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로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의ㆍ정 갈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바른의료연구소 윤용선 소장은 현재의 의료 사태가 의료의 본질 부정하는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을 내놨다.
현 의료상황은 의료계를 정치 논리로 바라보는 정치권과, 정책 파트너로 바라보지 않는 정부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의료상황에 대한 평가와 근본적 원인은?
윤용선 소장은 현 의료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정부가 의료계를 보는 시각에서 찾았다.
의료정책을 만드는 파트너가 아닌 만들어진 정책을 집행하는 대상으로 인식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고 있다는 것.
윤 소장은 “이러한 시각의 근간에는 의료계를 정치적 논리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 깔려있다”며 “소위 말하는 보수는 의료계를 산업의 카테고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진보는 의료를 복지 개념 중 하나로 여길 뿐, 의료 자체의 고유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료선진국 반열에 들었다고 자평하는 우리나라지만, 의료정책과 제도 설계, 시행에 있어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거나, 반영하더라도 미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
이러한 배경에 대해 윤 소장은 “정치권에서 의료계를 보는 시각이 왜곡됐는데, 근본 원인은 표에 있다”면서 “의사를 공격하고 의사를 개혁대상으로 삼는 것이 표가 된다고 생각하는 표퓰리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고, 필수의료 정책패키지가 시행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표 때문”이라고 힐난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의 구성을 두고 민주적이라고 한다”며 “그러나 의료개혁, 건강보험 심사, 의료인력 수급 심사 및 논의를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가 구성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구성 요소를 보면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윤 소장은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ㆍ정갈등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갖고 나온 정책인 만큼 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가 개입돼 있는 만큼, 정치권과 유연성을 가지고 계속 대화를 하면서 의료계의 원칙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다는 명제는 지키며 내부적으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무엇보다 “현 사안의 핵심적인 당사자는 의대생과 전공의”라면서 “당사자인 의대생과 전공의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보고 내부적인 합의점이 있는지 도출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도 꼭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정책연구원과 바른의료연구소의 한계
현재 의료계에는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근거를 생산해 내는 기관으로 대한의사현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원과 바른의료연구소가 있다.
그러나 의료정책연구원이나 바른의료연구소와 같은 의료계 내 정책연구 플랫폼이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가운데 의료정책연구원에 대해서는 대한의사협회 산하기관이라는 한계로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료정책연구원의 연구자료를 보면 굉장히 좋은 것이 많다”며 “의대 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의 현안에 대해서도 근거 중심의 정책적인 연구를 발표했지만, 문제는 실제 정책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좋은 플랫폼이 있고 좋은 콘텐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의사 편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며 “의사입장에서 결과물을 도출했다거나, 의사 편에서 내는 목소리일 것이란 잘못된 인식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의료정책연구원을 대한의사협회부터 독립시키자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의사들의 목소리처럼 보이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사회와 정부가 의료정책연구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것이 이유로, 아직까지 (독립이) 안 되다보니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바른의료연구소는 임의단체이다보니 수용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윤 소장은 “바른의료연구소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라며 "당시 연구소에서 많은 자료를 배포했고, 의료진을 변호했던 변호사에게도 여러 자료들을 제공해 무죄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뿐만 아니라 “한방난임사업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를 배포했고, 최근에는 의료인력추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해야하는지에 대한 전제조건들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임의단체다보니 의료계 내ㆍ외부에서 수용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며 “보다 심도 있는 콘텐츠가 나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바른의료연구소 구성원 모두 본업이 있다보니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의료계는 내부적으로 창의적인 사안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이다 보니, 연구소 내부적으로 조금 더 잘 해보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면서 "좀 더 순발력 있게, 보다 새로운 정책으로, 보다 사회적 수용성이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일 건강보험체제, 다보험체제로 개편해야

그동안 의료계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단일 공보험체제에서 벗어나 다보험체제로 개편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윤용선 소장은 “단일 공보험 체계는 이미 권력화됐는데,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공룡 권력이 된 지 오래됐다”며 “이제는 피보험자인 국민이 보험자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례로 “미국을 보면 메디케어 및 메디게이트를 비롯해 여러 보험 체계가 있는데, 이처럼 피보험자는 보험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며 “지금 우리나라는 그 권리가 차단돼 있다 보니 단일 공보험이 거대해지고 권력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좋은 의료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고 하지만, 정말로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좋다면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나라가 없다”며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근간에 의료공급자가 고통을 감내하게끔 하는 잘못된 정책이 숨어 있아 사회적으로 수용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단일 공보험 제도의 큰 문제는 피보험자들로 하여금 싼 값에 작은 보장성을 마음대로 이용하게끔 하고, 공급자를 계속 억제하고 제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단일 공보험 제도의 잘못된 권력화를 바로 잡고, 피보험자들에게 보험자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이를 통해 국민들의 건강권을 더 잘 보장하기 위해선 다보험자 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