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의대교수가 전문간호사도 숙련도만 있다면 의사의 입회나 지도 없이 골수검사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 의료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협 중앙윤리위원회가 이 교수를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대법원은 간호사가 골막 천자를 시행해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당한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A병원이 성인과 소아 환자를 가리지 않고 전문간호사에게 골막 천자를 직접 시행하게 했다는 제보를 받은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이 병원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골막 천자는 혈액ㆍ종양성 질환 진단을 위해 골막에서 골수를 채취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이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간호사의 골막 천자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맞다고 판단, 원심을 뒤집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변호인 측으로 출석한 서울의대 윤성수 교수는 “골수검사를 시행하는데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운 부작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골수검사는 의사가 해야 한다거나, 간호사가 해야 한다기보다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면서 "이 의료행위가 복잡하지 않아 의사의 관리 감독도 필요없다”고 밝혔다.
윤 교수의 발언이 알려지자 의료계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교수를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참석한 신천연합병원 조병욱 진료과장(경기도 중앙대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간호사의 진료 보조에는 의사의 지도ㆍ감독이 있어야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며 “운전면허를 예로 들면, 무면허인 사람이 운전해도 괜찮은 건 운전면허시험을 볼 때 감독관이 동승했을 경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이 무사고라고 해서 무면허 운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의료법을 만들 때 지도ㆍ감독하라고 넣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의 발언은 모든 의료행위를 숙련도만 있으면 다 해도 된다는 주장을 합리화시킨 것”이라며 “그러러면 무면허인 사람이 10년 무사고로 운전하면 운전면허를 주고 보험료도 깎아주라”고 힐난했다.
충북의대 배장환 전 교수도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면허와 그에 합당한 업무를 부여하는 것은 그 업무의 숙달도나 완결성과는 다른 문제”라며 “반복한다면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라도 하겠지만, 1년차 의사라도 의사라는 면허가 붙었으므로 그 면허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름만 대면 아는 대형병원 흉부혈관외과에서 수술 일정이 나오면 수술 보조로 전공의와 수술전담간호사를 배정하는데, 수술전담간호사가 아니고 전공의가 배정됐다고 대놓고 바꿔달라고 하는 교수들이 있다고 들었다”며 “그러면서 후학이 없다고 토로하시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다만 “환자가 많아 임상 업무에 치이고 있다는 것과 가능하면 빠르게 무리 없이 수술, 시술을 해내고 싶은 마음은 안다”면서도 “하지만 교수라는 타이틀이 달렸다면 그 일부라도 전공의에게 시간을 내고, 가르치고, 권한위임행동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미래의료포럼은 10일 성명을 통해 “의료행위의 가능 여부를 면허가 아닌 숙련도라는 기술적 평가를 통해 누구든지 가능하다고 말하고, 간호사가 마취도 할 수 있다고 말한 해당 교수의 발언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숙련도라는 개념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 발언은 골막 천자를 떠나 대리수술, 대리처방 등과 같은 무면허 의료행위뿐만 아니라 비의료인의 유사의료행위까지 모두 숙련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위험하고도 무지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가 골막 천자 과정에서 이뤄지는 국소 마취를 직접 시행해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봉합 수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소 마취 하에서 이뤄지는 수술 과정에서 간호사가 마취 행위부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며 “국소 마취의 간호사 허용은 거의 모든 마취 영역으로의 간호사 역할 확대로 이어져 마취 행위의 전문성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골막 천자 국소 마취에 사용되는 리도카인 마취제의 용량이 극소량이 아님에도 대법원에서 극소량이라 문제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극소량이라고 하더라도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위험하다는 사실도 무시한 것은 마땅한 제제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의료인 면허체계를 부정하고,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스스로 내던지면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며 전체 의사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의협 중앙윤리위원회 규정에 근거해 전체 의사의 명예를 더럽힌 이 교수를 신속히 징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윤 교수의 발언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채동영 홍보이사겸대변인은 “윤 교수의 발언을 보면 면허 자체가 필요 없고, 숙련도만 있으면 지나가는 아무나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의사의 면허는 의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10번 시술해서 9번 성공하면 숙련되고 잘했으니까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라며 "그러나 1번의 실패에 대해 안전을 보장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있는 것이 면허 시스템”이라고 역설했다.
다만 채 이사는 윤리위원회 제소 여부에 대해서는 협회 내부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