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남동공단역

2005-07-31     의약뉴스
인천시는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위해 건설 중인 문학 운동장의 공식 명칭을 ‘인천 문학 경기장’으로 확정하고 애칭으로 ‘미추홀 경기장’을 병용키로 했다고 한다. 매우 잘한 일이다. 미추홀은 역사적인 면에서 자긍심과 친근감을 갖게 하는 반면에 ‘문학’이란 이름은 지역적인 위치를 암시해 주므로 현실감이 있다.

얼마 전, 인천 국제 공항의 공식 명칭을 정할 때 엉뚱한 이름들이 후보로 나서 인천 시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을 뻔한 적이 있었다. 지역성을 무시한 권위주의의 발로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남동구 지역엔 나름대로의 고유 이름을 간직한 지명이 많다. 비류왕의 희미한 전설을 혼자만이 알고 있는 비루 고개(만수 주공 아파트 입구 정류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鐵) 광산이었던 쇠판리(만수동 영풍 아파트 지역),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골(만수동 태평 3차 아파트 지역)과 그 옆 동네인 독곡, 새가 많았다는 샛골(건설 훈련원과 만수 임대 주공 아파트 사이), 운연동에 있는 음실과 연락골, 유난히 딸기와 뱀이 많았고 산자락을 파면 여기저기서 무속(巫俗)인들의 소지품이 나왔던 경신 부락(남동구 도서관 건립 예정지와 수산 정수장 사이), 장자골(장수동), 무네미(인천 대공원 눈썰매장 부근), 그밖에도 삼박골, 산림말, 담방리, 장승백이, 찬우물 등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마을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름을 놔두고 동명(洞名)은 1, 2, 3--- 으로 번호가 부여되고 학교와 관공서는 동, 서, 남, 북의 방위가 주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일제 통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난 3월 1일, 간석북(幹石北) 초등학교 나보환 교장 선생님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개교이래 15년간 사용해 온 학교 이름을 ‘약산(藥山) 초등학교’로 과감하게 바꾸었다. 자주성과 주체성을 찾는 이러한 개혁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제2의 건국 운동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명칭을 정할 땐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동구 주민 某씨는 2,80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하고 5만 여 인구가 종사하는 남동공단 경계 지역을 통과하는 지하철역이 세 곳(신연수역, 선학역, 동춘역, 원인제역)이나 되는데도 ‘남동공단역’이란 명칭이 하나도 없다는 데 분개하고 있다.

만약 먼 곳에서 그들의 가족이나 외국의 무역업자들이 남동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 ‘남동공단’이란 역 이름은 없고 생소한 지역의 이름만 있음으로 인해 외지인들이 겪을 당혹감과 불편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역명을 ‘남동공단역’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인천 지하철 공사 측은 ‘소프트웨어와 녹음 테이프 비용만 해도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고, 행정 체제 역시 서울 지하철 1호선 본부, 서울 지하철 2호선 본부, 철도청 세 부서의 결제를 맡아야 하므로 불가능하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98년, 역 이름을 결정할 당시 행정 편의적인 발상에서 관내 동(洞) 이름을 제시한 연수구청과,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서지 않은 남동구청도 인천 지하철 공사와 함께 똑같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들 세 행정기관의 실무자들은 그들의 작은 부주의로 인해 5만 여 남동공단 입주자들과 종사자들, 나아가서는 남동구민의 자존심이 무너짐은 물론 지하철을 이용할 내. 외국인 승객들이 남동공단을 찾아가는 데 많은 불편을 겪게 되었음을 반성하고 이제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처럼 기존 역 이름 옆에 ‘(남동공단 방향)’이란 애칭을 병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봄직한 대안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