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시험, 옮겨 적어도 '불합격' 사유
서울고등법원..."시험 공정성 훼손"
전문의 자격시험 문제를 암기해 다른 종이에 옮겨 적는 행위도 불합격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는 전문의 시험 부정행위로 불합격 처분을 받은 A씨가 B사단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전문의 자격시험 불합격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 2016년 1월경 C대학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고 수료를 앞둔 A씨는 2016년도 제59차 전문의 자격시험 1차 필기시험에 응시했다.
A씨는 1교시 시험을 마치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제출한 후 쉬는 시간에, 2교시 시험을 마치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제출한 후 자신이 푼 시험문제를 기억해내어 백지에 적었다. 시험이 모두 끝난 뒤 시험장에 남아 문제를 적는 모습이 시험감독관에게 적발됐다.
B법인은 청문절차를 거쳐 합격자를 공고하면서 A씨를 불합격 처분했다.
이에 A씨는 “시험의 시험지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시험지와 답안서를 모두 제출해 시험이 종료된 후 기억에 의존해 적었고 우연히 그 장소가 시험이 종료된 시험장이었을 뿐이므로, 의사 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제5조 제7호가 정한 부정행위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설령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문제 유출행위는 의사 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제3조가 정한 부정행위의 정의에 포섭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시험문제를 복원해 후배 전공의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험에 응시하는 병리과 전공의 30명이 각자 암기할 문제를 할당 받았고, A씨도 할당받은 문제를 복원하기 위해 시험 직후 기억한 문제를 백지에 적다가 적발됐다”며 “이는 시험 문제의 일부를 유출할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의사 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제5조 제7호의 문성상으로도 ‘문제(지)…유출하는 행위’라고 되어있을 뿐 반드시 문제지 자체를 유출하거나 문제지를 보면서 옮겨 적어 유출하는 행위로 그 방법을 한정하고 있지 않다”며 “문제 자첼체를 기억해 유출하는 행위가 의사 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문언상 포섭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시험장을 벗어난 후 기억에 의존해 문제 복원·유출하는 행위도 응시생들이 각자 문제를 할당받고 할당받은 문제를 복원하기로 하는 등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면 원칙적으로 의사 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제5조 제7호가 정한 부정행위에 해당한다”며 “다만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 적발되기 어려워 의사 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에 따라 규제 대상이 된 예가 없었던 것에 불과하다. 시험장을 벗어나서 문제를 복원한 것과 차별 취급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A씨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를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의 생각도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시험문제 내용을 별도의 종이에 옮겨 적은 행위는 잠재적인 응시자들에게 유출됨으로 인해 장래에 시행될 전문의 자격시험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어 실질적인 차이가 없어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응시자가 시험문제를 유출할 목적으로 시험시간 도중 또는 시험 종료와 시간적, 장소적으로 근접한 시점과 장소에서 문제의 내용을 별도의 종이에 옮겨 적는 행위는 행위가 이뤄진 장소나 행위의 구체적 경위·방법을 불문하고 전문의 자격시험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는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A씨에 대한 불합격처분이 시험 부정행위와 비교해 비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반하는 등 사회통념에 비추어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거나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부당하다고까지 할 수 없다”며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