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백신, ‘투자’와 ‘투기’ 사이
B형 위험 인식 변화...4가 백신 비중↑
“투자라 함은 철저한 분석을 통해 원금의 안전과 만족스러운 수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두 투기다.” - 벤저민 그레이엄.
매년 가을철이 되면 ‘물백신’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인플루엔자 백신’. 믿고 접종을 받기에도, 그렇다고 무시하고 건너뛰기에도 찜찜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녀나 부모에게는 적극적으로 권하지만, 스스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물백신’ 논란의 그 핑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지난해 GSK가 내놓은 플루아릭스 테트라를 시작으로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4가 백신들이 기존 3가 백신의 한계를 공략하며 존재감을 드러낼 전망이다.
기존의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두 가지 A형 바이러스주(H1N1, H3N2)에 한 가지 B형 바이러스주(빅토리아 또는 야마가타 중 1가지)를 추가한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매해 두 가지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중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러스주를 예측해 접종했던 만큼, 예측이 빗나갈 경우 예방률을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분석한 결과,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예측이 적중한 경우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실상 예측이라는 표현이 무의미한 수준으로, ‘인플루엔자 백신=물백신’ 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배경이다.
B형 바이러스주에 대한 예측 실패로 백신의 효과가 급감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으로,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3가 백신이 상대적으로 ‘투기’에 가깝다면, 4가 백신은 ‘투자’ 쪽에 가깝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명확하게 정의되고 미리 잘 준비된 기준을 충족’하는 ‘안전’을 담보하느냐에 달려있다.(벤저민 그레이엄)
이를 고려하면,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A형에 비해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로 ‘둘(야마기타vs빅토리아) 중 하나’가 얻어걸리길 기대하며 3가 백신을 접종할지, 아니면 ‘안전하게’ 두 가지 B형을 원천적으로 봉쇄할지의 선택은 명확하다.
선제적으로 4가 인플루엔자 백신을 내놓은 GSK 학술부 장현갑 부장은 “A형에 비해 B형은 심각하지 않다고 하지만, 전체 인플루엔자로 바이러스 감염 중 30% 정도가 B형으로 인한 것이고,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 중 B형으로 인한 사망률도 29%에 달한다”며 “또 소아보다 고령자는 위험하지 않다 하는데, 고령자에서도 B형으로 인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이 25~29%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사례중 절반이상이 B형에 의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B형의 심각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감염학회는 지난해 백신에 대한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한국은 3~4월에 백신에 포함되지 않은 인플루엔자 B 유행이 반복되고 있고, 4가 백신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얼핏 보면 3가 백신에 혈청형 하나를 더한 4가 백신의 효과가 당연히 뛰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장 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혈청형을 추가할 경우 기존에 포함됐던 혈청형에 의한 보호효과가 떨어지거나 소실될 수 있다”면서 “플루아릭스 테트라는 임상을 통해 기존 3가 백신과 동일한 혈청형에서는 면역원성의 차이가 없고, 추가 혈청형에서는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4가 백신의 실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예방 효과를 입증한 데이터는 아직 확보되지 못했다.
변화무쌍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성상 통제된 임상시험으로 예방 효과를 입증하기가 어려워 면역원성을 통해 허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부장은 “현재 소아에 대해 3~4년의 장기간 데이터를 수집히고 있어 그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며 “호주에서는 국가예방접종을 100%로 플루아릭스 테트라로 선택해 실제 예방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역원성 데이터를 통해 이미 3가 백신보다 우월한 예방효과를 입증한 만큼,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GSK가 플루아릭스 테트라를 출시하며 확보한 물량이 부족했을 정도로 4가 백신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고 사측은 소개했다.
무엇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합병증에 취약한 만성질환자와 소아들에게 4가 백신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최근에는 국내사들도 경쟁적으로 4가 백신을 개발하며 경쟁무대에 뛰어들었다.
특히 유정란 배양 백신인 플루아릭스 테트라와 달리 세포배양 방식을 선택, 안전성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공략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장현갑 부장은 “세포배양 백신은 생산기간이 짧다는 장점은 있지만, 유정란 배양 백신과 비교해 어느 것이 더 안전하다는 데이터는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효과의 차이에 있어서는 노바티스에서 1만 명 이상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연구에서는 세포배양 백신 보다 유정란 배양 백신이 항체역가나 혈청보호율 모두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유정란배양 방식은 개발된 지 70여년이 된 기술로, 오랜 기간 사용되며 임상적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며 “세포배양 방식도 소개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아직 그렇게 많이 활용되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GSK 백신 마케팅팀 정현주 차장은 “플루아릭스 테트라는 한국은 물론 FDA와 유럽에서 허가를 획득한 유일한 4가 인플루엔자 백신으로, 34개국에서 허가를 획득하고 1억 도즈 이상 공급됐다”면서 “그만큼 많이 사용되면서 면역원성이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다는 의미”라고 내세웠다.
이어 “특히 백신과 같은 바이오 제품은 생산공정에 따라 같은 제품이 전혀 다른 효과를 보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프로세스가 곧 제품력이라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생산공정이 중요하다”며 “34개국에서 허가를 획득했다는 것은 각 국가의 GMP에 부합했다는 의미이고, 좋은 프로세스로 퀄리티 있는 백신을 생산하고 있음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