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문케어’ 방향성 부재, 세부대책 ‘상충’
의료정책硏, 건보제도 종합계획 수립 ... 논의의 장 필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처럼,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으로 방향성 부재에 따른 세부 대책간의 상충을 지적하는 의견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방안 검토’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지난해 8월 정부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 까지 높이겠다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방안, 일명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문 케어는 그동안 건강보험 보장률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60% 초반에 보장률이 정체되어 있고, 비급여 비중이 높으며, 가계직접부담 의료비 비율도 높아 저소득층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 추진하게 됐다.
이에 정부는 ‘병원비 걱정없는 든든한 나라’를 위해 30조 6000억원을 투입해 의료비 부담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문 케어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내세워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를 이야기한 이전 정부와 다르게 건강보험 보장 패러다임을 전환을 공언했기 때문에 의료계와 많은 갈등을 야기하게 된 상태이다.
먼저 연구소는 “건보제도에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로, 보장성 확대를 위한 기본 원칙을 논의하고 이에 맞는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제도의 안정성이나 재정 안정의 측면에서 필요하다”며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를 논의하기 보단 보장성 강화를 위한 방향성을 재설정하고, 비급여의 급여화를 위한 원칙을 논의하고 합의해야한다”고 밝혔다.
현재 3800여개의 비급여 항목 중 의학적으로 안전하고 유요하지 않은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건 건강보험급여 원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3800여개 의학적 비급여에 대해 유효성, 안전성, 경제성 평가가 어떤지 명확히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저부담-저급여-저수가’ 체계 중 저수가에 대한 의료계의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던 만큼, 비급여의 급여화에 앞서 건강보험체계에서 적정수가 확립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으며, 합리적인 급여기준도 뒷받침돼야한다는 것.
문 케어와 관련된 소요재정에 있어서도, 정부는 현재 건강보험 보장율 63.2%를 기준으로 보장성 확대의 목표를 70%로 삼아 2022년까지 총 30조 6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고, 20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누적 흑자액, 국고지원 확대, 평균 3.2%의 보험료 인상이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연구소는 “소요재정 문제는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로, 소요재정의 세부 항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용이 더 필요하다면 재정 확보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한다”며 “정부가 2022년까지 30조 6000억원을 소요재정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급여화되는 항목들의 수가 결정 및 이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 등을 고려하면 소요액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의료비는 가격과 수량을 곱한 값의 총합인데, 가격은 정부가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수량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비급여가 급여화돼 비용부담이 낮아지면 수량이 얼마나 증가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보장성 확대로 인해 증가할 의료이용량에 대해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연구소는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과 방향성 부재로 인한 세부 대책간의 상충을 꼽았다.
문 케어는 이전 정부에서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를 ‘완전 해소’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비급여를 축소하면서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성은 동일하지만, 다른 방향의 패러다임 전환을 내세우다보니 결국 많은 갈등과 문제를 유발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잘못된 정책의 방향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건강보험제도와 같이 안정적 운영이 필요한 경우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일관성 있게 제도를 개선해 나가면서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연구소는 “건강보험제도는 국민의 건강 및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기적인 목표와 중장기 계획,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들이 단계적으로 진행되면서 발전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정부가 발표한 보장성 확대방안 간에는 이미 많은 상충이 일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예로 보장성 강화를 위해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을 건강보험에 적용했는데, 이러한 조치들은 대형병원 이용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비용부담은 낮춘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전달체계는 확립하고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확립하겠다고 한 것을 지적했다.
연구소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보장성 확대의 세부 대책들이 한국적 의료이용의 특성과 만났을 때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할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현재 의료소비자들은 약간의 비용부담 차이만 감수하면 의료기관 선택·이용에 제약이 없고, 이미 이러한 의료이용 패턴이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의 비급여 항목들이 급여로 전환될 경우 그 이용량은 증가될 수 있다”며 “검토 중인 급여화 예정 항목에 고가의료서비스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보험급여 확대로 인해 증가할 의료이용량, 비용인식이 낮아진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연구소는 “지난 2016년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시 건강보험제도의 안정적 운영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 확보를 위해 5년마다 제도 운영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했다”며 “종합계획에는 건강보험정책의 기본 목표 및 추진방향, 보장성 강화 계획, 부과체계, 요양급여비용, 건강증진 사업, 취약계층 지원, 건강보험제도의 중장기 재정 전망 및 운영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방안이 발표됐으나, 이러한 법적 기반을 토대로 제도 운영 40년을 넘긴 건강보험제도의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논의의 장을 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 현황을 정확히 평가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의 방향과 비전을 설정하는 한편, 정책 수단에 대해 전문가 및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