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한 순간 긴장이 풀리자 몸이 녹아내렸다
만사가 귀찮았다. 생명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대원은 태연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놀라웠으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대원은 그렇게 한 동안 누워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런 행동도 없이 몸을 한 없이 늘어 뜨려 놓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행복한 느낌마저 들었다.
중사가 권총으로 자신을 쏘든지 아니면 대검으로 목 깊숙이 찔러 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그는 지금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아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는 중사를 해칠 생각을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강렬한 욕구가 온 몸을 지배했을 때 그는 바짝 긴장했고 행동을 하기 위해 온 몸을 떨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의 기회를 엿보기 위해 중사의 뒤를 따를 때는 수송기를 타고 수만 미터 상공에서 처음 점프를 할 때처럼 오금이 저려왔다.
그 순간을 대원은 누워서 음미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를 온 몸에 맡기고 한 숨 더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몸에 데워진 땅은 몸과 일체가 되어 푹신한 침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죽은 듯 자기 위해 숨소리마저 쉬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중사는 그런 대원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았던 중사는 대원이 깊은 잠에 빠져 들기 위해 애써 자신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대로 내버려 둬야 겠다는 생각이 중사에게는 들지 않았다. 고약한 상황에 몰렸을 때 중사는 급한 성격을 내지르기 보다는 어떤 행동은 좋은지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중사는 노련했고 그가 전투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그 같은 자세 때문이었다. 저돌적으로 돌진할 때는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중사가 취하는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그는 언제나 이런 모습을 보여 왔다. 다만 대원을 비롯한 소대원들이 그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쭈그려 앉았던 중사는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땅에 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잡았던 소총을 한 쪽에 비스듬히 세워놓았다가 그대로 땅에 뉘었다. 소총이 쓰러지면서 나는 소리를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더 편한 자세가 되었고 그로 인해 마음도 그렇게 되고 있었다.
중사는 잠든 대원의 체온이 자신에게로 전해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고 눈이 감겨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벌써 3일 째 잠을 자지 못한 중사의 몸은 한 순간 긴장이 풀리자 그래도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대원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도 전에 대원 옆에서 잠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