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폐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

2018-03-12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 이인의 다짐이지만 달리기만큼은 아니다 라고 예외 조항으로 인정했다. 예외 없는 원칙이 없다는 것은 이런 때 쓰는 것이다.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떠돈다. 이런 생각을 말로는 할 수 없다. 그냥 생각하는 것으로 족하다. 가급적 이기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걷는 사람이 앞서간다.

꼭 이런 때 씩씩 거리는 숨소리를 크게 하면서 옆을 스쳐지나가야 하는지 그에게 묻고 싶지 않다. 나는 그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설사 안다고 해도 달리면서 물을 이유는 없다. 저절로 몸은 앞으로 숙여지고 내딛는 발걸음은 빠르게 움직인다.

직각으로 굽은 팔은 앞뒤로 더 빨리 움직이고 숙였던 고개는 꼿꼿해 진다. 가볍게 그야말로 가볍게 쇼트트렉의 최민정처럼 상대를 제치고 앞서 나간다.

비록 걷는 자를 따돌렸지만 기분은 좋다. 아니다. 그래서야가 아니다. 이쯤해서는 기분이 좋아질 시점이다. 굴다리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점에서 2킬로 미터를 왔다. 이런 기분을 굳이 러닝하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용어는 프로나 쓰는 것이다. 이제 겨우 달리기 시작한 초보에게 하이가 가당키나 한 소린가. 땅에 닿는 발을 뒷굼치부터 대고 있다. 발바닥 전체가 그렇게 따라 하려고 의식을 집중시킨다. 발가락은 맨 나중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달리기의 기초라고 책에서 봤다. 나는 책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러너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자는 것이 최근에 바뀐 생각이고 이 생각을 실천해서 나쁠 것이 없다.

대충 하려는 습관을 벗어나자.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그런 다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운동화를 하나 장만했다. 좀 푹신한 것으로 골랐다. 조깅용이라고 추천하는 점원의 말을 대충 들었으나 사려고 마음먹었으므로 신어봤다.

그래서 샀다. 이인은 옷을 입어 보면 사는 것처럼 신발도 신어보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렇게 했다. 입어보고, 신어보고도 사지 않는 사람들은 안사도 되니 그렇게 해보라는 점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들이다.

다시 원래대로 개고 풀어졌던 끈을 다시 조정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팔려고 하는 사람의 심정을 사는 사람들이 아랑곳 하지 않는 것을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산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조금 고개를 숙였다.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하얀 운동화가 잘 한 결정이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헐떡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다음날 일요일 나는 다시 운동화를 하나 더 샀다.

이번에도 신어봤기 때문에 샀다. 신어 보면서 이인은 마치 나만을 위해 주문제작한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운동화라고 여겼다. 그런 신발을 샀으니 퇴근 후의 시간이 금방간다. 밥을 먹자 마자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뛰기 전에 으레 통과 의례처럼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새신을 신었으니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폴짝 뛰어 보는 것이다.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높았다. 그리고 땅은 낮아 금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인은 등을 구부리고 끈을 조인다. 의식적으로 발 뒤꿈치부터 땅에 댔다. 

오늘도 어제처럼 몸이 무겁다.

몸이 무거운 것은 뱃속에 음식물이 꽉 차지는 않았어도 절반이상을 넘었기 때문이다. 위장이 빈 상태로 달려 나간다면 지금보다는 가벼울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몸을 앞으로, 앞으로 들이 밀었다.

폐가 열리기 시작했다. 날기 위해 위장을 비워야 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이인은 부풀어 오르는 폐를 의식하면서 이런 생각을 집중한다. 달릴 때 특별히 걸 기술이 없으니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