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 음주 단속의 문제

2004-11-29     의약뉴스
지난 5월 2일 밤 10시, 담당 경찰 직원과 함께 음주 운전 단속을 실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사전 예고한 덕분인지, 금요일 밤은 음주 운전 단속의 날이라는 인식이 시민들에게 자리잡혀서 인지 몰라도 눈으로 식별할 정도의 과음 운전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단속률이 극히 저조한 이유는 운전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일괄적인 단속이 아닌 선별적인 측정 방법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스’ 공포도 한 몫을 거들었다. 전에는 종이컵에 바람을 불게 한 후 간접적으로 술 냄새를 맡았지만 ‘사스’의 전염성을 의식해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음주 측정기를 입에 대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속 경찰 직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코를 운전자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대화를 유도하며 술 냄새를 감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연과 일교차가 큰 심야 근무로 만성 코감기에 시달리는 직원들로서는 쉬운 방법이 아니다.

음주 여부 조사를 위해 정차를 당한 운전자의 대부분은 왜 음주단속을 하느냐는 식의 항변을 했다. 마치 음주 단속을 안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는 투였다. 심지어는 단속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듯 욕설을 퍼부으며 사라지는 젊은 운전자도 있었다.
상상조차 못한 현장을 목격하고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담당 경찰은 이것이 바로 공권력이 땅에 떨어진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오히려 위로를 해 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단속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교통 ‘파파라치’가 사라진 후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보도를 접하는 순간 형식적인 음주 운전 단속일지라도 중단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음주 운전 단속을 선별화 하겠다는 보도 이후 대리 운전자의 생계가 막막해졌다는 하소연도 이를 뒷받침한다.
음주 운전 단속은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어 불행한 사고를 사전에 예방토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단속을 당할 때마다 수고한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우리가 제아무리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하더라도 중앙선을 넘어 마주 달려오는 음주 운전자 때문에 자신이나 가족이 불행을 당하는 사고를 당한다면 이를 용납할 시민은 아무도 없다. 음주 후 핸들을 잡는 일은 절대 안 된다고 사래질을 한다.

하지만 내가 술 한 두 잔쯤 마시고 운전하는 일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합리화시키곤 한다. ‘님비’ 사상은 여기에서도 싹트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그것은 결코 타인의 행복을 짓밟고 그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백 명 중 단 한 명의 음주 운전자로 인한 불의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불편을 느끼더라도 99명이 음주 운전 단속에 기꺼이 협조해야 한다. 그 불의의 교통사고 피해자가 나와 내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스’ 공포 때문에 음주 측정을 형식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음주 측정기로 인한 사스 전염 위험은 위생적인 예방 대책을 강구하면 된다.
자신과 가족과 상대방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 땅 위에 음주 운전은 발본색원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음주 운전 단속을 종전처럼 일괄적인 측정 방법으로 환원시켜야 할 것이다.

*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evre Acute Respiratory Synd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