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불량성빈혈과 골수이형성증후군 등 수혈 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혈액환자 3명 중 1명은 체내에 철(Fe)이 과잉 축적돼 장기에 손상을 주는 ‘철중독증’ 상태에 있다는 조사 논문이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등 전국 7개 의료기관은 각 병원을 방문한 재생불량성빈혈과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 1,128명을 대상으로 ‘만성 수혈로 인한 국내 철중독증 발병 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전체 조사대상 환자 중 29.3%(331명)가 철중독증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철중독증 환자 중 29.3%(97명)는 이미 1가지 이상의 장기 손상이 발생해, 혈액질환과 철중독증으로 인한 장기손상이라는‘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철중독증으로 인한 장기 손상에 대한 기초 자료가 거의 없는 형편이었으며 이번처럼 대단위 조사가 진행되기는 처음이다.
우리 신체에는 다량의 철을 제거하는 자체 기전이 없어 반복적인 수혈로 인해 체내에 들어온 철(수혈팩 1개 당 200~250㎎)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그대로 몸 속 장기 등에 축적돼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철 중독증’이 발병하게 된다. 진단기준은 수혈을 20단위(10회 수혈) 이상 받았거나, 혈청 페리틴이 1,000ng/mL 이상인 경우이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재생불량성빈혈환자 795명 중 25.2%(200명)가 철중독증으로 진단됐고, 이들 중 34%(68명)에서 1가지 이상의 장기 손상이 확인됐다. 가장 흔한 장기 이상은 만성간질환(60.3%)이었다. 이어 당뇨병/당내불성(45%), 심기능 이상(20.6%), 성선기능 이상(17.6%), 뇌하수체 이상(14.7%), 피부 색소침착(14.7%) 순으로 관찰됐다. (복수 비율)
장기손상이 확인된 68명의 수혈의존기간은 평균 5년이었다. 총 수혈량은 평균 104단위(12~350단위)였고, 철수치는 평균 4,084ng/mL(1,254~22,916ng/mL)로 철중독증 진단 기준치를 크게 넘어섰다.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들의 경우에는 333명 중 39.3%(131명)가 철중독으로 진단됐다. 이들 중 22.1%(29명)에서 1가지 이상의 장기 손상이 확인됐다.
가장 흔한 장기 이상은 당뇨병/당내불성(48.3%)이었다.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에게 가장 많았던 만성간질환은 41.4%로 두 번째를 차지했고, 피부 색소침착(27.7%), 심기능 이상(6.9%) 순으로 관찰됐다.
장기손상이 확인된 29명의 수혈의존기간은 2년이었다. 총 수혈량은 평균 69.5단위(12~200단위)였고, 철수치는 평균 5,344ng/mL(1,239~20,822ng/mL)로 역시 철중독증 진단기준을 크게 넘어섰다.
한편 두 환자군 중 철중독증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절반 정도가 철을 체외로 배출 시켜주는 ‘철킬레이션 요법’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이들 중 90%이상이 비정기적으로 사용해 예방 효과가 미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이종욱 교수는 “잦은 수혈을 받아야 하는 혈액질환자들의 경우 철중독증으로 인한 장기 손상 등의 합병증을 겪을 수 있으므로, 수시로 자신의 철수치(혈청 페리틴 수치)가 1,000ng/mL이 넘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 철중독증으로 인한 장기 손상을 막고, 골수이식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혈액질환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철을 체외로 배출 시켜주는 철킬레이션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에는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충남대병원,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의 7개 의료기관이 참여했다.
2007년 2월을 기점으로 6개월 이내에 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 혈청 페리틴(철수치) 검사를 실시한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와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수혈을 20단위(10회 수혈) 이상 투여 받았거나, 혈청 페리틴이 1,000ng/mL 이상인 환자를 파악했다. 철중독이 확인된 환자를 대상으로 철중독과 관련된 장기 손상 및 합병증 여부와 종류를 의무기록을 기초로 후향적 조사를 실시했다.
국내에는 현재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2,000여명), 재생불량성 빈혈을 포함한 희귀 빈혈환자(7,000명) 등 약 9,000여명의 만성혈액질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철 중독증이란
철(Fe)은 우리 몸의 중요한 성분 중 하나로 산소를 필요로 하는 각각의 조직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한다. 정상 성인 여성의 경우 체중 1kg 당 40mg, 남자는 50mg의 철이 필요하다. 철은 하루 평균 1-2mg(달걀 노른자 반 정도의 분량)이 우리 몸에 흡수된다. 흡수된 철은 철 운반 단백질인 ‘트랜스페린(transferring)’과 결합해 골수, 근육과 같은 기관에 전달된다. 역할을 다한 철은 신체 내 순환과정을 거쳐 하루에 1mg 정도씩 대변, 소변, 머리카락, 피부, 또는 월경 등으로 소모된다.
정상적인 생활에서는 음식물로 섭취된 철과 소실되는 철의 양이 균형을 유지함으로 문제가 없다. 문제는 재생불량성빈혈,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등 만성혈액질환 환자들처럼 치료를 위해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을 받아야 하는 경우다. 수혈팩 1개엔 200~250㎎의 철이 들어있는데, 우리 신체에는 이 같은 다량의 철을 제거하는 자체 기전이 없기 때문에 반복적인 수혈로 인해 체내에 들어온 철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그대로 몸 속 장기 등에 축적돼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철 중독증’이 발병하게 된다.
☞철 킬레이트 치료법이란?
철 킬레이트 치료법은 체내의 과잉 축적된 철과 철 킬레이터가 결합하여 비독성 형태로 소변과 대변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여 철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이다.(아래 개념도 참조) 기존의 치료법(데페록사민)은 1주일에 5~7일 동안, 하루에 8~12시간 씩 피하, 또는 정맥주사를 통해 투여해야 하는 등 어린 환자뿐 아니라 성인환자에게도 큰 고통이어서 치료를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철이 대부분 신장(콩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돼 신장 손상 등의 부작용이 따랐다. 최근에는 1일 1회 물이나 오렌지 주스에 섞어서 마시면 되고, 주로 대변(85%)으로 배출돼 신장 등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최소화한 ‘엑스자이드’와 같은 치료제가 개발돼 철중독증 예방과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