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확인 개선’ 3년 공염불, 이번엔 다를까?

2014년 의원협회 문제제기로 시작..확답 받았지만 '미심쩍'

2017-01-12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건보공단의 현지확인과 관련,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의료계의 개선 요구가 이번엔 제대로 반영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는 지난 1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성상철)과 현지확인에 대한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어제(10일)는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의협 집행부와 장미승 급여상임이사 등 건보공단 관계자들이 의협 인근에서 만나 제도 개선에 대해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에서는 추무진 회장, 김숙희 부회장, 임익강 보험위원장이 참석했고, 건보공단은 장미승 급여상임이사, 조용기 보험급여실장, 서일홍 급여관리실장, 이종남 수가급여부장이 참석했다.

의협 측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안산 및 강릉 의사 회원의 자살 사건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과 유감을 표명했다. 또 현지확인과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에 대한 의사들의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는 것에 공감하고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가기로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현지확인은 요양기관이 협의한 경우만 실시 ▲요양기관이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을 거부하거나 현지조사를 요청하는 의견을 표명한 경우 자료제출·현지확인 중단 ▲자료제출 요청 및 방문확인으로 인한 요양기관의 심리적 압박 해소를 위해 의협 및 시도의사회 등과 협력하여 다빈도 환수 사례 등에 대한 설명회 개최 ▲수진자 조회 등 앞으로 현지확인 제도 개선을 위해 지속적 협의 등이다.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겸대변인은 “이번 일은 고인이 된 회원들에 대한 위로 차원에서 끝나면 안 된다”며 “단순히 이 사태를 덮기 위한 것으로 지지부진하다면 의협 차원에서 공단 현지확인에 대한 거부를 할 것이다. 개선과 관련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밝혔다.

◆건보공단 현지확인, 문제의 시작은?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특히 2003년 현지확인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당시 법제처는 ‘건보공단은 요양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의 확인을 위해 서류확인만으로 부족할 경우에는 요양기관의 임의적인 협력을 전제로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현지확인이 가능하다 할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또한 ‘현행법상 명시적인 현지확인 규정이 없는 점을 고려할 때 부당이득과 관련된 사안을 중심으로 현지확인을 행해야 할 것이며,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확인업무의 실시는 현행 법률규정상 허용되지 아니한다 할 것’이라는 게 법제처의 해석이다.

이런 상황에 2014년 강남 모 의원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도중 경찰과 동행인이 수술 중인 수술실까지 난입한 사건이 발생했고, 의사 회원들 사이에서 퍼지던 현지확인에 대한 불만이 표면화됐다.

현지확인에 대한 피해사례를 수집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곳은 바로 대한의원협회(회장 윤용선)였다. 의원협회는 2014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건보공단 현지확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2014년 의원협회는 협회로 제보된 건보공단 자료제출에 대한 17건의 사례와 현지확인과 관련된 32건 사례를 분석한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의원협회에 따르면 건보공단의 자료제출은 원칙적으로 동일유형 5건 미만시 자체환수하고, 5건 이상 시 해당 부당유형에 한정해 사유, 기간, 대상항목 등을 명시해 최대 6개월 진료분 범위 내에서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지만 실제론 이 같은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6개월치 자료제출을 요구한 경우가 11건(65%)이었고 6개월 이상 자료를 요구한 경우도 2건이었다.

요양기관 방문확인 대상 자료요청 및 확인대상 기간은 6개월이 원칙이며 이 이상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지역본부장의 승인이 있은 후에 실시할 수 있는데 이런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한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원칙을 살펴보면 자료의 위·변조 또는 증거인멸 등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자료제출 요구 없이 바로 방문해 확인을 할 수 있는데 32건의 공단 현지확인 사례 중 20건이 사전 자료제출 요구 없이 현지확인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자료의 위조, 변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사전 자료제출 없이 현지확인이 가능하지만 63%가 사전자료제출 요구 없이 나온 것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건보공단이 판단한 것으로, 이는 객관적 규정이나 근거가 아닌 공단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게 의원협회의 설명이다.

또 사전통보 여부가 파악된 사례 28건 중에 사전통보가 없었던 사례도 4건이었고 자료의 위·변조나 증거인멸, 인력확인, 긴급을 요하는 경우 사전고지 없이 현지확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건보공단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2014년 현지확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의원협회는 피해사례를 계속해서 수집, 이듬해 또 한 번의 문제제기를 통해 현지확인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했다.

2015년 발표 자료는 2014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30건의 자료제출과 19건의 방문확인을 분석한 것이다.

의원협회에 따르면 2015년에도 건보공단의 규정위반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처음부터 6개월 진료분의 자료를 요구한 경우가 33%(10/33건)이고, 6개월 이상 자료를 요구한 경우도 33%(10/33건)나 됐다.

특히 700명 환자의 자료를 요구하거나 4년 6개월치 의약품 구입내역을 요구하는 등 황당한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고, 어떤 건보공단 직원은 서면으로 자료를 요청해야 함에도 구두로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는 게 의원협회의 설명이다.

이에 윤용선 회장은 “건보공단이 복지부의 현지조사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만든 요양기관 방문확인 표준지침(SOP)마저 위반하는 것은 규정 내에 위반시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의협이 현지확인 개선에 대해 건보공단에 문제제기를 했고, 현지확인지 지켜야하는 SOP에 대한 개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지확인에 대한 건보공단의 입장은?
현지확인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은 건보공단도 이해하고 있었다. 건보공단은 현지확인은 의료공급자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의협, 의원협회가 현지확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지난 2014년 당시 건보공단 급여관리실에서 현지확인에 대한 실무를 맡았던 박종관 부장은 의약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지확인은 결코 의료공급자를 괴롭히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현지확인에 있어서 건보공단과 의료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잡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며 “건보공단 입장에서는 사후관리, 적정하게 보험료가 나갔느냐는 부분에서 관리를 해야 하고 이런 권한이 공단에 있다는 건 의료계에서도 인정한다”고 전했다.

이어 “마치 의료공급자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현지확인은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보험자의 입장에서 이해를 했으면 하고 의료계에서 의견을 주면 충분히 개선할 의지도 있다”고 강조했다.

◆안산·강릉 개원의 자살, 현지조사·확인 개선 박차
2014년 공론화 이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현지확인 개선이 급물살을 타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7월 안산시 비뇨기과 개원의가 현지조사를 받던 중 압박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에 이어 12월에는 강릉시 비뇨기과 개원의가 현지확인을 받던 중 자살함에 따라 의료계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현지조사·확인으로 인해 의사회원 두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의협을 포함한 의사단체들을 정부당국을 비난하면서 현지확인을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현지조사와 현지확인의 제반 문제에 대한 제도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건보공단의 강압적인 방문확인과 자료제출 요구 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압박과 부담감에 짓눌려 하나뿐인 생명을 저버리는 비극이 초래된 이번 사건에 깊이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은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심사 및 급여기준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급여기준 설정의 틀을 포지티브(Positive) 방식으로 혁신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건보공단의 방문확인부터 현지조사 의뢰까지의 과정 전반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 공개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 엄중한 문책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건보공단의 방문확인을 즉각 폐지하고, 방문확인을 전면 금지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현지확인 폐지’라는 의료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단체가 바로 대한비뇨기과의사회(회장 어홍선)이다. 문제가 된 강릉 개원의 자살 사건의 당사자가 비뇨기과 개원의였기 때문에 안산 개원의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비뇨기과의사회에서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비뇨기과의사회는 사건 직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한정된 조사목적도 없이 남용되는 건보공단의 무소불위의 조사권 앞에 피조사자인 의사들은 극도의 심적 압박감과 자괴감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렸다”고 전했다.

또 의사회는 “행정 조사 기본법 4조 기본 원칙에는 행정조사 제도는 처벌이 아닌 계도를 목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다른 목적 등을 위해 조사권 남용은 불가라고 법에 명시돼 있다”며 “하지만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제도는 계도가 아닌 처벌 목적으로 운용되어 조사자들의 위법적 절차와 조사권 남용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뇨기과의사회는 지난 5일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현지확인 폐지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한개원의협의회 노만희 회장이 이에 동참했고, 의협 추무진 회장도 1인 시위를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한개원의협의회, 대한외과의사회,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대한정형외과의사회, 대한피부과의사회,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도 모두 성명을 발표해 현지확인 폐지에 동참했다.

여기에 의원협회는 전 의료계에 건보공단의 자료제출 및 현지확인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의원협회는 “2017년 요양기관 방문확인 표준운영 지침(SOP) 개정안을 봐도 잘못된 조사행위를 처벌할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내부규정에 따라 처분한다고 하나, 어떤 행위를 어떻게 처벌하겠다는 구체적인 명시는 전혀 없고 요양기관의 설문을 받는다고는 하나 이 역시 SOP 개정을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의원협회는 “의료계의 단합된 의지로 건보공단의 자료제출과 현지확인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바로 건보공단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회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라며 “전 의료계에 공단의 자료제출 및 현지확인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것을 공식적으로 제안한다”고 선언했다.

◆개선안 마련. 그래도 개원가는 ‘불만’
현지확인과 관련된 의료계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의협과 건보공단이 이와 관련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당초 건보공단은 지난 10일 현지확인과 관련해 의협을 방문하기로 했었다. 이 자리에서 의협 추무진 회장이 현지확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제도 개선을 촉구할 계획이었는데 건보공단이 돌연 방문을 취소했다.

이번 만남에서 의협 측이 현지확인과 관련 항의를 한다는 내용이 언론를 통해 보도되자 건보공단이 방문에 대한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이 방문을 취소하자 의협 추무진 회장은 현지확인과 관련된 이유로 방문을 취소했다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추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단 오늘 건보공단이 예정했던 대로 의협을 방문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라며 “건보공단이 현지확인과 관련된 이유로 방문을 취소했다면 이에 대해선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결국 건보공단은 방문취소를 철회하고, 10일 의협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와 의협 인근에서 면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의협과 건보공단은 강릉시 비뇨기과 개원의에 대한 건보공단의 유감 표명과 함께 현지확인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의협과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개선에 대한 공동 입장발표이 있었지만 개원가의 불만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협 노만희 회장은 “지금 나와 있는 개선안을 보면 의료기관이 요구하지 않을 시에는 결국 현지조사를 받으라는 것으로 기존과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며 “구체적으로 현지확인에서 요구하는 서류나 요건을 완화하고 조정하는 등의 구체적 명시가 없어 아쉽다”고 밝혔다.

노 회장은 “현지확인에서 강압적이란 공단 직원의 태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점잖게 자료를 요구하더라도 요구 내용 자체가 의사에게는 강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최소한 처벌 목적이 아닌 계도의 차원이라면 자료제출의 양을 정확하게 개선안에 명시하고 이행해 주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도 “계도의 목적이라면 처음부터 1차적으로 청구가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고 2차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해야지 의료기관이 거부하면 안하겠다고 하는 것은 복지부 현지조사를 받으라는 일종의 협박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김 회장은 “건보공단은 먼저 자료제출이나 현지확인에 앞서 청구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점검하고 의료기관에 충분히 고지를 하는 맞다”며 “계도의 목적이라면 문제가 있는 의료기관에 먼저 시정하라는 안내가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비뇨기과의사회 어홍선 회장은 “이번 개선안은 기존부터 건보공단이 해와야했던 것들이어서 일종의 자기 고백, 반성이라고 생각한다”며 “건보공단이 앞으로 의료기관과 협의 후에 방문확인을 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어 회장은 “이것이 지속될 것인지 임기응변으로 대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며 “의협이 말한 대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회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건보공단이 직접 의협을 방문해서 현지확인에 대해 논의하고 개선안이 나온 것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제도나 조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보면 이를 한순간에 바꾸는 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공단이 의협과 함께 이런 공동 발표를 한 것은 예전보다 더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앞으로 하나씩 바꿔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