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고립ㆍ위기 돌파 가능한가
의료정책포럼 개최...현실 타개 방안 제시
현재 의료계가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의협의 역할 변화와 그간 경직된 정책기조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소장 최재욱)은 8일 의협회관 3층 회의실에서 ‘의료계 고립과 위기 돌파하기 : 진단과 대응’이란 주제로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참석한 패널들은 의료계가 처해있는 어려운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패널들은 어려운 의료계의 현실 타개를 위해선 의협이 보다 다양한 역할을, 정책기조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먼저 충청남도의사회 신현길 부회장은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가 정책만 주장할 게 아니라 대국민 봉사 등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 부회장은 “재미있고 경제적으로 이익있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의사단체로의 변화가 요구된다”며 “정책에 대해서 회원들에게 홍보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 파트가 없기 때문에 회원들이 회비를 안내고 의사회 가입을 꺼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연수교육도 단순히 평점취득에 그치지 말고 사회적 필요성이 있는 질환이나 사고에 대해서 의사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제고하는 방향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며 “사회기부금을 의사회를 통해 통합, 지정기부해 의사들의 사회참여를 국민들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법제이사는 의협이 현 상황에서 의료정책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현재 의료정책은 정부가 형식적인 대화만 거친 채 여론만 괜찮으면 정책을 추진하도록 되어 있고 정치구조와 법질서가 이를 허용하고 있다”며 “넓게보면 의료를 둘러싼 공론장에서 의사들 자체의 공론장은 국민의 공론장과 분리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정책의 담론은 청와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국회, 언론, 국민 여론 등이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과연 의사, 의협에게 맡기면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답을 낼 수 있어야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면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은 있는가? ▲의료전문가로서의 일치된, 권위있는 의학적 의견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미시적 의료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한국사회의 미래와 통합해 내는 거대 담론은 마련돼 있는가 등을 염두에 둬야한다고 전했다.
서울시의사회 최주현 정책이사는 의협의 붕괴 가능성을 진단했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의사 중앙회, 대한의사협회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며 “협회의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회비를 내는 진성 회원 수도 감소되고 지역의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회장 선거에서 참여자 수가 대폭 감소했으며 병협과의 문제, 과연 의협이 개원의의 단체인지 등으로 인해 공급자 대표 단체로서의 위상도 약화돼 있다”며 “의협이 회원들의 실망을 안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시장과 정부 실패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한다”고 전했다.
최 이사는 “앞으로 의협은 정부와 시장, 국민과 회원 사이의 강력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원중 기획이사는 “국민들은 싸고 좋은 것을 달라고 하지만 사실 살펴보면 싸고 좋은 것은 없으며 국민들이 의사들의 희생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수가의 현실화가 있어야 하고 왜곡된 의료 현실을 정상화해야한다”며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료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봉사활동, 기부 등 의사들이 사회 환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김장한 대외담당 부회장은 “의협이 하나의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회와 정부와 소통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며 “의료계의 가장 큰 문제는 1차 의료기관의 몰락으로 제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내야한다”고 제안했다.
김 부회장은 “의료계 중에서도 개원의를 중심으로 부조리로 억압하고 있는 규제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법적투쟁이 중요하다”며 “사업을 할 때 세무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의료계는 세무보다 건보공단, 심평원이 훨씬 무섭다”고 지적했다.
또 “의협이 대회원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밑바닥부터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 중앙회로서의 모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 패널로 참석한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저수가를 해결해달라는 의협의 정책기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전문가의 권위를 찾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고 비영리성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의사가 안고 있는 선제적 정책 제안을 먼저 해 저수가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가가 오른다고 의료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수가를 올리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고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 1차 의료기관은 대형병원이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하는 말도 맞지만 환자가 행복해야 의사가 행복하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한다”며 “의료제도는 국민이 원하는 만큼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의료계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의료전문가로서 권위를 찾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도 저수가에 갇히지 말고 정책기조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인석 이사는 “의료계가 처해있는 상황을 헤쳐나가는 건 오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저수가만 가지고 너무 많은 걸 풀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의사들은 분노만 했지 방법을 몰랐고 짧은 순간에 모든 걸 이루려고 했다”며 “직접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장점을 살려 의료기관에 의료 정책을 홍보하는 방안이라든지 의사의 날을 제정해 국민들에게 무료 진료 상담을 하면서 그 해 전해야하는 의료계 이슈를 쉽게 전달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제안했다.
서 이사는 “저수가 해결, 그동안 금기시된 지불제도 방식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중요한 것은 수가가 아니라 배분으로 건보재정 규모가 정해져있다면 배분의 문제에 대해 의료계가 나서야하고 의협은 수가계약을 개원가에 넘겨주고 정책 등 더 높은 부분을 다루는 위치로 올라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토론회를 주최한 의료정책연구소 최재욱 소장은 “오늘 토론회의 답은 심플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서 말하는 고립은 국민들로부터 고립으로 국민과 함께 가야하고 그들을 우군으로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국민과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이제까지 의료계의 슬로건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핵심 가치로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며 “미국의사협회의 기본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로 수가나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의료계도 많은 고민을 해봐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