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부작용, 희귀질환이라도 의사 ‘책임’
서울고등법원...문진의무 소홀 판단
환자 실명을 야기한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희귀질환에 대해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의료진이 문진의무를 소홀히 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최근 환자 A씨와 가족들이 B의료재단, C약품, 약사 D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B의료재단에게만 3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0년 1월경 감기, 몸살 기운이 있다며 자녀에게 약을 사다 줄 것을 부탁했다. 약사 D씨는 A씨의 자녀로부터 증세를 듣고 C약품에서 제조한 스파맥(주성분 아세트아미노펜·푸르설티아민, 감기, 몸살 등 각종 통증성 및 발열성 질환에 대해 진통, 해열작용하는 미황색 장방형 정제) 1통과 쌍화탕(동인당제약) 1포를 권해 이를 판매했다.
A씨는 그날 저녁 스파맥 2정과 쌍화탕 1포를 복용했고, 이후 이틀간 아침 저녁으로 스파맥을 2정씩 복용했다.
스파맥을 복용한 지 3일째 되던 날 A씨는 B의료재단이 운영하는 B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근육통과 얼굴 주위 붓는 경향, 인후통 및 무릎 안쪽으로 가려움증을 동반한 발진 증상 등을 호소했다. 당시 A씨의 체온은 38.1℃, 혈압은 120/80mmHg, 호흡은 분당 20회, 맥박은 분당 88회로 측정됐다.
A씨는 B병원 응급실 당직의로 근무 중이던 인턴 E씨에게 며칠간 감기약을 복용했으며, 과거력과 관련해 당뇨, 고혈압, 간염, 결핵, 약물알러지가 있느냐는 물음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대답했다. E씨는 A씨의 증세를 급성 상기도 감염으로 보고 정맥주사 및 경구 복용 처방후 귀가 시켰다.
E씨가 시행한 정맥주사는 클로낙 주(주성분 디클로페낙 베카디메칠아미노에탄올), 페니라민 주사(주성분 말레이산 클로르페니라민)이었고, 귀가 후 복용하도록 처방한 약제는 페니라민 정(주성분 말레이산 클로르페니라민), 타세놀이알서방정(주성분 아세트아미노펜), 소론도 정(주성분 프레드니솔론), 타가메트 정(주성분 시메티딘), 코데날 액(주성분 디하이드로코데인 타르트라트)이었다.
귀가한 후 A씨는 병원에서 처방, 조제해준 약을 복용했고, 그날 저녁 F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F병원 의료진에게 ‘열, 인후통, 전신가려움증 증세로 B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증세가 더 심해졌다’면서 증세를 호소했다.
F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정맥주사를 시행한 뒤, 경구 복용 처방을 한 후, 다음날 새벽 귀가시켰다. F병원 의료진이 시행한 정맥주사는 디크놀 주(주성분 디클로페낙 베카디메칠아미노에탄올), 페니라민 주사(주성분 말레이산 말레이산 크로르페니라민), 라니티딘 주(주성분 라니티딘)이었고, 복용하라고 처방한 약제는 아모크라 정(주성분 아목시실린수화물, 희석콜라불란산칼륨), 케토라신 정(주성분 케토롤락트로메타민), 스티렌 정(주성분 애엽 95% 에탄올연조엑스)였다.
이후, A씨는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면 F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의료진은 A씨에 대해 이학적 검사 결과, 전날 내원했을 Ei보다 편도 위를 염증에 의한 삼출물로 추정되는 하얀 판이 덮고 있으며 턱 앞쪽과 아래쪽 밑에 압통을 동반한 붓기 등이 관찰되고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에서 염증 소견이 발견되자 협진을 거쳐 A씨의 증세를 스티븐 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으로 의심하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시켰다.
대학병원 의료진은 A씨의 증세를 독성 표피 괴사 용해증으로 진단하고 입원 조치한 다음, 내과 등 의료진과 협진을 거쳐 피부 병변의 진행을 막기 위해 의심스러운 약제의 투약을 중단했다.
고용량 면역글로블린 주사, 드레싱, 안약 투여, 인공렌즈 교체 등의 치료를 계속했으나 A씨의 오른쪽 각막이 천공되자, 영구적 양막 이식술을 시행했다.
A씨는 내과적 증세 회복으로 한 달 뒤 대학병원을 퇴원했지만 안과적 증세는 호전되지 않아 각막편 이식 및 양막이식술, 전층 각막 이식술 및 윤부 이식술, 일시적 양막이식술 등을 받았다.
A씨는 1심 때 시행한 신체감정을 기준으로 오른쪽 눈은 광각인지, 왼쪽 눈은 안전수지로 저하돼 실명상태이고, 양쪽 눈 각막 모두 혼탁 소견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 눈은 전체가 결막으로 덮어지고 안구가 위축됐으며, 왼쪽 눈은 신생혈관이 자라 들어오는 양상을 보이고 각막 중심부 일부가 얇아지는 등 영구적 장해가 남은 상태이다.
스티븐존슨증후군은 대부분 약물에 의해 발생되는 심한 급성 피부점막질환으로 피부병변은 대개 홍반성의 반점으로 시작해 융합되면서 수포가 형성되고 광범위한 피부박리가 일어나며 점막을 침범한다. 전체 표피 면적의 10% 이하에서 피부와 점막의 수포, 미란 등이 관찰되는 경우 스티븐존슨증후군으로, 전체 표피 면적의 30% 이상을 침범하는 경우 독성표피괴사용해증으로 분류한다.
스티븐존슨증후군의 사망률은 5~12%(독성표피괴사용해증의 사망률은 30%)로,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제는 없고 상처소독 및 감염 예방, 수분 및 전해질 균형, 죄사조직제거, 스테로이드 투여 등의 치료가 실시된다.
A씨와 가족들은 C약품이 제조한 스파맥의 표시상 결함, B병원의 의료상 과실, D씨의 복약지도의무 위반이 경합해 A씨가 스파맥을 복용한 후 부작용으로 이 사건 장해를 입게 됐으므로 재산적,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B병원의 과실에 대해서만 책임을 인정했다.
먼저 재판부는 C약품에 대해 “스피븐 존슨 증후군이나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은 전문 의학용어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구체적인 병명을 제품안내서에 명시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A씨가 B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호소했던 발열 등 증상은 스파맥에 첨부된 제품안내서의 ‘복용시 주의사항’에 포섭될 수 있으므로, A씨로서는 제품안내서의 기재내용을 통해 자신에게 나타난 증세가 적어도 아세트아미노펜에 의한 부작용일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었다”며 “C약품은 스파맥의 제품안내서에 스티븐 존슨 증후군,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의 위험성을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재했다”고 판시했다.
약사 D씨에 대해서도 “약사법에 의하면 약사는 일반의약품 판매 시 자신의 전문적·재량적 판단 하에 복약지도를 할 뿐만 아니라, D씨는 약국을 방문한 A씨의 자녀로부터 증세를 듣고 감기 몸살, 신경통 등 각종 통증성 및 발열성 질환에 대해 진통, 해열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파맥을 권했다”고 전했다.
이는 D씨가 A씨의 자녀로 하여금 증세 완화에 필요한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일반의약품을 판매함에 있어 약사에게 요구되는 복약지도를 다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같은 효능·효과를 가진 다른 일반의약품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도 복약지도 없이 일방적으로 스패막을 판대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B병원에 대해선 ‘의료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의 병태 생리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약물에 의해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며 “아세트아미노펜의 경우 드물게나마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A씨는 B병원 내원 당시 스티븐 존슨 증후군의 초기 임상 증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가려움증을 동반한 발진이 나타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후 발진의 부위가 확대되고 가려움증이 심해지는 경과를 거친 점에 비춰볼 때 B병원 응급실에 내원하기 전에 스티븐 존슨 증후군 내기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이 이미 병발한 상태였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또 재판부는 “A씨의 증상 등에 비추어 A씨로부터 내원 전에 감기약을 복용한 바 있다는 사실을 들은 이상 약물에 의한 부작용으로 위와 같은 증세가 나타난 것인지 확인하게 위해, A씨에게 복용한 약의 종류, 주성분, 복용량, 복용 시기, 복용 사이의 간격, 함께 복용한 약의 존부 등을 자세히 문진했어야 했다”며 “이러한 사항들을 확인하지 아니하고, 종합감기약과 주성분이 동일한 약제를 복용하도록 처방해 A씨로 하여금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실명에 이르게 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톡성 표피 괴사용해증이 발생하더라도 진행 속도나 후유증은 환자마다 다르다 할 것인데 A씨에게 중증의 이 사건 장해가 남은 원인에는 A씨 자신의 면역 기전이나 체질적 소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분담을 위해 B병원의 손해배상책임을 3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