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중앙값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
아스트라제네카의 면역항암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가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고 예후도 불량한 전이성 담도암에서 전례없던 장기생존 데이터를 제시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고 있다.
전신 치료 경험이 없고 절제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재발, 전이성 담도암 환자 68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TOPAZ-1 임상 3상의 3년차 분석에서 기존의 표준요법 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전체생존율(Overall Survival, OS)을 보고한 것.
뿐만 아니라 이 연구에 참여한 한국인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전신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임핀지 치료 3년차에 20%를 상회하는 환자들이 생존, 기존 표준요법 대비 세 배 가까이 높은 생존율을 달성했다.
특히 이 연구에서 확인된 전체생존율의 이득은 전통적인 평가지표인 중앙값(median) 이후에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치료 6개월 시점부터 차이를 나타내기 시작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존율의 격차를 더욱 확대하며 면역항암제의 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한편으로는 중앙값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기존의 접근 방식으로는 담도암 치료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에 의약뉴스는 TOPAZ-1 임상의 글로벌 총괄 책임 연구자인 서울대학교병원 종양내과 오도연 교수와 공동 저자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명아 교수를 만나 담도암 치료의 현실과 TOPAZ-1 연구의 가치, 그리고 과제를 조명했다.
◇치료 옵션 제한적인 담도암, 예후 불량하고 기대 여명도 짧아
표적치료제가 등장해 백혈병을 더 이상 비극의 소재로 활용하기 어려워진 2007년, 드라마 하얀거탑은 최고의 외과 명의를 무너뜨릴 무기로 담도암을 선택했다.
담도암은 간에서 만드는 담즙이 배출되는 통로인 ‘담관’과 담즙을 저장하는 ‘담낭’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조기 발견이 어렵고 재발이 많아 예후가 좋지 않다.
10대 암 중에서는 췌장암에 이어 두 번째로 생존율이 낮은 암으로, 치료제가 마땅치 않아 최고의 명의마저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오도연 교수는 “담도암은 주요 암종 중 췌장암 다음으로 발생률이 낮아 다른 암종에 비해 효과적인 약제의 개발이 더디게 이뤄져 왔다”면서 “유방암이나 폐암과 같은 암종은 이미 좋은 치료 옵션들이 즐비하게 있지만, 담도암은 고작 2-3가지 정도의 치료 옵션 외에는 사용할 수 있는 약제가 없어, 이로 인해 환자의 예후가 불량하고 여명이 매우 짧았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할 치료 옵션이 없던 가운데 그나마 자그마한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이 2010년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된 ABC-02 3상 임상이다.
담도암에서 케이스리포트 수준으로 보고되던 GemCis(젬시타빈+시스플라틴) 요법이 무작위 3상 임상을 통해 처음으로 그 가치를 입증한 것.
총 410명의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담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 연구에서 GemCis 요법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11.7개월로 젬시타빈 단독요법군의 8.1개월보다 2.6개월을 연장했고, 사망의 위험은 36%(HR=0.64, 95% CI 0.52-0.80, P<0.001)을 줄였다.
비록 영국 단일 국가에서 진행한 연구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담도암의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었던 상황에서 3상 임상을 통해 전체생존율을 개선한 만큼,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GemCis 요법이 담도암의 새로운 표준 요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도연 교수는 “담도암은 워낙 치료 옵션이 없어 201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젬시타빈 단독, 혹은 5-FU 기반 치료를 하거나, GemCis 병용요법 혹은 5-FU+시스플라틴 병용요법 등 화학항암제 위주로 치료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GemCis도 논란이 있던 옵션이었다”면서 “과거 서울대병원에서 5-FU 기반 병용요법과 젬시타빈 기반 병용요법 간 효과를 비교한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두 치료 효과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2010년 영국에서 발표된 ABC-02 임상 3상 연구를 통해 GemCis가 젬시타빈 단독 요법 대비 유의미한 전체생존기간을 입증했고, 일본에서 유사하게 진행한 연구 또한 GemCis의 전체생존과 무진행생존기간(Progression-Free Survival, PFS)에서 일관적인 데이터를 확인해 GemCis가 전 세계 담도암 표준 치료로 자리잡게 됐다”고 소개했다.
덧붙여 이명아 교수는 “이전에는 담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수행된 임상 3상 연구가 없었다”면서 “췌장암의 특성과 유사하다는 인식이 있어 췌장암에서 효과가 확인된 약제를 사용하거나, 소규모로 진행된 연구만 존재했기 때문에 2010년 이전까지는 GemCis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존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TOPAZ-1, 표적치료제 없는 담도암에서 면역항암요법 가치 입증
ABC-02 연구 결과가 발표된 2010년 이후 GemCis 병용요법이 담도암의 표준요법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담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큰 변화 없이 여전히 20% 중ㆍ후반에 머물러있으며, 특히 원격전이 단계에서 5년 상대생존율은 3.2%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ABC-02 임상 3상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10년 이상 진전이 없던 담도암에서 우리나라의 연구진들이 두 번째 변곡점을 마련했다.
수많은 도전 끝에 오도연 교수가 진행한 연구자 주도 임상 2상에서 GemCis 병용요법에 임핀지를 추가, 전체생존기간을 18개월까지 연장한 것.(중앙값 기준)
이 연구는 글로벌 3상 임상인 TOPAZ-1으로 발전했고, 결국 ABC-02 연구 결과가 발표된 후 12년 만에 GemCis 병용요법을 뛰어넘는 성과를 도출했다.
지난 2022년 1월, 오도연 교수가 미국임상종양학회 소화기암 심포지엄(ASCO GI 2022)에서 공개한 TOPAZ-1 3상의 첫 번째 분석에서 임핀지 병용요법군(이하 임핀지군)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13.7개월로 GemCis+위약군(이하 위약군)의 12.6개월을 상회했으며, 임핀지군의 사망 위험이 20% 더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HR=0.80, 95% CI 0.66-0.97, P=0.021).
18개월 추정 전체생존율은 임핀지군이 35.1%, 위약군은 25.6%였으며, 24개월 추정 전체생존율은 24.9%와 10.4%로 더욱 확대됐다.
무진행 생존기간(Progression-Free Survival, PFS) 중앙값은 임핀지군이 7.2개월, 위약군이 5.7개월로 역시 임핀지군의 질병 진행 또는 사망의 위험이 25% 더 낮았다.(HR=0.75, P=0.001)
오도연 교수는 “한국은 담도암을 연구하고 신약을 개발하기 좋은 환경”이라면서 “국내 담도암 발생 빈도는 미국, 유럽 등 서양 국가에 비해 높아 치료 케이스가 쌓이면서 국내 의료진들이 환자 관리에 익숙한 편이며, 또한 국내 유수의 연구자들이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를 다수 수행하면서 연구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다”고 TOPAZ-1 연구 성공의 배경의 설명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대로 담도암은 임상 3상 연구 자체가 드문 영역이었다”면서 “2010년 이래로 GemCis 요법 대비 전체생존기간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가 시도되어 왔지만, 그간 의미 있는 개선을 확인한 연구가 없었던 와중에 TOPAZ-1 연구는 글로벌 임상 3상을 통해 GemCis 대비 전체생존기간 연장 혜택을 확인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암종은 이미 1차 치료에서 면역항암제나 표적항암제가 활발히 사용됐던 가운데, TOPAZ-1 연구 결과로 담도암에서도 마침내 임상적 근거를 가지고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게 돼 환자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약 개발의 측면에서도 TOPAZ-1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제약사들이 치료 효과가 확실해 데이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암종에 집중하던 가운데 소외됐던 담도암에서 면역항암제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
오 교수는 “실제로 흑색종이나 폐암 등 여러 질환에서 면역항암제가 도입되던 초반에는 담도암에 면역항암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TOPAZ-1 연구의 성공으로 담도암에서도 면역항암치료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으며, 담도암 치료제 연구 개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명아 교수는 “그간 담도암에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표적항암제 등 여러 치료 옵션들로 도전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면서 “국내에서도 GemCis와 표적항암제 병용요법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국내에서만 진행된 3상 연구였으며 결과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결국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여러 차례 연구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담도암에서 새로운 치료 옵션이 도입되기 힘들고 전통적인 세포독성항암제만 가지고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면서 “당시 2차 치료에서 사전 심사를 통해 면역항암제가 사용되고 있기는 했으나 큰 효과를 본 환자가 많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TOPAZ-1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로 면역항암치료의 가능성이 열렸다”면서 “생존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연구자 입장에서나, 환자 입장에서나 의미가 크다”고 역설했다.
◇임핀지+GemCis 병용요법, 담도암 3년차 전체생존율 2배 ↑
TOPAZ-1 연구의 1차 분석에서 임핀지군의 사망 위험이 20% 더 낮았음에도 부구하고, 일각에서는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연구 성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임핀지군의 24개월 추정 전체생존율이 24.9%로 위약군의 10.4%를 크게 상회했지만,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13.7개월과 12.6개월로 두 그룹간 차이가 1개월 여에 불과했다는 것.
그러나 담도암 전문가들은 면역항암제인 임핀지의 특성과 실제 전체생존율 그래프의 양상을 고려하면, 중앙값 이후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응률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반응이 나타나는 환자 중 일부에서 반응이 오래 지속되는 면역항암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장기 생존 환자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전체생존율 그래프도 6개월 이후부터 갈라지기 시작해 점차 간극이 벌어지는 양상을 보여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담관암재단 연례회의(2024 Cholangiocarcinoma Foundation Conference)에서 발표된 3년차 전체생존율 분석 결과는 담도암 전문가들의 예상을 그대로 실현했다.
중앙 추적관찰 41.3개월 시점에 분석한 임핀지군의 3년 시점 전체생존율이 14.6%로 위약군의 6.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던 것.
첫 번째 분석에서 0.80(95% CI 0.66-0.97)이었던 상대위험비(Hazard Ratio, HR)는 2년차 분석에서 0.76(95% CI 0.64-0.91), 3년차 분석에서는 0.74(95% CI 0.63-0.87)로 더욱 벌어졌다.
이와 관련, 오도연 교수는 “표적항암제는 초기부터 효과 차이를 보이지만 시간이 경과될수록 위약군과 유사한 생존율 곡선을 보인다”면서 “반면 면역항암제는 효과가 다소 지연되어 나타나지만, 생존율 곡선이 꼬리가 들어 올려진 듯한 형태로 나타나는 롱테일 효과(long-tail effect)를 기대할 수 있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어 “TOPAZ-1 최초 분석에서는 이러한 경향성을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3년(41개월) 추적 연구 결과 생존율 곡선의 꼬리가 들어 올려지는 롱테일 효과, 즉 장기 생존 혜택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면서 “다른 표적항암제나 세포독성항암제를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이러한 차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생존 연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구체적으로 “최초 분석에서는 전체생존율의 HR이 0.80으로 나타났고, 약 6.5개월간 추가 추적한 데이터에서는 0.76, 이번 3년 추적 데이터에서는 0.74까지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면서 “오랜 기간 치료할수록 HR이 더욱 개선되는 면역항암제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교수는 “면역항암제와 같이 생존율 곡선의 차이가 지연되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약제에서는 중앙생존기간(mOS)보다 사망 위험을 얼마나 감소시켰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위험비(HR)가 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다”면서 “모든 면역항암제에서 이러한 롱테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TOPAZ-1 연구는 롱테일 효과를 명확하게 확인한 임상이라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담도암에서 3년 전체생존율 데이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 담도암 환자에게 그 기간의 생존을 기대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며 “TOPAZ-1 연구의 최초 분석을 통해 담도암 임상 3상 연구 최초로 위약군 대비 2배 이상의 2년 생존율을 발표했었는데, 이제는 3년 전체생존율을 논하면서 3년 이상의 생존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연구라 평가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인 하위분석, 불리한 조건에서도 더 큰 이득
여기에 더해 TOPAZ-1 연구는 임핀지 병용요법이 한국인 환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돼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된 대한종양내과학회 국제학술대회 KSMO 2024에서 오도연 교수가 발표한 한국인 대상 하위분석 결과에 따르면, 3년차 전체생존율 분석에서 한국인 중 임핀지군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16.6개월로 전체 환자군 중 임핀지군의 12.9개월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 위약군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전체 환자와 한국인 환자 모두 11.3개월로 차이가 없었다.
전체생존율의 상대위험비도 한국인 환자에서는 0.58(95% CI 0.39-0.87)로 전체 환자에서 보고된 0.74(95% CI 0.63-0.87)보다 더 큰 차이를 보였다.
심지어 한국인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전신수행능력 평가점수(Eastern Cooperative Oncology Group performance status, ECOG PS, ECOG PS)이 더 좋지 않았고, 항암화학요법의 효과가 떨어지는 담낭암 환자들의 비중이 더 컸으며, 위약군에서 면역항암제를 포함해 후속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위약군의 전체생존기간에는 차이가 없었던 반면, 임핀지군의 이득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오도연 교수는 먼저 “이전에 한국인을 대상으로 제가 진행했던 연구자주도 임상 2상 연구에서 임핀지 병용요법 환자군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이 18개월로 확인된 바 있다”면서 “TOPAZ-1 연구에서 전체 환자에서 임핀지 병용요법 환자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이 12.9개월로 나온 것에 비해, 한국인 환자에서는 16.6개월로 나왔는데, 임상 2상 연구에서 확인됐던 결과가 재현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는 국내 의료진의 치료 역량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안전성 부분에서 국내 환자의 이상반응(Adverse Event, EV)이 훨씬 적게 나타났는데, 이는 국내 의료진이 담도암 치료 경험이 풍부한 만큼 부작용 관리가 잘 이루어진 것이라 추측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연구에 참여한 한국인 환자의 경우, ECOG 수행도 점수가 1점인 환자가 훨씬 더 많아서 더 불리한 측면이 있었는데 오히려 전체 환자군의 결과를 상회하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담도암 중에서도 간내담도암이나 간외담도암 환자보다 담낭암 환자가 면역항암제에 대한 혜택을 더 적게 받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한국인 환자는 담낭암 환자의 비율이 높았음에도 더 개선된 혜택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위약군에 배정된 한국인 환자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후속 치료에서 면역항암제를 투약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생존기간에는 차이가 없었던 부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오도연 교수는 “한국인 하위 분석 데이터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후속 항암치료에서 위약군의 20%가 1차 치료 이후에 면역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생존 혜택이 전체 환자군의 결과와 유사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 환자를 선별하지않고 단순히 2차 치료에서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는 것은 예후를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1차 치료에서 최대한 빨리 면역항암제를 사용해야 생존율을 확실히 개선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역설했다.
◇임핀지 병용요법, 8주기 후 단독요법 전환해 편의성 개선
임핀지와 GemCis 병용요법이 이상반응에 따른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생존율을 개선한 것 역시 실제 임상현장에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명아 교수는 “담도암은 고령 환자가 많은 편으로, ECOG에서 0인 환자가 거의 없을 정도”라며 “GemCis가 그나마 다른 화학항암요법에 비해 부작용 관리가 용이한 옵션에 속하지만, 대부분 고령 환자이다 보니 임핀지를 추가 병용하는 부분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들의 부담이 컸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진료 현장에서 임핀지를 사용했을 때 임상 결과와 동일하게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가 거의 없었다”면서 “진행성 암 환자들은 항암 치료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부작용을 경험했을 때 치료를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케이스가 없었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 입장에서 부작용이 덜한 것은 매우 큰 혜택”이라고 강조했다.
TOPAZ-1 이후 담도암에서 면역항암요법이 늘고 있는 가운데, 임핀지는 초기 8주기 이후 단독요법으로 치료를 유지할 수 있어 이 역시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오도연 교수는 “임핀지는 치료 초반에 병용요법을 위해 3주마다 병원을 2번씩 방문하다가 단독요법으로 바뀌면 4주에 한 번으로 투약 간격이 늘어난다”면서 “병원 방문은 생각보다 환자들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이 부분에 대한 환자나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크다”고 전했다.
비록 임핀지 단독요법으로 전환 후 재발의 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8주기 이후 항암화학요법의 이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오도연 교수는 “병용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는 환자들도 종종 있지만, 치료 초반에 화학항암제를 병용하는 것은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병용을 지속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유지되는지에 대한 부분은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TOPAZ-1에서 GemCis 병용을 8주기(Cycle)로 진행한 것은 임상 설계 당시 글로벌 표준 치료였던 GemCis의 임상인 ABC-02를 참고했다”며 “이 임상에서 GemCis를 8주기로 진행해 TOPAZ-1 임상에서도 그대로 적용했고, 실제로 임상을 통해 GemCis 대비 우수한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명아 교수는 “보통 병용치료에 따른 효과는 초반에만 나타나며, 병용치료를 지속해도 종양 크기가 크게 감소하는 등의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다른 암종에서도 화학항암제 병용 치료를 일정 간격을 갖고 진행한다”고 부연했다.
◇기존 치료와 비교하는 급여 평가 기준, 담도암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
현재 전이성 담도암 1차 치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옵션은 GemCis, GemCis와 임핀지 병용요법, GemCis와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병용요법 등 3가지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옵션은 GemCis가 유일하며, 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장기생존율을 보고한 임핀지 병용요법에는 여전히 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최근에는 담도암에서 임핀지와 GemCis 병용요법에 급여 적용을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리나라의 급여 평가 기준이 통상 중앙값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장기 생존에서 장점이 있는 임핀지 병용요법의 혜택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아 교수는 “현 급여 제도는 일정 비용을 투자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면서 “그러나 담도암을 다른 고형암종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면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평가될 우려가 있으며, 면역항암제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질병을 조절하면서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약제는 급여 적용을 받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기에 극적인 효과를 보이고 그 효과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치료가 가능한 암종이 있는 반면, 암으로 인한 합병증을 막으면서 환자가 편안하게 장기 생존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암종도 있다”며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을 가지고 단순히 통계학적인 생존 차이만으로 급여 심사를 진행한다면, 희귀한 암종이나 종양이 잘 감소하지 않는 암종은 절대 급여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약제의 성질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확인 가능한 효과만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났으나 또다시 악화될 우려가 있는 특성은 반영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임상 3상 결과에서 확인되는 결과만을 두고 평가를 진행하다보니 이러한 부분이 간과되고 있어, 담도암과 같이 활발히 약제가 개발되지 않았던 암종이나 오랜 시간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는 약제의 영향은 평가 절하될 수 있다”며 “반면 단기간에 큰 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흔하게 발생하는 다른 암종은 고가의 약제도 급여 적용이 비교적 쉽게 이뤄지고 있어, 크게 봤을 때 같은 고형암 환자라고 하더라도 급여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모든 암 환자들이 최대한 공평한 치료 기회를 받기 위해서는 암과 약제의 특성을 고려해 질환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급여 심사에서는 암종별 특성과 약제의 특성,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효과 등을 모두 고려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급여 기준을 단순히 기존의 치료제와 비교하는 접근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기존 치료 옵션과 비교하는 접근 방식은 이제 바꿨으면 한다는 점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이유로 “다른 암종에서 적용했던 평가 방식을 담도암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한국인 환자 대상 3년 데이터가 나온 이상 오랜 기간 제한적이었던 담도암 치료 환경 특성과 임핀지 자체의 치료 혜택으로만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면역항암제를 2차 치료에 고려하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면역항암제를 2차 치료 이후에 쓰면 1차 치료만큼의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최적의 효과를 기대한다면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는 단계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환자들 예후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급여를 통해 환자가 최대한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보건당국의 역할이라면, 이번 데이터는 급여 적용을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오도연 교수는 “그동안 전체생존율에서 상대위험비가 0.8까지 나온 항암제 중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약제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실례로 “위암에서 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약제들은 대부분 전체생존율 상대위험비가 0.8”이라며 “임핀지는 TOPAZ-1에서 0.74의 전체생존율 상대위험비를 입증했고 급여 승인에 있어 비교적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유럽에서도 최근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는 지표(ESMO-MCBS)를 발표하면서 임핀지에 신속한 보험 급여 적용을 고려할 수 있는 4등급을 부여했다”고 역설했다.
이어 “현재 담도암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좋은 약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도 급여 문제로 치료를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료 현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임핀지가 한국의 담도암 환자에서 전례없는 3년 전체생존율 데이터까지 확보한 만큼, 이제 급여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임핀지가 전세계적으로 담도암의 표준요법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만큼, ICER(Incremental Cost-Effective Ratio, 점증적 비용-효과비) 탄력 적용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이명아 교수는 “이제 급여 심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임핀지의 효과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담도암은 임핀지가 등장하기 전에는 2년, 3년 생존은 이야기도 못했던 영역으로, 한국인 3년 전체생존율 데이터가 발표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 이상 치료 효과에 대한 논쟁은 끝내야 한다고 본다”며 “이번 도전에서는 어떻게든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특히 “표준치료가 무엇인지를 보았으면 한다”며 “우리나라보다 환자 수가 적은 유럽에서도 임핀지의 신속한 급여 필요성을 인정한 상황으로, 급여 논의 시 임상 데이터나 경제성 평가도 중요하지만, 치료 가이드라인이나 외국의 사례들도 종합적으로 참고해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담도암 표준 치료를 국내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빠르게 검토를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담도암 치료 옵션 더 늘리고 진료 현장에 빠르게 도입해야
TOPAZ-1 임상을 통해 전이성 담도암에서 장기 생존의 기회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면역항암제를 통해 장기 생존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자를 규명하는 것 못지 않게 치료 효과를 전혀 얻을 수 없는 환자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며, 치료 옵션도 더욱 늘어야 한다는 것.
오도연 교수는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좋은 환자들의 바이오마커를 규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효과가 전혀 듣지 않는 환자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규명하는 것도 과제 중 하나”라며 “TOPAZ-1 연구에서 임핀지 병용요법군의 15%가 치료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러한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다음 치료 전략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표적항암제도 좀 더 발전해야 한다”며 “최근 엔허투가 HER2 양성인 고형암 환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FDA 허가가 됐는데, 이처럼 특정 바이오마커에서 효과가 좋은 담도암 표적항암제가 개발이 되면 1차 치료 옵션이 좀 더 다양해지고, 환자 특성에 맞는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여기에 더해 “매우 제한적인 담도암 2차 치료 옵션도 좀 더 다양해지기를 바란다”며 “현재 2차 치료도 FOLFOX 등 화학항암제 외에는 치료 옵션이 없는데, 차세대 면역항암제 등 다양한 치료제들이 담도암에서도 쓰일 수 있도록 2차 치료 환경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 중 하나”라고 꼽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롭게 등장하는 치료 옵션을 실제 진료 현장에서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아 교수는 “현재 위암 치료 분야에서 한국이 치료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는데, 담도암도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며 “TOPAZ-1을 비롯해 국내 의료진들이 담도암 글로벌 임상의 주요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이처럼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치료 환경에 발맞추어, 필요한 치료 옵션이 국내 진료 현장에 신속하게 도입됐으면 한다”면서 “현재 신약이 허가되어 급여권에 들어오기까지 절차가 매우 복잡한데, 도입이 절실히 필요한 약제에 대해서는 빠르게 진료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