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

2014-03-16     의약뉴스

살 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기도 하지만 아들이 엄마를 보고 내 엄마가 아니라고 하거나 아버지처럼 키워준 삼촌을 조카가 삼촌이 아니라고 한다면 황당한 일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하겠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미친사람 취급을 받고 정신과 의사의 길고 긴 소견서를 받아 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돈 시겔 감독의 ‘신체강탈자의 침입’(원제: Invetion of the body snatchers)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자신의 신체를 커다란 씨종자에게 강탈당하는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학회에 참석했다가 간호사의 급한 전갈을 받고 병원에 온 의사 마일즈 (케빈 메카시)는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뭔가 사악한 것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5년 만에 영국에서 돌아온 애인 베키(다나 원터)는 삼촌처럼 보이는 사람일 뿐 삼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촌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사실을 마일즈에게 털어 놓는다.

자신을 대할 때 쓰는 단어나 제스처, 목소리까지 같지만 이야기 할 때 보내는 어떤 특별한 눈빛이 없고 더구나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않는 소년에게서는 학교보다 더한 공포스러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미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며칠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의학적으로 잘 설명되지 않으니 당연히 믿지 않는다.

마일즈는 친구인 정신과 의사에게 이들은 의뢰한다.

친구는 자신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런 기괴한 환자를 여럿 봤다고 말하고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집단 히스테리가 아닐까 추측하면서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건은 점차 윤곽을 드러낸다.

마일즈는 친구의 급한 전갈을 받고 찾아 가는데 당구대 위에는 시체처럼 보이는 인간이 누워 있다. 이목구비는 있는데 세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체는 아니다. 지문을 찍어도 나오지 않는다. 친구의 복제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일즈는 베키의 집에서 역시 베키로 변하는 복제인간을 보고 기겁을 하고 정신과 의사를 부르는데 그 사이 손에 피가 묻은 친구와 베키의 복제인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친구의 정원에서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커다란 씨앗이 발아하고 있다.

거품을 품고 액체를 내보내더니 어느 순간 마일즈로 변신하고 있다. 다급해진 그는 발이 네 개 달린 농기구로 복제인간을 찔러 죽이면서 집단 히스테리가 아닌 외계인의 침입이나 어떤 음습한 것의 전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는다.

 

그는 급하게 FBI를 찾지만 전화는 불통이다. 식물계나 동물계 아니면 원자 방사능의 결과 일지 모르고 그도 아니라면 불가사의 한 외계 생명체의 돌연변이라는데 생각이 모아지자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그는 마을을 떠나는 길만이 복제품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베키와 함께 고속도로를 찾지만 이미 복제인간이 된 정신과 의사나 친구 그리고 경찰의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

인간으로 남기 위한 두 사람의 사투는 산을 넘고 동굴에 숨는 등의 악전고투를 겪지만 잠깐 잠이 든 베키는 그 사이에 영혼을 뺏겨 사랑도 없고 사랑을 할 수도 없고 감정과 진실이 없이 오로지 생존본능만 있는 복제품이 된다.

인간으로 남은 유일한 마일즈는 복제인간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고속도로에 접어든다. 수많은 차들 사이를 누비며 마일즈는 '헬프 미'를 외치지만 모두 외면한다.

트럭 위에 간신히 올라탔는데 그곳에는 가득 찬 커다란 씨종자들이 실려 있다. 마을을 벗어나 사방으로 복제인간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당신이다” 라고 아무리 외쳐도 누구하나 차에 태워 주지 않는 현실. 공포는 극에 달하고 관객들은 속편에서 신체를 강탈하는 식물의 정체를 밝혀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마일즈를 그려볼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속수무책인 전편의 아쉬움을 달래 봤으면 하는 심정은 이 영화가 결코 B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영화가 나온 1950년대는 미국에서  메카시라는 인물에 의한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고 있었던 때다. 지목되는 순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히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숨막히는 공포심이 이 영화에 영감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국가: 미국
감독: 돈 시겔
출연: 케빈 메카시, 다나 원터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