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에 뿔난 의사들 "가자 서울역으로"

자궁내 태아사망에 금고형 선고...29일 궐기대회 예고

2017-04-29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자궁 내 태아사망과 관련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의료계 전반에서 반발하며 연일 관련 성명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 의사단체들은 오늘(29일) 예정된 서울역 궐기대회를 지지하면서 회원들에게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앞서 인천지방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게 금고 8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태아에 대해 늦은 태아심장박동수감소가 5차례나 발생한 이후 자연 진통에 의한 자궁수축이 있었는데, 이 경우 또 다시 늦은 태아심장박동수감소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같은 경우 출산이 완료될 때까지 산모의 상태 및 태아의 심박동수에 대한 보다 세밀한 관찰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A씨는 당시 산모의 통증 호소 등을 이유로 산모에게 부탁된 태아 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를 제거하기도 했는데, 이 감지기 제거 이후에는 산모 및 태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며 “기계가 아닌 의료진을 통한 산모 및 태아에 대한 지속적이고 빈번한 상태 체크가 요청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A씨가 수사기관에서 태아의 심박동수에 대해 세심히·지속적으로 관찰했다면 제왕절개 수술 등을 실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던 점을 비춰보면 A씨에게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의협, 대책 마련에 고심 중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 등 의료계 인사들은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양승조 위원장(더불어민주당)과 진행한 간담회 자리에서 이번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간담회에는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 인천시의사회 이광래 회장, 경기도의사회 현병기 회장, 충청남도의사회 박상문 회장,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김교웅 부의장, 한국여자의사회 백현욱 국제이사, 중랑구의사회 이윤수 전 회장, 광진구의사회 임익강 회장,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 김성남 대외협력이사 등이 함께했다.

이날 간담회는 의협이 마련한 보건의료정책 25개 어젠다를 전달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최근 의료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분만 중 태아 사망사건에 대한 판결이 자연스럽게 언급이 됐다.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은 분만 중 태아 사망사건에 대한 판결에 대해 산부인과의사회 등의 우려를 전하며 양승조 위원장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김 회장은 “최근 인천지방법원에서 분만 중 태아 사망사건 당사자인 의사에게 8개월 금고형을 판결했다”면서 “이 때문에 산부인과의사회를 중심으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의료계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금고형이 내려진 것에 격앙돼 있다.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분만 중 의료사고에 대한 비율이 가장 높다”며 “사망·중상해·장애1급에 대한 의료사고의 의료분쟁조정 강제 개시법이 국회를 통과해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판결이 나니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더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숙희 회장은 “분만 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는데 산부인과 반발로 무혐의가 된 바 있다”며 “일본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적극 나서고 있다. 저출산부터 산모에게 지원하는 체계도 잘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 추무진 회장도 “법원 판결에 대한 반대는 어렵지만, 다만 의료행위에 대한 불가항력적 사고의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달라”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환자와 의사를 국가에서 보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승조 위원장은 “판결문을 봐야겠지만 아마 의사의 과실을 중과실로 보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판결은 절대 일반화될 수 없다. 추무진 회장의 의견에 공감하고 이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한다”고 답했다.

◆의료계 “말도 안 되는 판결” 일제히 규탄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지난 13일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를 시작으로, 19일 비뇨기과의사회, 21일 흉부외과의사회, 경상북도의사회, 24일 전라남도의사회, 25일 전국의사총연합, 26일 경상남도의사회, 경기도의사회, 27일 대한의원협회와 한국여자의사회, 안산시의사회까지 직역과 지역을 망라해 규탄이 이어지고 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수많은 분만에서 태아를 다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며 “이런 비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울역광장에서 피 끓는 마음으로 규탄, 항의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선제 산의회는 “자궁 내 태아사망은 분만 중 언제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고, 산부인과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다”며 “자궁내 태아사망을 사유로 태아의 분만을 돕던 의사를 마치 살인범같이 낙인찍어 교도소에 구속한다면 우리나라 산부인과의사는 전과자가 되어버리는 격”이라고 전했다.

이어 직선제 산의회는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모든 사람을 살려내지 못하고 한 사람의 사망자라도 발생한 경우 죄를 묻는다면 누구도 소방관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직업상 수천명 이상의 분만을 담당하게 되는 의사에게 모든 태아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비뇨기과의사회는 자궁내 태아사망을 사유로 분만의사를 금고형에 처한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비뇨기과의사회는 “이번 판결은 분만 중 언제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자궁내 태아사망을 마치 분만을 돕는 의사의 잘못으로 판단하고, 살인범으로 낙인찍어 교도소에 구금하겠다는 잘못된 판결”이라며 “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는 의사생활을 하는 동안 몇 번은 교도소에 들락거려야 하는 잠재적 전과자가 되어야 하고, 분만현장을 낮은 수가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를 분만 현장에서 몰아내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이런 비이성적인 판결이 판례로 남는다면, 모든 의사는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한 사람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에도 그 환자에게 완벽한 진료를 했음을 밝혀야 하고, 조금의 헛점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사유로 감옥에 가게 된다”며 “어느 누가 진료현장에서 위험에 빠진 중한 환자를 진료하려 하겠는가”라고 일갈했다.

대한흉부외과의사회도 “산부인과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에 근접한 진료를 하고 있는 흉부외과 의사들도 이번 사건과 유사한 일들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며 “만약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업무상과실치사형을 받는다면 전국적으로 큰 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의사는 거의 남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상북도의사회는 “태아 심박 수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출산을 불법으로 간주하여 처벌할 수 없다면, 이 상황이 포함된 분만 과정에서 태아가 사망하였을 때 태아 심박 수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하지 않은 의사에게 형사 처벌을 가하는 것은 명백하게 과중한 처벌이라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의사는 신이 아니다”며 “의사는 의료과정에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과 양심에 의하여 최선을 다해 진료하지만 분만이라는 과정은 다른 분야보다 상당한 위험과 불가항력적인 사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의사회는 “앞으로 이 땅에 어떤 산부인과 의사가 이러한 분만 중에 일어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를 만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원에 묻고 싶다”며 “이와 같은 판결에 이르게 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평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원협회도 “잘못된 판결과 제도는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시기가 늦어지면 대한민국의 분만 인프라는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에게 모든 죄를 전가한 법원 판결과 이를 초래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무리한 감정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도 “태아가 자궁 내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일은 모든 임신기간에 걸쳐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심박수 모니터링은 태아의 상태를 살피는 여러 가지 방법의 하나일 뿐, 그것이 태아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잠시 모니터링을 멈춘 이유도 산모의 요구에 의해서라고 하니, 도대체 법원이 무엇을 근거로 분만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의사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한 진료기록을 검토했다는 한 의료계 인사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인천 산부인과의사 구속 사건에 대해 말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이 관계자는 “구속판결을 받은 선생님의 장점은 성실한 의사였다는 것이고, 단점은 같은 여자로서 산모를 많이 생각하고 따뜩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라며 “이는 대한민국 의사로서 매우 적절치 않은 마음이고, 선생님의 성향과 산모를 위한 마음은 대한민국에서는 구속사유”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산모를 너무 공감해주고 너무 많이 위해주는 것이 문제로, 앞으로 분만을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분만을 한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의사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 우리나라 분만수가와 관련된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연구소에서 따르면 건강보험에서는 분만 1건당 2만 6000원 정도 위험수가를 보상하고 있는데, 출생아 10만명당 산모 11.5명, 출생하 1000명당 3.3명이 분만 전추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신생아 1000명당 2.7명은 뇌성마비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산부인과 판결문상 의료소송 인용금액은 평균 9350만원이고, 최대 5억 5000만원에 이른다”며 “분만사고 태아 1000명당 평균 3건, 평균 배상액 1억원, 1000명 분만시 3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분만 1건당 사고대비 적립액이 3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분만 위험수가 1건당 2만 6000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연구소는 “2017년 현재 대한민국 분만수가는 31만원이고, 제왕절개수가는 67만원인데 이는 강아지 분만비보다 못한 수가”라며 “이건 빵셔틀도 모자라 의사들을 교도사 담장 안에 밀어넣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이여, 서울역으로 모여라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산부인과계는 ‘비이성적인 판결’이라고 반발하며 오는 29일 서울역 앞에서 궐기대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인해 그동안 반목을 거듭하던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와 (구)산부인과의사회가 힘을 합쳐 오는 29일 궐기대회에 함께 참여한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 산부인과계에서 궐기대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에 의사단체들은 지지를 선언하면서 회원들에게 참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회원들에게 “이러한 비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오는 29일 서울역 광장에서 피 끓는 마음으로 규탄, 항의 집회를 개최한다”며 “여의사회 회원들도 올바른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집회에 동참하여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가정의학과의사회도 전 회원에게 서울역 규탄대회에 참석할 것을 당부했다는 소식이다. 가정의학과의사회 유태욱 회장은 “회원들에게 서울역 규탄대회에 참석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