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1881)

2017-09-26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 나이 50을 ‘지천명’이라고 했다.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래서 인지 대문호 톨스토이도 50살이 되어 깊은 회심(回心)에 빠져 들었다.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켜 먹었다는 말이다.

무엇이 나쁜데 빠져 있다가 착하고 바른길로 그를 이끌었는지는 회심 이후의 작품을 보면 이해가 쉽겠다.

그 즈음 그는 <참회록>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욕된 삶을 통렬히 반성하고 신앙에 눈을 뜨게 된 심경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단지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공개한 것이다.

“ 나는 두려움과 나쁜 삶, 혐오, 고통을 느끼지 않고는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없다.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죽이기 위해 결투를 신청했으며 도박과 간통을 했으며 사기꾼이었다. 거짓말, 도둑질, 알코올 중독, 폭력, 살인 등등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악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칭송을 받았고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나를 도덕적인 사람으로 여겼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1869년 발표한 <전쟁과 평화>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에게 대체 어떤 마음의 변화가 찾아 왔는지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할 무렵 그는 이 같은 <참회록>을 썼을까.

 

굳이 쓰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반성만 해도 될 것을 세상에 알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참회 이후 그의 작품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 1885년 발표한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는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의 한 편린일 수도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거기에는 그의 사상과 이념, 선과 악, 철학과 세계관과 신앙심이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구두 수선공의 삶은 안락하기보다는 어려웠다. 자기 땅은 물론 집도 없이 농가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세몬은 얼마나 가난한지 옷 한 벌 가지고 아내와 돌려가면서 입을 정도였다.

추위를 예고하는 초가을로 접어들자 세몬은 2년 전부터 양가죽으로 겨울외투를 만들기로 작정한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모아둔 돈과 농부에게 빌려준 외상값을 받으면 가죽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집도 있고 가축도 있는 농부는 외출 중이었고 그의 아내는 일주일 안으로 돈을 주겠다는 대답만 했다.

가죽 장수는 돈만 가져오면 마음에 드는 양가죽을 주겠다며 세몬의 외상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양가죽 장수는 외상값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죽을 구하지 못한 구두 수선공은 허탈하고 울적한 마음에 술 한 잔 걸치고 몸이 따뜻해 지자 기분이 한 결 좋아져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열심히 일했으니 술 한 잔 정도는 됐다고 위로를 할 까 아니면 콧방귀를 뀌면서 핀잔을 줄까. 마트뇨라는 화가 단단히 났다.

술 냄새를 풍기는 남편은 그것도 모자라 형편없는 건달을 데리고 함께 들어왔던 것이다. 양가죽을 잔뜩 기대하면서 부풀어 오른 가슴이 찌그러지며 분노한 아내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내는 일단 두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자초지정을 들어 보기로 했다. 그 이전에 세몬은 술 취한 기분으로 교회 앞을 지나다가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한 젊은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려다가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와 장화까지 벗어주고 그를 데려온 것이다.

내용을 들은 아내는 낯선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내일 아침 먹을 빵을 나눠 주고 그에게 잠자리까지 제공했다. 세몬은 갈 곳이 없는 젊은이에게 자기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세몬의 조수가 되어 구두 수선 일을 하게 됐다. 젊은이 미하일은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알고 매우 성실했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대단해 나중에는 세몬을 앞지를 정도였다.

소문은 금세 퍼지고 구두 가게는 손님들이 넘쳐나 세몬의 살림은 넉넉하게 됐다. 어느 날 체격이 건장한 부유한 신사가 아주 훌륭한 가죽을 들고 1년을 신어도 떨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구두를 주문했다.

세몬은 그러마했고 미하일은 곧 가죽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만들었다.

세몬이 놀랄 사이도 없이 떠났던 마차는 되돌아와 장화는 필요 없고 장례식에 쓸 슬리퍼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사는 그날 죽었던 것이다. 신사의 죽음을 예견한 미하일.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버림받은 천사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미하일이 세몬의 집에 온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5년간의 행적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하는 일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구두 수선이었을 것이다.)

6년이 지난 다시 어느 날 모피 외투를 입고 털목도리를 두룬 잘 차려 입은 어떤 여자가 서로 분간하기 어려운 닮은 모습의 두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봄에 신을 구두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부인이 데려온 두 여자 아이는 그녀가 낳은 자식들이 아니었다. 사연은 이렇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숲에서 나무하다 나무에 깔려 죽었다.

며칠 후 쌍둥이를 낳은 부인은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곧 죽었다. 죽어 가면서 몸부림치다 한 아이를 덮쳐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다. 불쌍한 아이들을 돌 볼 사람은 젖을 먹일 수 있는 자신밖에 없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죽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리아라는 여자는 그 때 태어 난지 8주 된 아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미하일은 두 손을 무릎위에 공손히 포개고 앉아 하늘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 세몬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그리고 어느 신사가 장화를 주문할 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미하일은 세 번째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그가 웃었던 것은 그들의 앞날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세몬과 마트료나도 미하일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몸에서 눈부신 후광이 빛나고 있었다. 나무에 깔려 죽은 아이의 아버지와 엄마의 영혼은 그가 하늘나라로 인도했다.

그런데 미하일은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다. 아이의 엄마가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자신의 영혼을 거두어 가지 말아달라던 간청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했나.

지금 곧 내려가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들이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명령을 내리면서 하느님은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 오면 세 가지 진리 즉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한 진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진리를 알게 되는 날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하힐은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과연 미하일은 하느님의 분부를 따랐음으로 세 가지 진리를 깨달았을까.

: 여인의 영혼을 하느님께 데려가려던 미하일은 갑자기 강풍이 부는 바람에 영혼만 올라가고 자신은 날개가 부러져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곳이 바로 교회 앞이었고 그는 세몬이 구해 줄 때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벌거숭이로 방치돼 있었다. 이후의 일들은 앞서 다 언급했다. 세몬이 그를 보고도 되돌아섰을 때는 죽음의 얼굴이었으나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인자한 하느님의 그림자가 어리어 있었다.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사나운 말을 뱉던 아내가 쫒아 냈다면 그녀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트뇨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서둘러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살아났다.

이 때 미하일은 인간의 내면에서 사랑을 보았다. 그렇다. 인간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미하일은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전신이 찬연한 빛에 둘러싸여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이기심이나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말을 남기고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이 얼마나 도덕적이며 교훈적인가. 오직 사랑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이 오십에 회심에 들었던 톨스토이는 인습에 젖었던 타락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 본래의 선한 신앙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라는 단편을 통해 장편뿐만 아니라 짤막한 글에서도 대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단편집에는 모두 9편이 실렸는데 <바보 이반>,<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 가>,<촛불>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참회록을 쓸 만큼 반성하는 인간이었던 톨스토이는 1910년 82세의 나이로 라쟌의 아스타포브 간이역에서 쓰러져 죽었다.

생의 마지막 구간에서 철저한 금욕과 채식, 금주, 금연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는 속세에서는 농부처럼 살기 위해 농부의 옷을 입고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13명의 자식을 둘 정도로 부인과 돈독(때론 불화했지만) 했던 그는 종교적 은둔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 소원했으며 죽기 전에는 이들과 떨어져 지냈다.

그는 가출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고독과 적막 속에서 지내려한다”는 메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