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아체에서 온 편지'
〔印尼 현지 방문기〕공단 홍보실 송상호 과장
2005-01-19 의약뉴스
그곳은 쓰나미(지진해일) 최대 피해지역이다.
의료진은 13일부터 18일까지의 진료활동을 마치고 21일 새벽 귀국할 예정이다.
의약뉴스는 현지 행정요원으로 함께 참여했던 공단 홍보실 송상호 과장의 방문기 전문을 게재한다.
생생한 현장 전달을 위해 가능한 첨삭을 자제했다.(편집자 주)
〔제1신 : 시간이 정지된 반다아체〕
◇10만명 혹은 13만명의 사망자
인공위성이 찍은 반다아체 곳곳은 이미 그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해안가나 저지대는 형태조차 사라졌습니다. 피해규모와 지역이 광범위하고 도로와 다리도 유실되어 있어 접근에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아직 주검들이 방치되어 있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입니다. 반다아체에서 10만명이 죽었다고도 하고, 13만명이라고도 합니다. 발견된 시신만 7만5천구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최대 피해지역이지만 접근이 불가능하여 희생자 파악이 불가능한 반다아체 서쪽 해안지역을 제외한 것입니다. 수만명에 이르는 고아들은 구호품도 제대로 배분 받을 수도 없어 삼중 사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영국의 구호봉사자 레이첼은 재난 직후부터 이곳에서 고아들을 돕기 위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헌신적으로 뛰고 있지만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는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의료진, 두 팀으로 나눠 진료활동
오전에 의료진 활동상황을 스케치한 후 자연이 내린 재앙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새벽까지 세 번의 지진이 있었는데, 두 번째는 너무 심하여 일단 눈감으면 끝인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고 있는 바닥을 누군가 흔들어대는 것 같았습니다.
사 오명씩 새우잠을 자야하는 좁은 방에서 모두가 깨어났지만 침묵만 흘렀습니다. 다른 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곤 다시 잠들었습니다.
13일 반다아체 사마하니 난민수용소에서 진료를 시작한 일산병원의료진은 14일부터는 팀을 두 개로 나누어 진료지역을 두 곳으로 확대했습니다.
새로운 지역은 구호대책본부들이 밀집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롬바떼라는 곳인데, 2천명의 난민이 수용되어 있지만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오히려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곳입니다.
김철수 단장(산부인과 전문의)과 간호사, 약사 등 4명의 의료진은 난민촌으로 개조한 관공서 현관(사진 참조)에 진료소를 차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5살 짜리 꼬맹이 '마취 없이' 수술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환자들이 먼저 치료를 받으려 한꺼번에 몰려들어 커다란 혼잡을 빚기도 했습니다. 한 어머니가 업고 온 5살짜리 어린아이는 오른쪽 겨드랑이에 커다란 종기를 오랫동안 방치하여 피고름이 흐르는 상태였습니다.
임파선 부위여서 감염 위험이 너무 높아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그만한 시설을 갖춘 곳은 이곳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 이상 미룰 경우 감염경로에 따라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곧바로 종기제거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고통에 울부짖었고, 의료진은 발버둥치는 아이를 붙드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울며불며 아이를 달래던 어머니는 수술이 끝나고 붕대가 감겨지자 실신하여 쓰러져버렸습니다. 생살을 수십 바늘이나 찢겨진 아이는 쓰러진 엄마 앞에서 울음을 더했습니다. 울음은 공포로, 공포는 신음이 되었습니다.
김철수 단장은 "하루에 200여명씩 진료를 하는데 외상환자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방치해 왔거나 초기에 치료를 잘 못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옴, 이, 기생충 약이 부족하여 기본적인 치료에도 어려움이 있어 너무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지 주민, 생활환경 '악화'
한편, 사마하니에서 진료를 계속 중인 조경희 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팀도 하루 200여명씩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조 과장은 "이 곳도 외상환자가 많지만 피부병 환자와 폐렴 등 감염성 질환자도 많다. 생활환경이 그만큼 비위생적이고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며 근본적인 예방책이 절실함을 강조했습니다.
유니세프에서 홍역백신을 지역별로 의료진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한 번 접종한 아이들을 부모들이 또 다시 데려오는 경우가 너무 많아 백신접종시 아이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표시를 하기로 의견을 통일하여 시행하는 일도 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의 의료진인 일산병원팀이 두 개로 확대됨에 따라 진료환자수도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팀마다 200명씩이면 하루 400명이며 일주일을 진료할 경우 진료환자 수는 2천800명에 달하게 됩니다. 이 숫자는 이 곳에 온 어떤 의료진도 세우기 힘든 기록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의료진에게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습니다.
◇알라신 섬기는 반다아체 사람들
금요일이 이 곳 이슬람사람들에겐 일요일에 해당합니다. 예배시간인 오후 1시를 맞추어 반다아체에서 가장 큰 사원인 그랜드 모스크에 갔습니다. 모스크 건물 안은 이미 꽉 찼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커다랗게 흘러나오는 설교와 순서에 따라 밖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신발을 벗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밖에 널려진 신발들은 때로 산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수천 켤레나 되는 신발들(주로 슬리퍼임)이 어떻게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재앙은 반다아체 최대 모스크도 결코 비껴 가지 않았습니다. 광장 곳곳은 아직 진흙으로 덮였고, 우뚝 서서 광장 중앙을 지키고 있던 높은 탑은 중간 부분이 심하게 뜯겨져 나가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모스크가 거의 온전한 것은 '알라신의 보호'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모스크 주변의 초토화된 구조물들은 남아있는 화려한 간판들만이 이곳이 쓰나미 직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던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병자에게 神은 없다
이 흥미로운 의식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외신 보도진들의 표정에 '경멸과 조소'가 깃들여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가난과 재앙으로 찌든 미개한 동남아인들에 대한 우월의식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딸을 앞세우며 구걸하는 눈 먼 엄마를 백인기자가 귀찮은 듯 밀쳐버렸습니다. 쓰러진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고 여자아이는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관심과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망연히 주저앉은 엄마의 품으로 아이는 자꾸만 파고들었습니다. 이 불쌍한 모녀 외에 그곳 그 누구에게도 신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즐비한 주검들…남겨진 폐허
그랜드 모스크를 뒤로하고 반다아체의 북동쪽 해안가로 향했습니다. 비극을 확인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로가에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시신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없는 주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개나 고양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떼어간 것일 것입니다.
도로 양쪽에 늘어선 파괴된 가옥들은 무서운 적막과 함께 이 곳이 유령의 마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앙상한 구조물만 남은 가옥들은 쓰나미의 위력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안가가 가까울수록 피해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주택가는 거대한 늪이 되어 있었고 야자가로수들은 해안반대방향으로 일제히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아도 폐허와 진흙 밭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저주의 땅, 자연이나 핵폭탄에 의한 재앙으로 인류가 멸망한다면 지구에서 인간이 살았던 흔적은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간이 보이는 구조물의 뼈대만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습니다.
◇시간이 정진된 '유령마을'
내팽개쳐진 가방에서 책갈피가 바람에 힘겹게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림책이었습니다. 가방의, 그림책의 주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절망의 순간에 아이와 그 부모는 함께 있었을까. 이곳 시간은 지난달 26일 쓰나미가 덮친 이래로 정지되어 있습니다.
해안가로 더 향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옥과 사망의 모습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습니다. 우리 일행 3명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위에 어떤 생명체도 사라진 듯 합니다.
결코 두 번 다시 올 곳은 아니었습니다.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 지각의 한계로는 복구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뒤덮였다고 믿었던 자연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제2신 : 반다아체,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쓰나미의 재앙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산 자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너무나 힘겨운 짐입니다. 삶의 터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졸지에 가족을 잃은 슬픔은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고통스러운 오늘과 희망 없는 내일, 이것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놓인 현실입니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슬픔
공단의 롬바떼 난민촌 진료소엔 특히 고아 환자들이 많습니다. 영어구사력이 뛰어나고 반듯하게 생긴 13살 소년 릴리는 심한 오열과 기침을 견디다 못해 비실거리며 진료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집을 덮친 쓰나미로 부모와 동생은 파도에 휩쓸려 갔습니다.
함께 떠내려간 안경 때문에 사물을 흐릿하게 보아야 하는 불편을 언제까지 겪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빤히 보는 눈 앞에서 7명의 자식들을 수마에 하나씩 잃어버린 이쓰라는 하루종일 촛점없이 입을 벌린채 멍하게 앉아있습니다.
17세 에스마리는 수액을 꽂고 누워있는 13살인 동생 줄리아디를 보며 한없이 흐느낍니다. 이곳은 그늘진 곳에 아무 바닥이든지 깔면 입원환자가 됩니다.
심약하기만 한 두 형제로부터 부모를 빼앗아간 쓰나미는 너무나 혹독한 운명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난민들 모두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마음의 병도 앓고 있습니다.
◇거대한 난민촌, 반다아체
반다아체 전체는 거대한 난민촌입니다. 도심 곳곳은 물론이고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도 난민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메단 방향의 내륙쪽에 있는 '솔레몽'난민촌에 들어섰습니다.
오전 9시도 안 되었지만 태양은 모든 것을 녹일듯이 이글거렸습니다. 2천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빼곡히 들어찬 천막들은 산 자들의 지치고 고달픈 감옥이었습니다. 천막 안은 한증막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열대태양 아래에서 천막생활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가 더위에 울어대는 발가벗은 아이에게 바람을 일으켜 주려고 애처롭게 수건을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렇다고 마땅한 그늘도 없는 강 둔치인 밖으로 나올 수도 없습니다.
동굴처럼 어두운 천막 안에서 넋나간 채 우두커니 앉아있는 난민들의 모습에서 비극의 끝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솔레몽'난민촌을 끼고 흐르는 황토 빛 강물은 언제라도 이들을 삼킬 듯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진료혜택은 '행운'
수많은 난민촌 중 의료진의 혜택을 받는 곳은 극히 일부의 행운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운도 이들이 떠나가면 이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난민들, 특히 수만명에 이르는 고아들은 영양실조와 질병, 그리고 부모를 잃어버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잠들기 전에 이것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빨리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 달라고 빌 것입니다.
어린 고아들은 예외 없이 어른들에게 밀려 구호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거처 또한 그 난민촌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기라서 하루 한 번은 엄청난 소나기가 퍼붓습니다.
그때마다 쓰나미의 악몽이 되살아나 공포로 발작증세를 일으키는 난민들이 생깁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이곳 모든 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고통…어머니의 눈물
시간을 쪼개어 많은 난민촌을 둘러보았습니다. 반다아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상황은 더욱 열악했습니다. 놀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썩어가는 음식쓰레기 위에서 온갖 오물과 함께 뒹굴고 있습니다.
잠시 들른 난민촌에서는 5살된 아이가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지만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의료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난민촌에서 질병은 또 하나의 재앙입니다.
난민촌에 의료진이 있다는 것은 진료와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의료 등 구호활동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버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에 하루의 일상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희망은 고난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들에겐 너무나 절실한 '무엇'
일요일 저녁 미팅에서 살펴본 난민촌들의 실상을 설명하면서 더 열악한 난민촌으로 한 두 번만이라도 진료를 나가는 것이 그들에겐 너무 절실한 상황임을 알렸습니다.
전체 디렉터인 밥은 이를 승인하였고, 사마하니 난민촌의 조경희 과장 진료팀이 솔레몽 난민촌을 화요일 반나절 동안 모바일 진료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동시간 때문에 더 먼 곳은 불가능했습니다.
김철수 단장의 롬바떼 난민촌 진료팀도 또 다른 모바일 진료를 계획했지만 예약된 환자들로 포기했습니다. 수술 환자는 실을 풀어 주어야 하고, 조치한 외상환자는 그 경과를 살피며 치료가 이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안타까움과 남겨진 환자들
수요일인 내일이면 우리는 이 곳을 떠납니다. 하지만 후속팀은 2월에 온다고 합니다. 그 공백기간 동안에 치료가 이어져야 할 환자들은 방치되어야 합니다. 외국 의료진도 오는 팀보다 떠나는 팀이 월등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간과 함께 세계의 관심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치료되지 않았고, 도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후속대책 없이 떠난다는 것은 이들을 내팽개쳐 버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료팀 중에서 다음 의료진이 이곳에 올 때까지 연장하여 일부라도 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하지만 김 단장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잔류자를 남기기에 이곳은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구성원 하나 하나의 안전과 보호를 책임져야 할 단장으로서는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산병원에서의 진료스케줄도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일 것입니다.
서울대, 국립의료원, 고려대, 연세대, 그리고 공단일산병원이 단일의료기관으로서 아체와 스리랑카에 진료팀을 파견했습니다. 의사회나 한약사회 등 단체를 제외하고 단독으로 의료진을 파견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대형병원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국내의 현실입니다. 국가적인 의료구호시스템을 구축하여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지원활동이 너무나 아쉬운 순간입니다.
◇천진난만한 주민들…헌신적인 의료진
어제 반다아체 상업지구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참담함을 보아야 했습니다. 화교들이 장악한 반다아체 최대의 중심가이자 경제축이던 상업지구는 파괴 그 자체였습니다.
상가 뒤를 흐르던 강에서 밀려온 배들이 무너진 건물에 박혀 있기도 했습니다. 중무장한 흰 마스크의 군인들은 아직도 시신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한 상점에서 두 구의 시신을 비닐봉지에 싸서 운반했습니다.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보아 어른과 아이일 것으로 보입니다.
오후에 모바일진료를 할 예정이었던 솔레몽 난민촌에는 끝내 가보지 못했습니다. 사마하니에 환자들이 계속 밀렸기 때문입니다.
내일 반다아체를 떠납니다. 입안은 헐었고 피부는 새카맣게 탔습니다. 많이 지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깨끗한 물로 마음껏 샤워를 하고 싶습니다. 숙소에서 나오는 물도 마음놓고 씻기에는 너무 오염되어 있습니다.
밀려드는 잠을 쫓아가며 작성한 글과 사진을 공단으로 보내는 일은 또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을 전송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재앙을 치유코자 했던 일산병원의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조그만 관심에도 고마워 어쩔 줄 몰라하며 수줍어하는 얼굴들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반다아체의 모든 기능은 마비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리 =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