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폐색 진단·수술 늦은 의료진, 과실 인정
서울고등법원...4억 손해배상 명령
장폐색 진단과 수술이 늦어져 환자에게 후유증을 남기게 한 의료진에게 과실이 인정됐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최근 환자 A씨와 가족이 B학교법인과 C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4억 2117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05년 12월경 C학교법인이 운영하는 C대학병원에서 위암으로 위전절제술을 받은 적이 있는 A씨는 3년 뒤인 2008년 11월경 저녁식사 후 복통이 발생, B학교법인이 운영하는 B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A씨는 B대학병원에 내원할 당시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고, 장음은 증가돼 있었으며 압통은 있었으나 반사통은 없었다. 혈압은 150/100mmHg, 맥박은 76회/분, 호흡은 20회/분, 체온은 35.8℃였다.
C대학병원 의료진은 A씨에 대해 복부 X-ray 촬영을, 3단계 조영증강 복부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A씨를 유착성 장폐색·장간막 꼬임 의증으로 진단, 3년 전인 위전절제술을 받은 B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장폐색은 장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막혀 음식물, 소화액, 가스 등의 장 내용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크게 기계적인 원인으로 막히는 기계적 장폐색과 기능적으로 막히는 마비성 장폐색으로 나눌 수 있다.
장간막 꼬임으로 인한 급성 장간막허혈로 발생한 장폐색은 응급수술을 요하는 질환으로 그 시기를 놓칠 경우, 장의 괴사가 진행돼 절제의 범위가 커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장내에 혈액의 공급이 없을 경우 6~12시간 내에 괴사가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B대학병원에 도착한 A씨는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으며, 압통이 있었으나 장음은 정상이고, 복부 상태는 부드러웠다. 혈압은 117/71mmHg, 맥박 73회/분, 호흡 16회/분, 체온 36.4℃였다.
B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외과에 협진을 의뢰했고, 외과에서는 소장 폐색 소견이 있으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며 내과적 치료를 먼저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수액 및 전해질 투여, 감압 등의 보전적 치료가 진행됐다.
내과적 치료 도중, A씨의 백혈구 수치가 16780으로 증가하는 등 괴사가 의심되자, 의료진은 복부CT 촬영을 시행했고 활력징후 등의 상태와 CT결과를 종합해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을 통해 의료진은 소장 중 괴사된 75cm 가량을 절제하는 1차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 의료진은 2차 수술을 시도했으나 소장의 유착이 너무 심해 아무런 처치 없이 봉합했으며, 3차 수술을 통해 소장을 20cm 정도만 남기고 전부 절제했다.
현재 A씨는 현재 단장증후군으로 섭취한 음식물의 대부분이 소화나 흡수가 되지 않은 채 대장으로 유입, 설사와 복통이 발생하고, 배변장애와 함께 섭취에너지 결핍형태의 영양부족증인 마라스무스와 단백질 부족 영양부족증인 콰시오커 증세가 중증으로 나타나고 있어 지속적인 총정맥영양치료와 수혈 등이 필요한 상태다.
성인의 평균 소장 길이는 4.8m로, 조장 절제 후 길이가 1.8m 미만이 될 경우 단장증후군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A씨는 B대학병원에는 “C병원에서 보낸 CT를 확인하고도 응급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유착성 장폐색으로 잘못 진단해 보존적 치료만 시행하고, CT를 통해 괴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신속히 응급수술을 시행하지 않아, 수술을 12시간 가량 지연시킨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C대학병원에는 “CT를 확인한 결과 장간막 꼬임을 의심하면서도 이로 인해 혈류 공급이 파단됐는지에 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아 응급수술이 필요한지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모한 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B대학병원으로 전원시킨 과실이 있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장폐색에 대해서는 보존적 치료를 우선적으로 하나 교액성 장폐색 등으로 인해 장에 대한 혈류 공급이 막힐 경우 장 괴사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응급수술을 해야한다”며 “C병원 CT영상에 따르면 심한 장간막 울혈 및 상장간막 동·정맥의 폐색 소견이 확인되는바, 이와 같은 소견을 응급수술이 필요한 교액성 장폐색을 나타내는 징후”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B병원 CT영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장간막하 동맥의 혈류 공급이 차단돼 소장에 허혈이 발생한 소견이 확인되고, B병원 영상의학과 의료진도 추후에 동일하게 진단했다”며 “장에 혈류 공급이 차단되면 6~12시간 사이에 괴사가 발생하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괴사 범위가 넓어진다. 의료진들의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A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 측에서 B병원 의료진이 1차 수술 당시 괴사된 소장을 충분히 절제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절제 범위가 넓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1차 수술 당시 소장을 75cm를 절제하는 것이 의사의 재량을 넘어 과실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건은 항소심까지 진행됐고, 2심 재판부 역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C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할 당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음에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원고들의 요청에 따라 2시간 거리에 있는 B대학병원으로 전원한 과실이 있다”며 “B대학병원 의료진도 전원 당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임을 파악하지 못해 뒤늦게 응급수술 시행을 결정하고, 수술을 결정한 후에도 시행을 지연시킨 과실이 있다며 공동으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이전 위암으로 위전절제술을 받은 상태있었고, 기왕의 전력이 치료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A씨들의 요청에 의해 전원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B, C병원의 책임 비율을 50%로 제한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