 의료기관, 보건의료종사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청원 동참’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청원 마감이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명을 넘기기란 어렵다는 의견과 함께 사실상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1일 전라북도 익산 모 병원 응급실에서는 술에 취한 환자가 의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현재 피해 의사는 현재 뇌진탕, 목뼈 염좌, 코뼈 골절, 치아 골절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해당 사건과 관련된 국민 청원이 등장했다.

▲ 응급실 의사 폭행과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청원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을 등록하고 30일 동안 20만개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들이 청원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는 문재인 정부의 소통 정책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 하에 취임 100일이 되던 지난해 8월 17일에 공식 출범했다.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감옥 갔다 와서 칼로 죽여 버리겠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해당 게시물은 최근 있었던 의료인 폭행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해당 국민청원은 지난 3일부터 시작해, 17일 현재 7만 2800여 명이 청원하는 등 꾸준히 숫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마감 이틀을 남겨놓은 현재, 12만 9000여 명이 청원에 동참해,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에는 한참 모자란 상황이다.

이에 의료계 내에선 청와대 답변을 듣고자 국민 청원 홍보에 막판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청와대의 응답 기준인 ‘20만명’ 돌파를 위해 각 지역의사회에서는 가두캠페인을 전개했으며, 전국 의료기관에 홍보 포스터가 게시되기도 했다.

먼저 대전광역시의사회(회장 김영일)는 지난 26일 우리들공원에서 ‘의료인 폭행 추방 국민청원 대회’를 개최해 대전시민들에게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청원에 참여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모인 대전 의료인 대표 100여명은 국민청원 동의자 수 20만 명 돌파를 목표로, 국민청원 주소 QR코드가 첨부된 홍보물 500여매를 시민들에게 배포하면서 참여를 독려했다.

김영일 회장은 “의료인들의 절박한 목소리 때문에 행인들도 국민청원 참여를 약속하며 홍보물을 받아갔다”며 “대전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보건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막고, 더 나아가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해달라는 의협 홈페이지 안내문.

전라남도의사회(회장 이필수)도 지난 26일 보건의료인 300명이 참여한 가운데 ‘보건의료인 폭력피해 알리기 및 폭력근절을 위한 가두캠페인’을 개최했다.

캠페인은 전남의사회 주관으로 목포시치과의사회, 여수시치과의사회, 순천시치과의사회 전남간호사회, 광주전남간호조무사협회가 참여했으며, 순천 연향동 국민은행 사거리과 목포 평화광장, 여수 여서동 로터리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의료현장 폭력으로, 국민건강 무너진다 ▲의료현장 폭력근절, 의료법을 강화하라 ▲의료현장 폭력근절, 특가법을 제정하라 ▲의료폭력 근절위해, 초동수사 강화하라 ▲의료폭력 근절 위해, 상시 상주 경찰제도 도입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의료기관 내 폭력의 위험성과 근절의 당위성을 알렸다.

이필수 회장은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은 의료인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로 즉각 개선돼야 한다”면서 “정부는 실제적인 행정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예기치 못한 폭력과 위험에 노출돼 있는 진료현장과 이에 대한 방어의 의미로 헬멧을 쓰고 진료를 하는 등의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또 국민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가장 안전해야할 곳 중의 하나인 응급실과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은 반사회적이고 다수에 대한 폭력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보건의료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에 응급실과 의료현장의 폭력이 근절될 수 있도록 ‘응급실 폭력 근절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의사회(회장 박홍준)도 지난 27일 저녁 6시 명동역 6번, 7번 출입구(지하철 4호선)에서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을 위한 국민청원 독려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독려대회는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유한솔씨가 보건의료인들의 여망을 담아 의료기관 폭행 근절 국민청원을 독려하는 내용의 즉흥공연 퍼포먼스를 펼쳐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의협에서도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을 위한 포스터‧스티커 홍보물을 제작해 전국 1700개 의료기관에 배포했으며, 게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에 따르면 전국 각지 병‧의원, 보건소 등에서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홍보에 적극 동참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인증샷을 보내오는 등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을 호소하는 대전시의사회, 전라남도의사회, 서울시의사회의 가두캠페인과 건국대병원에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을 위한 포스터.

그러나 이 같은 의료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원 마감까지 이틀 남은 상황에서 20만명을 넘기기란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달 가까이 캠페인 등 청원 참여 독려를 했지만 20만명까진 아직 7만 명이 모자란 상황인데, 이틀 안에 이를 채우기란 어렵다는 것.

한 의료계 관계자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를 무차별 폭행했다는 건 사회적 공감을 충분히 얻어낼 수 있고, 의사의 진료권은 물론, 환자의 권리까지 함께 증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캠페인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친 거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도 “청원 마감까지 이틀이 남은 상황인데, 그동안 7만 명의 동참을 끌어내기란 어려워 보인다”며 “처음 국민청원이 시작됐을 때 의사들만의 캠페인으로 진행한 것은 전략의 실패라고 본다. 좀 더 어렵더라도 국민과 함께하는 캠페인으로 진행했어야하는데, 국민의 힘이 없으면 청원을 채우기도 어렵고, 설사 채운다고 해도 이를 통해 제도화하는 건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응급실, 진료실에 있는 의사가 폭행을 당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피해를 받는다라는 프레임을 청원 초반부부터 진행했었으면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버스기사에 대한 폭행 근절을 마련할 때처럼 ‘그들의 피해가 곧 나의 피해’라는, 이기심을 어느 정도 자극하는 캠페인이 필요했는데 아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