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직원? 빛 좋은 개살구일 뿐”
국내법 무시 관행 고발...“희망퇴직 아닌 ‘찍퇴’” 일갈도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임금을 줄 필요가 있나?”
한 다국적 제약사 노조위원장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모 국내법인 대표가 한 발언으로 요약했다. 이들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듣기 거북한 이 발언이 ‘팩트’라고 주장했다.
다국적 제약사란 세계를 리드하는 선진국의 선진기업, 그래서 합리적이면서도 컴플라이언스가 깐깐한 믿을만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국내법인의 현실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 이들의 토로다.
‘글로벌 방침’이라는 미명하에 국내법들은 무시한 채 글로벌 영전만을 목표로 성과 올리기에만 집중하는 사이 직원들의 복지는 외면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의약뉴스를 포함한 의약계 10대 전문지들이 함께하는 ‘다국적 제약사 출입기자 모임’은 최근 다국적 제약사 노조위원들을 만나 이들이 토로하는 ‘다국적 제약사 영업사원’의 현실을 들어봤다.
◇한국 근로기준법 무시...휴일근로수당도 최근에야 도입
으레 다국적 기업이라 하면 국내 기업들보다 합리적이며, 직원들과의 관계도 보다 수평적이고, 대우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다국적 제약사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노조위원장들의 토로다.
외부에 드러내기에 창피할 정도로 국내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한결 같은 목소리다.
이를 두고 한 노조위원장은 “다국적 기업의 노사문화는 잘못 포장되어 있다”며 “다르게 이야기하면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빛 좋은 개살구’”라고 일축했다.
단적인 예가 휴일근로수당이다. 업무특성상 영업사원들은 휴일 근무가 불가피하지만 휴일근로수당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사이라는 것.
그나마도 일부에서는 직급과 무관하게 정액으로 보상하고 있으며, 대체휴무를 제공하는 업체의 경우 실제 이를 활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외국계 기업이라면 휴일근무수당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이제야 조금씩 정착되어가는 추세”라며 “그나마 대체휴무를 하루 받는 것도 유야무야되고 있다”고 힐난했다.
◇MR 만능화에 업무강도 심화...필드 뛸 시간 턱없이 부족
오히려 휴일근로수당이 도입되면서 업무강도만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학회 부스에 나가야하는 영업사원수를 줄이거나 아예 대행사를 활용하기도 한다는 것.
영업사원이 부스에 있어야 의사들의 질문에 답변도 할 수 있고 디테일도 진행할 수 있는데, 대행사 직원들이 자리만 지키면서 결과적으로는 실적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들은 또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업무강도도 외면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쌍벌제 이후 김영란법에 이르기까지 규제가 강화되면서 MR 만능화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노조위원장은 “필드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페이퍼워크가 늘어나고 있어 결국에는 (업무시간 외에) 사무실에 복귀해서 일을 하거나 주말에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면서 “심지어는 매니저들이 금요일 저녁에 카톡을 보내 월요일까지 작업해 오라 지시한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주말에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휴일근무로 인정받는 것은 학회 참가뿐이어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더해 IT의 발전으로 퇴근해서도 보고서 작성과 결재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최근에는 MR들이 마케팅은 물론 HR 작업까지 만능화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외부에서는 다국적 제약사 영업사원은 임금이 높고 복지가 좋다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근무강도도 상당히 높다”고 씁쓸한 현실을 지적했다.
◇희망퇴직 아닌 ‘찍퇴’...CEO는 ‘글로벌 방침’ 핑계
외국계 기업의 직원들이 부러움을 사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인 ERP(Early Retirement Program, 희망퇴직 프로그램) 역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야 할 ERP가 실제로는 저성과자나 근속연수가 오래된 사람, 혹은 CEO가 찍은 사람들을 내보내는, 사실상 ‘찍퇴’가 되고 있다는 것.
비용절감을 이유로 ERP를 주장하지만, 기존의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신규 채용을 진행하는 것이 ‘찍퇴’의 증거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들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ERP의 이유를 사측에서는 ‘글로벌 방침’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방침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글로벌 감사팀과 본사에 항의 메일을 보낸 결과, 국내법인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이 확인된 사례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경우 글로벌에서 직원을 정리하라고 구체적인 지시가 나온 것이 아니라 예산을 줄이라는 지시를 내리는데, 국내 법인 대표들은 비용절감보다 손쉬운 직원정리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회사에서 ‘글로벌 방침’을 핑계로 내세우는 사례가 비단 ERP 뿐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에서 나아가 영업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글로벌 방침’이 핑계가 되고 있다는 것.
실례로 지난해 느닷없이 불명예 퇴진한 모 제약사의 국내법인 대표 역시 ‘글로벌 방침’을 핑계로 내세우다 본사에 발각되어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했다.
◇국내 법인대표는 ‘바지 사장’...한국인이라고 다르지 않아
한국인, 그리고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대한 무시는 국내법인 대표가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다를바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국적과 무관하게 그저 ‘바지사장’일 뿐이라는 것.
한 노조위원장은 “이들의 관심은 한국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특히 과거에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좋았을 때에는 서로 한국법인으로 오려 했었다”고 꼬집었다.
최근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법인 대표로 한국인들을 많이 내세우는 이유는 한국인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 보다 국내시장의 성장률이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인 사장이 많아진 것은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외국인 사장들이 오려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둘 다 목표는 글로벌로 나가는 것이지 한국인 직원들에 대한 복리에는 관심이 없다”고 힐난했다.
나아가 “매번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가족친화적 기업’, ‘엄마가 일하기 좋은 직장’에 선정됐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어떻게 선정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실제 여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쓰는 상황을 보면 욕이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합리한 현실, 글로벌 연대로 타개...한국내 재투자 확대 주문도
노조위원장들은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다국적제약사들이 그만큼 국내에서 재투자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에 인색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김영란법 도입 이후로 다국적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임금인상률은 형편없다는 것.
실제로 모 업체의 경우 내년 임금인상률을 1%로 제시한 바 있으며, 협상이 결렬되어 재협상에 나선 모 업체는 추가 인상폭을 0.1%로 제시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수년간 영업사원 숫자도 줄여가고 있어 채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국내 공장을 철수하고 있는 배경을 꼬집는 이도 있었다. 공장을 통폐합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원가를 알 수 없는 현실을 이용하면 국내 법인의 수익은 떨어지더라도 리전이나 본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 공장을 돌리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지적이다.
‘다국적 제약사 출입 기자 모임’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추가로 확보해 다국적 제약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기여’의 허와 실을 재조명할 예정이다.
한편, 최근 다국적 제약사 노조는 국내법인 직원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 연대를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해외 사례를 알 수 없어 ‘글로벌 방침’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믿었지만, 최근에는 불합리한 요구가 있을 때에는 본사나 글로벌 노조에 확인해 거짓을 밝히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