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의 약조제 근절 더 미룰 수 없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수 십 년간 관행처럼 해오던 일이 오늘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대개 관행이라고 할 때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쪽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오늘 언급할 관행역시 그렇다.
약국에는 약사가 있다. 약사가 하는 일은 약을 팔고 약을 조제하고 처방된 약의 복약지도를 하는 일이다.
그 밖에도 제약사 영업사원을 상대하거나 이런 저런 회계 서류를 정리하고 약국을 청소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뒤의 일은 약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고 약사가 대리인을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선 약사의 임무는 약사이외의 누군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대리인을 시켜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길 때는 법의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약국의 장부를 적는 사람이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약사 본연의 일을 단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약의 조제행위다. 약사만이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그 만큼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약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척척 잘 도 해낸다. 이쯤 되면 굳이 약사가 6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시험에 합격할 필요도 없겠다.
누구나 보름 정도만 연습하면 되는 그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전국의 2만 여개 약국에서 모두 실시되지는 않겠지만 많은 수의 약국에서 단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악습을 지적하고 고치자는 언론의 보도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으며 약사회 차원의 자정약속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대도 근절이 되지 않는 것은 그런 일을 약사들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를 고용할 때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일반인을 써서 약을 조제하게 하거나 약사 면허증을 가진 자신이 조제를 하나 별로 다를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행위는 과거형이 아닌 오늘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현재형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흔히 약사의 아킬레스 건이라고 불리는 카운터의 약 조제 행위는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된다. 해마다 약국경영이 어렵다며 조제료와 복약지도료 등 수가인상에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국민건강은 외면하는 이런 비열한 행태는 당장 중단되어야 옳다.
여론도 좋지 않다. <한겨레 21>은 최근 '나는 1년 3개월, 가짜약사였다'는 제목의 비중있는 기사를 실었다. 예전처럼 일회용으로 지적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자칫 약사의 위치가 추락하고 약권에 심각한 타격이 올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해서 인지 약사회는 최근 약국내 종업원의 조제행위와 관련해 강도 높은 정화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은 담화문에서 '일부 약국의 일탈 행위와 관련해 국민과 회원께 드린다'고 운을 뗀 뒤 7만 약사를 대표하는 회장의 참담하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담화문에서 후안무치한 약사, 약사의 도덕성과 신성한 의무를 스스로 짓밟는 동료의 배신에 분노를 드러내고 하얀 가운으로 위장한 내부의 적을 소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의 불법행위를 신고 받고 자체조사와 함께 모든 기구를 가동해 국민이 안심하고 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고 약사법 위반 약사는 복지부 장관에게 면허 취소를 요청하는 상황도 불사하는 자정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아주 작은 허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변명같지만 종업원의 약 조제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화상투약기와 같은 무건운 약사의 현안 때문에 약사사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해야 할 일을 잠시 소홀했다는 죄책감 밖에 들지 않는다고 변명을 했다.
우리는 약사회의 이같은 대국민 사과를 담은 담화가 매우 시기 적절하고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사과나 다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다. 이제 더이상 제식구라고 감싸서는 안된다. 담화문에 나온 그대로 약사법 위반 약사에 대한 면허 취소 등의 강력한 법적 제제가 뒤따라야 한다.
종업원의 약조제 행위로 인해 얻는 수익보다 법적 제제가 더 크고 무겁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약사들이 굳이 종업원에게 약사의 일을 대신 시키지 않을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천의 맑은 물을 흐리듯이 오늘도 상당수 약사들이 좁은 약국안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땀흘리고 있다.
단지 동료 라는 이유만으로 범법행위를 일삼는 약사들을 숨겨줘서도 안되고 이런 약사들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화려한 언변이나 수사가 아닌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종업원에게 약조제를 시킨 약사의 면허를 박탈당하는 1호 약사가 자신이 안되도록 전국의 약사는 신중해야 한다.
이제는 정화약속을 하겠다는 말이 아닌 위반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약싸개나 아저씨, 아줌마가 아닌 약사선생님으로 존경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