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통과 권위주의
2004-10-17 의약뉴스
필자가 남동구약사회장에 취임한 후 상대방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만나자 한 임원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회장의 체통을 생각해 고위층을 상대해야지 하위직 담당자까지 만나서야 되겠느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회장 대신 하위직 공무원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선 자존심을 버리고 연령은 물론 직위의 고하를 불문하고 만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못들은 척했다.
약사가 된 직후부터 글을 쓰고 카메라, 8미리 무비 카메라와 비디오 카메라로 약사회 행사를 취재한 후 대. 내외로 홍보해 왔기에 회장이 된 후에도 카메라를 들고 다녔더니 또 회장 체통을 들고 나왔다. 그렇다고 회장 대신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나와 대내외 행사 내용을 촬영한 후 기사를 써 언론에 보도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카메라 핀트를 맞춰준 후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 막상 필름을 인화해 보면 행사의 제목이 적힌 플래카드는 안보이고 엉뚱한 땅바닥이 나오거나 인물이 잘리곤 했다.
몇 년 전, 약사회장 신분으로 파출소 방범위원회 총무직을 두말 않고 수락하자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한 방범위원장도 일반 위원들도 감동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약사회장직은 약사들의 모임에서 회장일 뿐이란 생각에서 개의치 않았다. 대신 불의를 보면 직위를 가리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주민과 동네를 위해 일하겠다는 데 약사회장이란 감투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른 동에선 마을 하수도 구멍까지 손수 뚫어 주었다는 某 전직 구의원의 선행을 들은 적도 있는데---.
그런가 하면 선배 혹은 고령자의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며 아랫사람을 나무라는 이들도 있다. 어른 대접을 받으려 하기 전에 후배들에게 얼마나 베풀며 살아왔는지 궁금할 뿐이다.
만일 그가 몸과 마음을 바쳐 봉사해 왔다면 스스로 대접을 받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후배들 역시 거들떠보지 않는 무례함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원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다며 친구의 멱살을 잡은 某 구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선 자치단체가 되기 전 만해도 분회장이 구청장을 면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무원들의 권위 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체통과 권위 의식은 스스로 높인다고 해서 높여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높고자 하는 이는 낮아질 것이라는 성경 구절이 아니더라도 주민 위에 군림하기 보다 먼저 서민들의 심부름꾼인 공직자와 지방자치단체의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