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후진국
2005-02-07 의약뉴스
태국의 관광자원을 대할 때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의 정통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회의심을 품게 되고, 한 시절 한국 여행의 대명사가 되었던 기생관광이란 단어가 떠오를 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일본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지만 관광객을 맞을 땐 선진국과 후진국을 차별하지 않고 사장이 직접 나와 인사하는 친절을 보이기도 한다. 화장실을 전시장의 맨 끝에 설치해 손님이 한번이라도 더 상품을 대면하고 구매욕을 갖도록 하는 영악함을 보인다. 수많은 관광버스가 통과하면서 관광객의 주머니 돈이 아닌 매연만 남기는 진해 벚꽃놀이와 대조적이다.
그런가하면 거리에 주차시설조차 마련하지 않고 30만 원 짜리 불법 주. 정차 스티커를 발부하고, 제나라 화폐와 제나라 언어가 아니면 상대도 않는 프랑스도 있다.
대만이 뒷골목 야시장을 관광 자원으로 내세우듯 태국은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수상가옥을 오히려 달러 벌이로 당당히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관광객의 눈을 의식해 거리의 잡상인을 단속할 때 태국 정부는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설치해 관광객을 상대로 달러를 벌도록 특혜를 주었다.
코끼리가 등장하는 웅장한 쇼를 통해 태국의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고 간간이 한국, 일본 등 관람객 국가의 애창곡을 연주해 더 큰 박수를 받아내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성전환 의술을 자랑하는 나라답게 여성으로 성 전환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알카지쇼’ 조차도 여행객의 넋을 뺏는 관광상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환상적인 감상은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부터 구겨지게 마련이다. 여행사의 횡포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덤핑 상품을 미끼로 던진 서울의 모 여행사는 적자를 보충해야 한다며 여행 일정의 하루를 쇼핑 행사에 할애했다.
가이드가 인솔해간 상점엔 빠짐없이 한국인이 근무를 하고 있었고 그 중엔 시중보다 두 배나 비싼 값으로 판매되는 상품도 있었다.
방콕을 떠나는 날, 여행비 중에 ‘돈무앙’ 국제공항 이용료가 포함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행사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며 자비 부담을 하라고 한다. 만에 하나 가져간 돈을 다 써버렸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이드는 월급 없이 팁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며 15명을 기준으로 1인당 하루 10달러씩 날짜별로 계산해 달란다. 인원이 8명밖에 안된 우리 팀은 300달러를 만들어 주었다. 어이없는 일은 한국에서 따라간 여행사 직원마저 똑같이 제몫을 챙기는 것이다.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 갔던 친구가 한국에 돌아와 관광을 한 후 ‘미국에선 가이드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봉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데 한국에선 정반대로 손님들이 가이드 눈치보며 팁을 걷어주기에 바쁘더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날 아침, 비가 내리고 딸아이와 여행가방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다. 공항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거리에 비해 많은 요금이 나오는 듯 싶었는데 간석오거리까지 22,000원의 택시 요금이 나왔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당연한 표정으로 4만원을 요구하며 불쾌한 심사에 불을 지폈다.
게다가 우리가 태국에서 선택한 관광 상품은 현지 요금의 몇 배나 되는 바가지를 씌운 채 여행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국내 일간지의 기사를 읽는 순간 이번 여행은 차라리 하지 않은 만 못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우리의 관광 정책이 태국보다 10년 이상 뒤져있다’고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서슴없이 말하는 까닭은 정책의 부재 이상으로 관광 요원의 자질이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