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보서 없더라도 필요에 따라 왕진 가능

서울행정법원..."업무정지 위법"

2017-07-20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통보서 없이 ‘왕진’을 했다고 일률적으로 불법으로 규정,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실질적인 실질적인 내용과 필요성까지 살펴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A재단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정지처분취소소송에서 복지부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A법인이 운영하는 A의원은 지난 2013년 7∼9월과 2014년 10∼12월 혈우병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한 후 진찰료·주사료 등 의료급여비용을 청구, 9423만 원을 수령했다.

복지부는 의료급여기관이 왕진을 하려면 수급권자 또는 보호자가 ‘왕진신청서’를 작성해 관할 보장기관에 제출하고, 보장기관이 이를 검토한 후 왕진 인정 여부를 결정, ‘왕진결정통보서’를 의료급여기관에 송부해야 한다며 규정과 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복지부는 ‘의료급여법 제28조 제1항 제1호(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수급권자, 부양의무자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급여비용을 부담한 경우)’를 위반했다며 A의원에게 업무정지 60일의 처분을 내렸다.

A법인은 “A의원으로부터 왕진을 받았던 환자들은 모두 관할 보장기관이 지자체장으로부터 혈우병으로 인해 이동 시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거나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1년간 왕진결정을 받았다”며 “그 사유는 A의원으로부터 왕진을 받았을 당시에도 존재하던 것이므로, 해당 환자들이 왕진을 받았을 때에도 왕진 신청을 했다면 보장기관으로서 왕진결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A법인은 “왕진결정통보서를 받지 않았다는 사유만으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의료급여비용을 수령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여기에 “혈우병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수가 많지 않고, 의료기관 문을 닫을 경우 혈우병 환자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A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의료인은 원칙적으로 개설한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응급처치가 필요하거나 환자를 의료기관으로 이송하기 현저히 곤란해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의 진료행위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왕진결정을 받지 않은 채 왕진이 이루어졌다는 점만으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거나 진료가 부당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며 “보장기관의 왕진결정은 왕진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사전에 확인하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지 왕진에 의해 제공할 의료급여의 적정성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왕진에 따른 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왕진에 대한 절차적 흠결과 함께 왕진의 요건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A의원에서 왕진을 받은 6명의 혈우병 환자들은 현지조사 실시 후에 1년의 왕진결정을 받았는데, 왕진의 필요성은 혈우병에 기인한 것이고, 처분 사유가 된 왕진 당시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또한 재판부는 “실제 왕진대상자에게 의료급여를 제공하고, 의료급여비용을 청구하면서 왕진결정이 있었던 것처럼 허위 기재를 하는 등 부당한 방법을 이용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며 “A의원이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없었다거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 지급에 영향을 미쳐 급여비용을 지급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고시는 보장기관이 왕진요청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회신한 수급권자의 왕진비용이 청구된 것으로 확인된 경우 해당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할 수 있다는 규정일 뿐 왕진요청결정을 받지 않은 채 왕진을 한 모든 경우를 환수 조치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왕진의 필요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함에도 만연히 왕진결정이 없이 의료급여를 했다는 점만으로 급여비용 청구를 일률적으로 부당청구라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환자들은 A의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아 의원 방문이 용이하지 않아 왕진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정지 처분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의료급여 재정의 건전화와 적정 진료 확보라는 공익이 원고나 혈우병 환자들이 입는 불이익에 비해 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왕진 환자를 실제로 진료했고, 진료 내용에 상응하는 급여비용을 청구했다”며 “보장기관의 왕진결정 없이 왕진을 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의료급여재정에 추가적인 부담을 초래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2016년 10월 31일 현재 국내 혈우병 환자로 등록된 2352명 중 1440명이 A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어 업무가 정지될 경우 혈우병 환자들이 적지에 적절한 진료를 받는 데 장애가 초래된다”며 “사적인 법익의 제한에 그치지 않고,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복지부 장관의 처분이 공익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