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고개를 한 번 젓고는 다시 나아갔다

2018-07-18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첨병은 신중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서둘러서 자신이 죽는다면 이것은 위대한 해방전쟁의 승자가 아니라 개죽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 했으므로 죽음을 재촉하는 발걸음이 빠를 리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춰 서서 무작정 대기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했다. 그럴수록 피의 냄새는 점점 가까이 왔고 그의 확신은 점차 굳어졌다. 피의 냄새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고 여러 사람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적의 피가 아니라 아군의 피였다. 늪지대에서 물소를 몰고 농사를 짓던 자신의 이웃 동료의 냄새였다. 진흙과 물고기와 이끼벌레의 냄새가 한꺼번에 그의 코 속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못한 대원 13명의 죽음에서 풍기는 냄새는 익숙한 것이었다.

대원은 잠깐 서서 묵념을 했다. 죽은 대원들 가운데는 자신과 고향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동굴 속에서 철수한 후 대대는 돌아오지 못한 대원들의 인적 사항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들에게 일계 급 특진과 고향에 남겨진 가족에게 위로금으로 쌀 한 가마씩을 보냈다.

편지에서 첨병의 어머니는 이웃집이 쌀 한 가마니를 받은 사실을 알려줬다. 죽음은 쌀 한 가마니였다.

자신도 죽으면 어머니가 그 것을 받게 될 것을 알았다. 첨병은 숨죽였다.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어머니가 말아 주신 국수를 먹고 논으로 달려 나가고 싶었다.
넓은 늪지대에서 물소를 밀면서 써레질을 해야 할 때였다. 농사꾼은 본능적으로 그 것을 알았다. 그에게 총과 대검과 수류탄은 어울리지 않았다.

끌려오다시피 자원해서 온 전쟁터에서 개구리 한 마리 죽이는 것도 불쌍해했는데 사람을 향해 총질을 해대고 수류탄을 던지고 대검을 찔렀다.

대원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러나 곧 고개를 한 번 젓고는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