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실현 방안을 두고는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정부는 지역ㆍ필수의료가 벼랑 끝에 서 있다며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반면, 의료계에선 집단적 사회기여 방안을 모색하고, 자율 규제와 조정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맞섰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9일 서울의대에서 ‘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정부와 보건복지부 관점에서 제시하는 의료의 미래를 설명했다.
강 과장은 “우리나라 의료는 의료의 질, 접근성 등의 측면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압축 성장의 이면에 필수ㆍ지역의료의 붕괴 위기를 초래했다”면서 “개혁 논의는 이해 갈등 속에서 말의 성찬에 그치며 20여년 넘게 지체되고 있어, 이제 임계점에 도달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위기 요인으로 정의롭지 못한 보상체계와 인력 시스템 문제, 무너진 전달체계, 의료사고안전망 부재 등을 꼽았다.
강 과장은 “현 수가체계 하에서 어렵고 힘든 진료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미흡하다”며 “실손보험이 전국민에게 확대되면서 보험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 보험이 들어와 비급여 시장이 과도하게 팽창했는데, 비급여는 적정수준에서 관리되면 순기능이 있지만 지금 비급여 시장은 과도하게 팽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력을 공급하는 기반을 생각해봤을 때 취약한 측면이 있다”며 “숙련된 의사가 대거 은퇴한 후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의료수요를 대비하기 위한 인력 기반이 취약하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2년 의사 인력 추계 TF에서 2020년 증원을 추진했지만 불발됐고, 2025학년도 증원을 진행해 의료계와 갈등 상황에 있다”며 “의학교육에 대한 문제도 있는데, 그간 의학교육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 구조개혁에 대한 논의가 소홀해서 국가가 책무성을 갖추지 못한 채 병원에 수련을 맡겼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상급병원이 중둥중 이하의 높은 진료 비중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진료 외 연구 교육 기능의 저하를 초래했다”며 “지역의 2차 병원 환경이 열악한 상황으로, 각 기관끼리 협력할 수 있는 협력진료 기전도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필수, 지역의료 위기에 더해 초고령사회, 질병 구조 변화, 기술혁신 등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준비됐는지 의문”이라며 “미봉책으로는 현재와 미래의 위기 해결이 불가능하고, 이제 낡은 의료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의료인력 확충, 전달체계 정상화 및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공정한 보상체계 확립 등 4대 개혁과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 과장은 "본격적인 인력양성이 이뤄지는 10년 안에 필수, 지역의료 붕괴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며 ”10년 후에는 제도 구조 개혁을 완성해 앞으로 나올 청년 의사가 활약할, 새로운 대한민국 의료생태계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학교육 질을 향상하고 수련의 중심 수련체계를 정상화하며, 전문의 중심 전환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상급종합병원은 중증ㆍ난치 최종 치료 역할을 강화하고, 종합병원ㆍ병원은 골든타임 내 수술 등 대응 역량을 강화하며, 의원은 만성질환 관리 등을 통해 전달체계를 정상화 할 수 있도록 수가와 각종 평가 등을 개선할 예정이다.
환자의 충분한 권리구제와 의료인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과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강화, 피해자 권리구제체계 확립 등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더해 공정한 보상체계 확립과 행위별 수가제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저평가된 항목은 수가를 집중 인상하고, 보완형 공공정책수가와 대안적 지불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건강보험 10조원 이상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환자에게 과잉 진료를 유발할 수 있는 비급여 시장은 적절한 유지를 위해 관리를 강화하고 실손보험도 보장범위를 합리화하는 형태로 개혁할 방침이다.
강 과장은 “지금은 개혁의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며 “이제는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의료 정상화와 국민, 의료계, 정부간 굳건한 신뢰 구축을 위해 대화와 개혁을 할 시간”이라고 호소했다.
강 과장에 이어 고려대 의과대학 안덕선 명예교수는 ‘의사가 바라는 의료정책’이란 발제를 통해 의료계 관점에서 제시하는 의료의 미래를 조명했다.
그는 “무엇이 젊은 사람들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불공정 보상과 협상 구조 ▲의료형사범죄화, 형사처벌 면허자동취소 ▲집단행동 불법화, 업무개시명령 ▲환자거부금지 ▲요양기관 강제지정, 불공정 공정거래법 적용 ▲수술실 폐쇄회로 의무 등”이라며 “이는 다른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들로,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이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 제정이 됐는데, 그 이후로 24년째 보건의료전반에 대한 국가적 합의가 없고, 보건의료발전계획 5년 단위 수립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며 “법으로 4~5년마다 수립하도록 규정한 총 32건 중 26건(통합수립포함)만 수립, 6건은 미수립됐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안 교수는 국민만 바라보는 정책은 위험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국민감성을 호소하기 때문에 과학적ㆍ실제적 근거는 부족하다”며 “단기간으로는 만족할 수 있겠지만 장기간의 고통과 해악 가능성이 높고, 전문성 결여와 왜곡된 정보로 비효율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상적인 정책수립은 과학적 근거를 위한 연구와 증거를 갖고, 연구 진실성과 타당성 검증을 한 뒤, 과학적 근거에 의한 정책목표를 수립해야 한다”며 “이해당사자를 조기 참여하고 찬성, 반대 의견을 듣고, 수정이나 대안 제시의 과정을 반복하고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러한 의견수렴 과정을 모두 공개해 합리성과 공정성,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지금 정부는 공개할 수 없다를 반복하고 있어, 상호 신뢰를 갖기에는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정권마다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슈가 의료와 교육”이라며 “문제는 이렇게 많은 개혁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교육은 재수문제 하나 해결못하고 있고, 의료도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심지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산하에 한시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변화를 추구하지만 성과는 미미한데, 이는 지속적 변화를 못하는 나라의 현 시점”이라며 “다른 정권들의 사례를 냉철히 살펴보면, 현재 대통령의 임기가 3년 남았는데 1년 회의하고 1년 레임덕 기간을 제외하면 1년 동안 의료와 관련된 포괄적인 주제를 다 건드려야하는데, 너무 욕심이 많고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힐난했다.
나아가 안 교수는 의사를 포함한 전문직에 대한 자율규제가 미흡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사법에 의한 기계적 의사 징계는 결코 좋은 의료를 지향하지 못하지만, 자율적 상설 면허기구 운영은 의료 수준의 감측, 계도, 교육, 징계로 좋은 의료를 지향한다”며 “지금 의협은 자율규제를 대의원회 수임사항으로 결정했지만 국가적 자율규제에 대한 낮은 이해로 국회, 법조인, 고위관료의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안 교수는 바람직한 의료정책을 위한 선결과제로 ▲직접에서 간접 규제 ▲사회적 중개기구 육성 ▲공무원 순환근무 한계 인식 ▲전문성 제고와 자율성 존중을 ▲집단적 사회기여 방안 모색 ▲자율규제와 조정 능력 강화 ▲다양한 전문 단체(중개기구) 육성 ▲면허기구, 의대연합체, 추계기구, 평가기구, 의사회, 전공의, 보수교육 등을 제안했다.
그는 “정상적인 정책 수립은 문제 파악, 과학적 근거를 위한 연구와 증거 확보, 연구의 진실성과 타당성 검증 등을 거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은 이런 과정을 따른 게 아니다”며 “증원은 국민 감성에 호소한 것으로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전했다.
이어 “불공정한 보상과 협상 구조라는 구조적 폭력이 미래의 의료 환경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며 “정부는 오랫동안 묵살된 초저수가 진료 분야의 수가 정상화 요구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